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tter from Brussels
봉쥴~! 잘 지내지? 나는 지금 벨기에의 수도인 브뤼셀에 와있어. 벨기에는 지역에 따라 네덜란드어나 프랑스어나 일부는 독일어를 쓰기도 한다는데, 여긴 대부분 프랑스어를 사용하네. 하지만 네덜란드어도 공용어라서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것들을 두 가지 언어로 표시해놓고 있어.
내가 여행하면서 머무는 동안 언어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거 잘 알지?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 까먹긴 하지만. 그래서 파리와 여기에 머무는 동안 계속 프랑스어를 시도해 보았는데 배운 게 거의 없어. 발음이 너무 어렵더라고. 열심히 공부해서 써먹으면 아무도 못 알아들어. 어쩌다 알아들었다 해도 그 대답을 내가 못 알아듣고. 프랑스어 발음은 뭔가 목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야.
브뤼셀은 작은 도시라서 할 게 많이 없어. 나는 그래서 더 좋았어. 도서관에 가서 책도 보고, 중고 서점에서 LP판도 뒤적거리고, 우표 컬렉션을 파는 가게에서 한참 우표를 구경하기도 했어. 공원에서 편지도 쓰고 여기서 지내며 친해진 사람과 이야기도 길게 나누고.
아 지난번에 통화할 때 얘기를 했었지? 셀린이라고 해. 셀린은 독일인인데 터키에서도 살았다가 네덜란드에서도 살았다가 벨기에로 온지는 2년 정도 되었대. 굉장히 친절해서 이것저것 알려주기도 하고, 먹을걸 챙겨주기도 하고, 조심하라며 잔소리도 하고, 엄마 같아. 덕분에 잘 지냈지. 독일갈 때 터미널까지 배웅도 해주겠대. 몸 둘 바를 모르겠어.
여기 와서 가장 먼저 가본 곳은 그랜드 팔라스였어. 넓은 광장이 있고 오래된 멋진 건물들이 그 광장을 둘러싸고 있어. 왠지 독일이 생각나더라. 그랜드 팔라스는 뮌헨에서 본 건물과 닮았고, 다른 건물들도 독일 어디선가 본 것 같았거든. 이 광장이 세계 3대 광장에 꼽힌다는 얘기를 얼핏 들어서 엄청난 기대를 했는데 기대한 것만 못했어. 너무 큰 기대를 한 것 같지만 그래도 멋있는 곳이야. 광장 여기저기에는 예술가들이 자기 그림을 팔고 있었는데 사고 싶은 그림이 너무 많았어. 파리에서 몇 장 사지 않았더라면 샀을 텐데, 가격이 조금만 더 쌌어도 샀을 텐데, 30여분을 들여다보기만 하다가 힘들게 발걸음을 옮겼어.
브뤼셀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오줌싸개 동상인데, 이 동상은 세계 3대 허무에 속하지. 그 명성을 익히 들은 터라 기대하지 않고 산책할 겸 가보았어. 사람들이 낄낄거리면서 사진을 찍고 있더라. 왜 이 동상이 유명한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여러 가지 설이 있더라고. 그중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아는 건, 전쟁 중에 오줌으로 불을 꺼서 많은 사람을 구했다는 건데, 말이 되는 소린가 싶어 믿음이 가진 않더라고. ㅋㅋ 아무튼 이게 브뤼셀의 명물이라는 건 시내 곳곳에서 알 수 있었어. 오줌싸개 동상을 본 딴 기념품들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패러디 버전들이 길에 서 있었거든.
이 오줌싸개 동상에서 조금 떨어진 다른 골목길에 여자아이 오줌싸개 동상도 있어. 물론 오줌싸개 동상만큼 유명하진 않아서 사람들이 쉽게 지나치기도 해. 그도 그럴 것이 남자아이 동상은 골목길의 코너에 있어서 오다가다 보기 쉬운 반면에 여자아이는 골목 끝에 아무도 지나가지 않을 것 같은 곳에 있거든. 나는 맥주집을 찾아들어가다가 운이 좋게 봤어.
그래, 맥주! 내가 벨지안 맥주를 얼마나 기대했는지 알지? 벨기에에 오면 이것저것 맥주를 먹어보고 싶었는데, 일단 바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면 너무 비싸. 그리고 생각보다 맛이 없었어. 그냥 맥주 맛이더라고. 특별하지 않았어. 시메이는 좋아하지만 한국에도 있는 건데 싶고. (하지만 여기 시메이는 한국의 1/4 가격이라는 사실!!ㅋㅋ) 암튼 맥주 맛에 실망해서 동네 싸구려 술집을 찾는 것도 포기했어. 호가든이나 레페나 시메이 다 좋아하긴 하는데, 벨기에만의 특별한 맥주를 먹어보고 싶어서 시도해보다 실패한 것 같아. 다음에 가면 평범하게 다시 도전해보겠어.
그리고 홍합. 벨기에 홍합 요리를 먹어보았지. 내가 온갖 해산물을 좋아하지만 또 어패류를 특히 좋아하니까 벨기에의 명물이 홍합이라는데 당연히 먹어봐야지. 브뤼셀에서 홍합으로 유명한 레스토랑이 있대. 셰프 레옹이라는 곳인데 거기 사람이 많고 비싸다는 평이 많았어. 맛이 있긴 하다는데 홍합이 다 비슷하다는 평도 있었고.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홍합은 맛이 없을 수가 없기 때문에 꼭 그 가게를 않아도 될 것 같았어. 그래서 근처에 있는 곳 중에 구글 리뷰가 가장 좋은 곳으로 가서 먹었지. 홍합찜처럼 나와서 굉장히 맛있었어. 이걸 또 감자튀김이랑 같이 먹더라. 감자튀김이 밥이나 빵 같은 느낌이었어.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내가 먹은 곳이 셰프 레옹이랑 가격 차이가 별로 안 나는 거야. 왠지 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셰프 레옹도 가봐야겠더라고. 그래서 가봤지. 운이 좋게 자리도 있었어. 홍합찜을 또 먹기는 그래서 해산물 파스타를 주문했어.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다들 홍합찜을 먹고 있었어. 근데 내가 먹은 곳보다 양도 적고 홍합 크기도 작은 거야. 그리고 손님은 어찌나 많던지 너무 시끄럽고 정신없었어. 결론은 홍합은 맛있다는 거고, 셰프 레옹보다는 내가 처음 선택한 곳이 더 괜찮았다는 거지.
갤러리 휴버트라는 곳도 가봤어. 아케이드 쇼핑몰인데, 이름이 고급스러워서 갤러리가 많은 쇼핑몰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쇼핑몰 전체가 초콜릿 향으로 가득 차 있더라고. 벨기에가 초콜릿으로 유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각양각색의 초콜릿 가게가 많을 줄이야. 파리에서도 디저트 겁나 많이 먹었는데... 제발 노 모어 디저트... ㅠㅠ 아무튼 아케이드 쇼핑몰 건물은 멋있었어. 비가 많이 오는 탓에 이렇게 지었다고 하는데, 하늘이 다 보이는 천장이 꽤나 멋지더라.
그래도 와플은 하나 먹어봤어. 제일 달지 않을 것 같은 걸로 골랐는데도 좀 달더라. 그리고 한국이나 미국에서도 벨지안 와플을 종종 팔곤 하니까 특별하지 않더라고. 엄청 특출 나게 맛있는 것도 아니고 싼 것도 아니고. 그러다 어느 길을 걷는데 무지하게 맛있는 빵 냄새가 솔솔 나는 거야. 그 냄새를 따라서 가봤는데 마쉬멜로우와 와플을 파는 가게였어. 그런데 거기서 만들고 있는 와플은 벨지안 와플 하면 떠올리는 두껍고 격자무늬가 크게 나있는 그 와플이 아니라 커피 마실 때 곁들여 먹는 쿠키 같은 거였어. 기억나? 굉장히 얇은데 안쪽에 캐러멜이 들어 있어서 커피잔 위에 올려두면 캐러멜이 알맞게 녹아 아주 맛있게 되잖아. 내가 코스트코 갈 때마다 살까 말까 고민하던 그거 말이야. 그걸 수제로 만들고 있더라고. 이건 꼭 먹어야 해 싶었지. 근데 뭐 이것도 역시나 엄청나게 달았어.ㅋㅋㅋㅋ 커피가 너무나 필요해.....
아 그리고 여기서 우연히 특별한 전시회에 가게 되었어. Mont des Arts 공원이 있는데 그쪽에서 그랜드 팔라스 쪽을 바라보면 뷰가 좋다고 해서 가는 길이었거든. 근데 가다 보니까 벨기에 로얄 라이브러리라고 쓰여있는 것이 보이더라고. 일단 라이브러리라길래 혹했지. 근데 이게 공공 도서관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어서 일단 들어가 보았어. 그런데 사람들이 그냥 들어가고 있길래 나도 따라 들어가 안쪽을 구경했지. 그런데 이 도서관 한쪽에서 작은 전시회를 하고 있었어. 둘러보니 문자와 책에 대한 역사에 대한 전시회였어. 내가 좋아할 만한 전시회를 우연히 발견한 거지. 하지만 온갖 설명이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로만 적혀있어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 나중에 나오면서 보니 영어 오디오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길래 근처에 있는 직원에게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달라고 부탁해서는 다시 들어갔어. 문자의 역사를 설명할 때는 알파벳과 중국어, 일본어, 아랍어 등을 설명하더라고. 한국어가 없는 게 좀 아쉬웠지만 어쨌든 흥미로운 설명이었어. 알파벳은 원래 21개였다고 하네. 그리고는 쓰기의 역사, 종이를 만들게 된 것, 그것이 책이 된 것, 현대에 와서는 이북을 사용하는 것까지 이어졌지. 재밌었어.
브뤼셀에 은근히 중고 서점이 많더라. 북카페도 여러 개 있고. 나로서는 구경할 것이 참 많았어. 도서관도 로얄 도서관 이외에 한 군데를 더 방문할 수 있었는데, 영어로 된 책이 한층 가득 있어서 볼 게 많았어. 아마 브뤼셀에 더 오래 있었다면 그 도서관을 매일 갔을 것 같아.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을 닮은 성당도 가보았어. 스테인 글라스도 거대하고 멋있었고, 교회 안에 양쪽에 서있는 사도들의 모습이 굉장히 멋있었어. 외양이 노트르담 성당을 닮은 것 같아 보이기도 했는데, 그 당시의 유행하던 스타일이 아니었을까? 사실 파사드는 닮았지만 그 외에는 닮지 않았어서 잘 모르겠어.
그러고 나서 네가 좋아할 만한 곳에 갔어. 브뤼셀에는 EU 본부가 있거든. 건물도 멋있었지만 풍겨오는 아우라가 더 멋있었달까. 아무래도 EU잖아.ㅎㅎ 본부 오피스 건물 근처에 EU information center가 있었어. 그곳에서 이것저것 EU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지. 아직 영국이 지도 안에 있기는 했지만 곧 빠지게 되겠지.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 EU에 대해서 이런저런 대화도 할 수 있어서 아주 좋았어.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고 말이야.
파리에서 봤던 개선문에 대해서 얘기를 했었지? 이 곳 브뤼셀에도 개선문이 있어. 독립 50주년 기념으로 만들었다고 해. 브뤼셀의 개선문은 양방향으로 팔을 넓게 뻗은 것 같은 모양이라서 굉장히 멋있었어. 때마침 이곳을 방문했을 때 날씨도 너무 좋아 이 기념문 앞에 있는 공원에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 개선문 중앙에는 벨기에의 국기가 휘날리고 있었는데, 국기가 독일 국기랑 비슷해서 헷갈리기도 했어.
브뤼셀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아토니엄이라는 곳인데 사진으로 보았을 때는 그냥 신기하게 생긴 조형물일 거라고 생각했어. 실제로 본 아토니엄은 굉장히 거대한 건축물이었지. 생각보다 너무 커서 대단하다고 느껴지더라고. 내부는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되어 있어 쉽게 올라갈 수 있고 전망대로 이용되고 있었는데 내가 갔을 때는 날씨가 좋지 않아서 건물에 올라가 보지는 않았어. 그래도 굉장한 건물이라는 건 한눈에 느낄 수 있어. 사진으로 봤을 때 그냥 조형물이라고만 생각해서 가볼 생각이 없었는데, 셀린이 이 근처에서 일한다고 해서 겸사겸사 가보았지. 셀린 덕분에 가본 거라고 할 수 있지.ㅎㅎ
아! 나 우연히 여기서 빅토르 휴고가 살던 집을 보게 되었어. 집같이 생기지도 않았고 사람들 많이 다니는 길에 있는 건물이었어. 1층엔 카페인지 기념품샵인지가 있는 오래된 건물인데, 거기 서서 잠깐 쉬고 있다가 어떤 사람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을 보게 되었지. 그래서 뭘까 하고 건물을 살펴보았는데 빅토르 휴고가 살았었다는 문구가 건물 앞에 적혀 있더라고. 이미 여러 번 개축되어 다른 용도로 쓰이는 것 같아 보였는데, 더 이상의 정보는 찾기 힘들더라. 암튼 프랑스어와 네덜란드로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어.
이제 곧 독일로 떠나. 그곳에서 못다 한 맥주의 한을 풀 수 있기를 고대하면서.ㅋㅋ
잘 지내고 있어. 또 편지할게.
2019. 03. in Bruss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