고마워 아들

by 소설 쓰는 기자

노처녀로 갓 접어든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가 포스파티딜세린 사달래.

포스파…뭐?

치매약 같은 거. 방송 보시더니 계속 그 얘길 하시네.

같이 사는 니가 사드리면 되겠네,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동생은 아버지 환갑 선물로 차를 사드렸다. 먹는 차 말고 타는 차.

포스파티세린. 포스파딜세린.

몇 번을 되뇌도 머리에 붙지 않았다.

약 두 세트를 사야 할 판이었다.

헬스조선 기사를 읽었다.

-암보다 무서운 게 치매입니다. 포스파티딜세린은 노화로 인해 저하된 인지 기능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다’는 문구가 눈에 걸렸다. 기자로 10년 넘게 일하면서 배운 게 있다. 할 수 있다는 말은 못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실패 확률이 99%여도 할 수 있다는 말을 쓴다.

나로서는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었다. 누구나 먹어도 되는지 같은 거. 명절 때면 부모님께 홍삼을 사 드렸다. 돈으로 드리자니 정 없어 보였다. 뭘 사자니 뭐가 필요하신지 몰랐다. 필요한 거 있냐고 물으면 부모님은 다 있다고만 했다. 그래서 내 선택은 늘 홍삼이었다. 돈에 여유가 있을 땐 정관장, 없을 땐 한삼인을 샀다. 동생의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엄마, 몸에 열이 많아서 홍삼 안 맞는데. 의사가 그랬대. 엄마는 10년 동안 유일하게 챙겨 드시던 약을 끊었다. 작년 일이었다. 엄마는 비타민C도 안 드셨다. 아픈 곳이 없는데 뭐 하러 약을 먹냐. 아픈 곳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정수리 오른쪽을 누가 바늘로 쿡쿡 찌르는 것처럼 아프다고 하셨다. 타이레놀 같은 거라도 좀 먹으라고 잔소리하면, 엄마는 그런 건 약으로 되는 게 아니라며 버럭 화를 냈다.

내 몸도 정상이 아니었다. 자다가 맹장이 터져서 일주일 넘게 입원했다. 사타구니 안쪽에 있어야 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와, 손으로 밀어 넣은 적도 있다. 편도선 수술을 하고도 숨쉬기가 힘들어서 비염 수술까지 받았다. 서재에서 낯선 할머니 귀신을 볼 정도로 기가 허했다.

푹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았다. 건강검진 결과지에는 비타민 D 부족이라고 적혀있었다. 비타민 C, 루테인, 밀크씨슬, 오메가 3, 프로페시아, 비오틴. 여기에 비타민 D까지 추가해야 했다. 마침 코스트코에서 비타민D와 마그네슘, 아연 함유된 미국산 비타민을 팔았다. 3병에 5만 900원. 네이버에선 4만 9900원에 팔았고 6758원을 적립까지 해줬다. 코스트코에 서서 네이버로 약을 샀다.


나는 좀 자주 아픈아이였다.

엄마는 어린 나를 세워 놓고 방언 기도를 했다. 방언은 아프리카 말 같기도 했고 아랍어 같기도 했다. 알아들을 수 없었다. 엄마 본인도 잘 모르는 듯했다. 엄마는 날 아프게 하는 병원균이 이마에 있기라도 한 듯 손으로 그곳을 집요하게 눌렀다. 방언 기도는 길고 질척했다. 엄마가 된소리 발음을 내뱉을 때마다, 굵고 미지근한 침이 얼굴에 튀었다. 나는 낙하지점을 기억해 놨다가, 중간중간 엄마 몰래 침을 닦았다. 기도가 끝나면 몸이 나은 듯했다. 엄마는 하나님의 치유의 광선이 나를 낫게 했다고 말했다.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플라세보 효과 같은 거였다. 물론 병이 나을 거라고 확신한 건, 내가 아닌 엄마였지만. 엄마는 권사님이 되고나선 기도해 주는 대신,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얼마 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즘 뭘 자꾸 까먹어요?

누가? 니 아빠가?

아니, 엄마가요. 약 사달라고 했다면서요?

내가? 너 무슨 일 있어?

이것 봐. 문제 있네. 엊그제 한 말도 까먹었어요?

너 어디야, 갑자기 왜 그래?

질문만 있는 대화가 이어졌다. 엄마는 내가 포스파티딜세린 얘기를 꺼내자 그제야 순순히 몸 상태를 인정했다. 다 예방 차원이지. 예방. 엄마는 말꼬리를 흐렸다.

한 달 치밖에 못 샀어요.

고맙다. 정말 고마워. 정말 고맙다. 고마워 아들. 고맙다. 고마워. 고맙다 아들.

엄마는 고맙다는 말을 계속했다. 방금 한 말을 잊은 사람처럼.

충동적으로 약속했다. 약 떨어지면 말해요. 또 사줄게요.

엄마는 이번에도 고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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