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tter from Paris
봉쥴~ 잘 지내고 있어? 나는 파리에 잘 도착했어. 이제 여행의 시작이니 두근거림 반, 걱정 반이다.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도 없이 왔으니 기약도 없고 말이야.
도착한 다음 날 처음 간 곳은 루브르 박물관이었어. 가기 전부터 엄청나게 기대를 했지. 세계 3대 박물관 중에 유일하게 가보지 않은 곳이 었거든. 대영은 세 번이나 갔었고, 바티칸은 두 번이나 갔는데 말이야. 루브르가 제일 크다는 말도 있던데 박물관이 크다는 건 건물 자체가 크다는 건가, 소장품이 제일 많다는 건가, 가치가 가장 높다는 건가 잘 모르겠어. 아무튼 엄청나게 크더라고. 6시간을 내내 돌아다녔는데 1/4 정도밖에 못 봤다. 아무래도 4일 정도는 관람해야 할 것 같아. 다행히도 들어갈 때부터 시간이 부족할 거라 생각하고 좋아하는 그리스 로마 전시관과 고전주의 낭만주의 그림들이 모여있는 방부터 가서 좋아하는 것부터 공략했기에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들은 다 볼 수 있었어. 그래도 이집트 전시관을 가지 못한 건 조금 아쉽지만.
그리스 신화를 표현한 조각상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아르테미스, 아폴론, 디오니소스, 아르테미스, 에로스, 마르스, 아테네 등의 신들과 헤라클레스 같은 영웅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었어. 파르테논 신전의 일부분도 여기에 있어. 대영박물관에 갔을 때가 생각나더라. 그때 전시품들 보면서 ‘이거 다 전리품이겠지’ 하면서 제국주의를 비난했었는데 루브르도 비슷한 것 같아.
대영박물관에서 입장료를 받지 않았던 것은 전리품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봐. 여긴 입장료를 받거든. 아니면 영국이 프랑스보다 양심의 가책을 더 느끼는 건가? 여기 소장품들은 다 과거 왕족의 소장품이었대. 왕가로 선물 들어온 것들이지. 그래서 선물로 받았으니 약탈한 게 아니라 여겨지는 걸까? 아니면 영국은 기부만으로 박물관 운영이 가능한 건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라고. 최근에 대영에 가보지 않았으니 유료로 전환했을 수도? ㅎ 아무튼 대영은 입장료가 없어서 몇 번을 가서 다시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는데, 여긴 이렇게 넓은데도 입장권이 하루밖에 허용하지 않는 점이 아쉽더라.
아, 여기에서 제일 유명한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야. 이것도 정말 보고 싶었지. 왜냐하면 내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좋아하거든. 이탈리아 고전주의 작품이 전시된 방에 레오나르도의 그림이 몇 점 더 있어. 역시나 좋더라. 내 스타일이야. 모나리자는 다른 다빈치의 그림과는 다른 방에 전시되어 있었어. 이 그림, 과거에 도둑맞은 적이 있다고 하더라. 뭐 그건 옛날이야기이고 요새야 보안 시설이나 장비들이 너무 좋아서 미션 임파서블 같은 영화의 한 장면은 불가능할 것 같지만. 암튼 모나리자 근처에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몰려있어 그 명성을 알 수 있었어.
내가 또 기대를 했던 작품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인데 이 그림은 생각보다 훨씬 커서 너무 멋있었어. 레미제라블의 한 장면도 생각나고 말이야. 이번 여행이 끝나면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다시 읽어보려고.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향하던 도중에 비행기 안에서 재미있는 다큐멘터리를 한 편 보았어. 루브르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하는 다큐멘터리였어. 루브르는 원래 왕가가 사용하던 궁전이었는데 베르사유 궁전이 지어진 이후에 왕족들이 모두 이사를 가버리고 버려지다시피 했었대. 그러다 박물관으로 사용했다고 하더라고. 원래는 귀족들과 왕족들이 모여서 작품을 관람하곤 했는데 프랑스혁명 이후에 대중에게 공개를 했다고 하네. 세계 2차 대전 때는 전쟁으로 인해 작품들이 상할까 미리 다른 곳으로 숨겼대. 독일군들이 루브르를 습격했을 때는 몇 개의 작품만이 빈 루브르를 지키고 있었다나. 루브르는 처음엔 요새처럼 지어졌어. 그러다 집권한 왕이 바뀔 때마다 입맛에 맞게 그 모습을 조금씩 바꾸었지. 지금의 유명한 피라미드 모양은 중국계인 미국의 유명 건축가가 디자인했다고 해. 처음엔 사람들이 그 디자인에 대해 가능하지 않을 거라며 비난했다는데 지금은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지.
파리의 개선문에도 갔었어. 사실 개선문이랑 비슷한 문들이 세계 어디에나 있잖아? 바르셀로나에서도 얼마 전에 보았고. 그래서인지 별로 기대가 되지 않는 곳이었는데, 막상 마주하고 보니 정말로 멋있더라. 특히나 개선문에 조각되어 있는 것들이 대단히 멋졌어. 나폴레옹으로 보이는 사람도 조각되어 있었어. 나폴레옹은 이 개선문의 완성을 보지 못했다고 하지만 말이야.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갈래로 길이 뻗어나가는데 개선문 꼭대기에 올라가서 한 바퀴 빙 둘러 그 뻗어나가는 길을 보고 있자면 사진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대단함이 느껴져.
여기서 12갈래로 뻗어나가는 길 중에 하나가 그 유명한 샹젤리제 거리야. 온갖 명품샵과 쇼핑몰이 가득하더라고. 에펠탑을 꾸며 예쁘게 장식한 가게가 있어 뭔가 하고 들어가 보았는데 록시땅 샵이었어. 프랑스 브랜드이긴 한데, 프랑스라고 해서 싸진 않더라. 이 샵은 유명한 명품 베이커리인 피에르 에르메와 콜라보했더라고. 그래서 그렇게 예쁘게 꾸며놨나 봐. 가게 중앙에서는 피에르 에르메의 마카롱과 디저트를 팔고 있고 뒤쪽으로는 카페 같은 공간도 있더라고. 이 길을 죽 따라 걸으면서 마들렌 광장까지 갔어. 가는 도중에 샤넬이나 루이비통 등의 명품샵도 많이 보았지. 네가 좋아하는 딥디크 샵에도 들어가 보았는데, 역시나 프랑스 브랜드라고 해서 여기서 더 싸거나 하진 않더라고. 프랑스가 원래 물가가 좀 비싼가 봐.
마들렌 광장에 거의 다 도착해서 네가 그토록 가보라고 추천을 아끼지 않던 라뒤레가 보이길래 들렀어. 파리에서 먹어봐야 할 디저트가 많은 관계로 마카롱만 낱개로 사려고 했는데 계산대 옆에 있는 머랭을 보고 아이들 선물로 좋을 것 같아 하나 더 샀지. 그리고 내가 원래 가보려고 했던 디저트 가게로 갔어.
라뒤레가 전통과 역사가 있다면 이 가게는 오픈한 지 몇 년 안 되는 곳인데 고급스럽게 꾸며두고 애프터눈 티를 팔고 있더라고. 앞에 서 있는 자리를 안내해 주는 점원에게 자리가 있냐고 물었는데 내 영어를 잘 못 알아 들어서 재차 다시 묻는 거야. 그때는 긴가민가 했는데 나중에 이 여자 인종 차별하는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어. 그 여자에게 자리를 안내받고 앉아있는데, 다른 남자 직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어. 나에게 자리를 안내해 준 그 여자는 싸가지가 없었지만 디저트를 함께 골라준 그 남자 직원은 굉장히 친절했어. 새로 출시했다는 마카롱에 필링 대신 무스 케이크를 넣은 디저트를 주문해 보았어. 너무 단 디저트는 싫어하지만 홍차와 함께 먹으니 맛있더라. 다크 초코와 남자 직원이 제일 좋아한다며 추천해 준 라즈베리 바나나를 골랐는데, 라즈베리 바나나는 굉장히 맛있었고 다크 초코는 몸서리치게 달았어.
창가에 앉아서 비 내리는 파리의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했어. 그러다 내 오른쪽 테이블로 그 싸가지 없는 직원이 다른 사람들을 안내하는 것을 보았지. 4인 가족이었는데 두 아이는 유모차에 타고 있었어. 내 옆 테이블은 2인 좌석이었는데 왜 그쪽으로 안내한 건지 모르겠더라고. 유모차도 있는데 큰 테이블을 주면 좋을 텐데 말이야. 그들은 인도나 아랍계 아시아인 같았거든. 그제야 그 여자가 인종차별을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지. 나중에 화장실 갈 때 보니까 자리도 많이 있던데.
노트르담 성당에도 갔었어. 예전에 말한 적이 있나? 한동안 내가 뮤지컬을 엄청 많이 봤잖아, 그때 내가 제일 멋있었다고 느꼈던 작품이 노트르담 드 파리였다고. 그 종탑과 꼽추를 떠올리며 센 강을 따라 걸어 그 성당에 도착했지. 대성당의 정문에는 12 사도가 양 옆으로 서있었고 안쪽엔 아기자기하고도 웅장한 스테인글라스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어. 투어를 신청하면 위로 올라갈 수 있었는데,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서 올라가진 않았고 반대쪽으로 돌아가 공원에 앉아 이 성당과 센 강을 즐겼어.
그리고 이 근처에서 보물을 발견했어. 예전에 어디서 보았는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라는 서점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거든. 그게 여기에 있더라고!! 그 서점이 파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여기서 지나가다 발견하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 길을 걷다가 이 이름을 보는 순간, ‘엇, 이거 어디서 들어본 서점인데?’ 했다니까. 어디서 이 곳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걸까 나중에 찾아봤는데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더라고. 아마 전 세계의 특별한 서점을 소개하는 잡지 글 같은 곳에서 읽은 게 아닐까? 아무튼 이 곳 굉장했어. 작은 가게가 내가 좋아하는 그 오래된 책 냄새로 가득 채워져 있었어. 미로처럼 여기저기 책이 쌓여있고, 천장까지 닿은 책 더미를 위해서 사다리도 곳곳에 놓여있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의자들도 사이사이에 있더라고. 위층에 올라가니 창문으로 노트르담 성당과 센 강이 보이더라. 내 등 뒤에는 낡아서 헤진 고서들이 꽂혀있고. 나에겐 천국이었지 뭐. 여기 헤밍웨이도 자주 오던 곳이라고 해. 이 곳을 그냥 지나다 찾게 되다니 정말 놀랍지 않아?!
파리에서 제일 유명한 에펠탑도 갔지. 생각보다 크고 높더라. 베가스에 있는 짝퉁 에펠탑과는 비교도 안돼. 어찌나 멋있던지 사진을 엄청 많이 찍었어. 해가 지기 전에 도착했는데 야경도 보고 싶어서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와서 반짝이는 에펠탑도 보았어. 밤이 되니 조명에 더 멋있더라고.
해가 지기를 기다리면서 에펠탑에서 조금 떨어진 동네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센 강 아래쪽의 7구역이었어. 이 곳은 관광지와는 거리가 있어서 그런지 한적하고 물가도 시내 중심가보다 조금 싸더라. 여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선물도 사고 저녁도 먹었어.
목적지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쿠스미 티 매장을 봤거든? 이거 선물로 좋겠다 싶어서 나중에 사야지 하고 구경만 하고 왔는데 다시 못 찾겠더라고. 그러다가 이 동네에서 다른 찻집을 발견했어. 얼그레이 향이 너무 좋아서 안 살 수가 없더라고. 이 찻집의 틴이 굉장히 예뻐서 네가 좋아할 것 같은 스타일이야. 그리고 일본인 파티시에가 하는 디저트 가게를 찾았어. 와사비 맛 마카롱을 팔더라고.ㅋㅋ 그걸 사 먹지는 않았지만 다른 마카롱 몇 개와 나중에 동생 주려고 마차 마들렌을 샀어.
사실 파리에 오면서 가장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곳은 몽마르뜨 언덕이었어. 근데 지도에 몽마르뜨 언덕을 찍고 열심히 걸어서 도착한 곳은 웬 공동묘지더라고. 나중에 알고 보니 제대로 찾아가려면 몽마르뜨 언덕 위에 있는 사크레쾨르 성당을 찍고 가야 헤매지 않는다고 하더라. 덕분에 운동 열심히 했지 뭐.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몽마르뜨 언덕은 확 트인 뷰는 좋았지만 비가 와서 도시 전체가 우울해 보였어. 나중에 날씨 좋을 때 다시 와봐야겠어.
사크레쾨르 성당 안에는 서점이 있었어. 그곳을 구경하고 있는데 소화 데레사에 대한 책이 많이 있더라고. 프랑스 성인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예상치 못하게 이렇게 성당 서점에서 만나게 되니 반갑더라고. 소화 데레사 책자를 뒤적거리다 그곳에 계신 수녀님과도 대화할 수 있었어. 미소가 잘 어울리는 친절한 수녀님이었어.
아, 아주 마음에 드는 카페도 찾았어. 번화가나 관광지의 카페들은 애프터눈 티를 파는 식의 고급스럽고 예쁜 디저트 카페들이라서 부담스러웠는데, 이곳은 심플하기 그지없고 메뉴도 커피와 크로와상뿐이었어. 비 내리는 거리를 구경하거나 앉아서 편지를 쓰기에 딱이었지.
내가 어디 여행 다니면서 음식 투정 안 하는 거 알지? 근데 프랑스 음식은 향이 좀 진해서 힘들었어. 고수도 많이 쓰고 버터나 치즈도 엄청 넣더라고. 그리고 닭보다는 오리나 거위를 많이 먹어서 그도 적응이 잘 안돼더라. 그래도 신기한 음식에 몇 번 도전해 보았어. 거위 똥집이나 달팽이 같은 거. 향이 좀 강해도 와인이랑 먹으니까 자꾸 먹다 보니 적응이 돼가는 것 같아.ㅋ
마들렌, 마카롱 같은 디저트들도 많이 먹었어. 그리고 키쉬랑 크로와상도 먹고. 입이 너무 달아. 여기저기 마카롱을 다 먹어보느라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제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이 먹고 싶네. ㅋㅋ
아, 지난번에 연락했을 때 한국 아이돌을 좋아하는 독일에 사는 중국인을 만났던 이야기 했었나? 이름은 찰스라고 하는데 찰스는 결국 아이린을 세 번이나 보고 독일로 돌아갔어. 이번 주가 파리 패션 위크인데 아이린이 그 쇼를 보러 온 거래. 아이린 말고 다른 사람들도 왔다더라고. 찰스가 공항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줬는데 박신혜도 있었어.
하루는 찰스랑 또 다른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이랑 셋이서 술을 마시러 갔어. 둘은 술을 잘 알지는 못한다면서 내가 시킨 걸 따라서 마시더라. 프랑스 와인을 한 병 마시고, 괜찮은 아이리쉬 위스키가 있길래 한 잔 마셨어. 바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바텐더가 장기말을 가져오더니 이게 뭔지 아냐고 묻는 거야. 그래서 가르쳐 줬더니 민트 보드카를 서비스로 주었는데 색도 예쁘고 굉장히 맛있었어.
이제 곧 벨기에로 떠나. 벨기에에서도 초콜릿이나 와플 등을 먹어봐야 할 텐데 디저트에 질려버린 것 같아. 비싸기만 하고 배는 안차고 말이야. 가성비가 매우 떨어진다고.
떠나려니 아직 더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아 아쉬운데, 떠날 때 아쉬운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봐. 언젠가 또 올 날이 있겠지. 다음번엔 맑은 파리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머무는 동안은 내내 비가 왔거든.
또 편지할게. 잘 지내고 있어.
2019. 03. in Pa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