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유가 Oct 12. 2020

자가격리 D+4. 격리 중의 먹거리

12시쯤 동생이 보건소 문자를 복사해서 보내주었다. 어제 했던 코로나 검사의 결과였다. 결과는 다행히도 음성이었다. 결과를 받고 나니 당연히 음성이겠지 하는 마음이 든다. 한국에 오기 전에도 외출을 자제하고 대부분 집에 있었던 터라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마음 한구석이 좀 불안했다. 혹시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어제는 동생을 통해서 구호물품이 도착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언제 오나 싶었다가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동생이 연락이 와서 구호물품은 도착했냐고 물었다. 아직 안 왔다고 대답하고 나니 갑자기 복도에서 박스를 실은 카트를 끄는 소리가 난다. 왠지 내 구호물품이 배달되는 듯한 느낌. 구호물품도 양반은 못되겠네. 동생한테 밖에 소리가 나니 방금 도착한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사람이 없을 때 나가보겠다고 했다. 5분 정도 뒤에 구호물품이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동생 핸드폰으로 도착했단다.


구호물품 박스를 열면서 두근두근했다. 그동안 한국에 다녀온 친구들이 구호물품 사진을 보내줬었는데, 이것저것 먹을 것을 많이 챙겨주어 한국 정부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박스를 열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그동안 사진에서 보았던 것보다 빈약했다. 상자 안에는 김, 쌀, 햇반, 라면, 통조림 반찬, 3분 카레/짜장, 물티슈, 일회용 밴드가 들어있었다.


생각해보니 지자체마다 예산이 달라 구호물품을 아예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미 배정된 예산을 다 써서 더 이상의 구호물품 지원이 없는 지자체도 있었던 것이다. 여기도 아무래도 예산이 줄어들었겠지? 이 시국에 예산을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금 아쉬웠다. 3달 전에 동생이 여기서 똑같이 자가 격리할 때는 훨씬 알차게 보내줬던 거 같은데, 3달 만에 예산 삭감인 건가 싶기도 했다. 어쨌든 구호식품은 감사히 맛있게 잘 먹어야지. ㅎㅎ

여하튼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어제 알아보고 연락 주겠다던 상담사에게서 오늘 오후가 돼서야 메시지가 왔다. 정말 열일 하시는 분이다. 해당 아이디를 사용할 수 있게끔 해두었단다. 403 에러를 취지에 맞게 잘 썼다는 가정하에 드는 생각은 휴면 계정의 API 호출 권한을 일부 막아두었을 텐데, 휴면 상태 해제를 하는 API도 실수로 권한을 막아둔 것이 아닐까 싶다. 일종의 버그인데, 휴면 상태를 해제하려는 사람이 없었는지, 있어도 리포트가 안된 것인지 발견을 못했던 것 같다. 이걸 수정하려면 서버를 다시 배포해야 하는데 개발팀이 휴가인 상태니 배포도 배포 후 후속조치도 힘들어지니까 그냥 내 계정 데이터를 수동으로 업데이트해준 건가?! 뭐, 이것도 다 나의 추측이다. 작은 원룸에 혼자 누워 있자니 별 생각이 다 든다. 어쨌든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잘 해결되었다. 이 회사 일 잘하는 구만. 그런데 이제 밥 챙겨 먹기가 귀찮아져서 주문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것도 다 타이밍이다. 내가 원할 때 바로 먹어야 되는 건데.ㅋㅋ


오늘은 치킨을 먹어보자! 한국에 왔으면 역시 치킨이지. 동생한테 치킨 주문을 부탁했다. 동생은 배달 앱으로 치킨을 주문했고 집 앞에 놓고 가라는 메시지를 적는 것도 잊지 않았다. 60분이 걸린다던 치킨은 다행히 20분 만에 왔고 (배달 앱은 시간 계산을 어떻게 하는 거지...?)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교촌 레드를 눈앞에 놓고 감격에 겨워했다.


한국에 수많은 치킨 브랜드가 있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단연 교촌 레드! 교촌 간장은 이런저런 레시피를 따라 하면 비슷한 맛을 낼 수 있어서 해외 생활에도 몇 번 해 먹었지만, 레드만큼은 따라 하기 힘든 특이한 맛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 먹은 레드는 양념이 약하고(며칠 전에 너무 매운 떡볶이를 먹어서 그런가, 별로 안 맵다는 느낌이었다) 엄청 느끼했다. 원래 이렇게 기름이 많았던가? 너무 느끼했다. 게다가 콤보를 시켜서, 다리, 윙, 봉 세 가지의 구성이었는데, 다른 건 괜찮았지만 봉이 좀 오래된 고기 같았다. 냉동육의 느낌에 닭 냄새도 났다. 교촌 실망 절망... 다른 치킨으로 갈아타야겠다. 그래도 오랜만에 맛보니 반가웠다. 레드!

내 입맛이 변한 거니, 네가 변한 거니.
작가의 이전글 자가격리 D+3. 코로나 검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