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업전야〉가 세상에 나온 것이 1990년의 일이니 올해로 어느덧 33년이 되었다. '고전'의 영역에 들어가기에 충분한 세월이다. 그러한 고전을 한 풋내기가 꺼내들게 된 것은 단순한 우연만은 아니었다. 집회 현장에서 빠지지 않고 불리는 민중가요 '철의 노동자'가 삽입된 것이 이 영화이기도 하거니와, 당시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정면에서 다루고 있는 이 영화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영화 〈파업전야〉는 80년대 말 민주화의 바람에 이은 노동자 대투쟁과 노조 설립 열풍 속의 노동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 가난에 찌든 200여 명의 '동성금속' 노동자들은 그저 기계에 불과했다. 아니, 어쩌면 쓰다 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기계보다도 못한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곳의 노동자들 모두의 꿈은 가난을 벗어나는 것이었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열악한 식사와 끊임없는 잔업과 야근, 특근 그리고 저임금이었다. 동성금속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설립을 결의하지만, 사측은 가난에서 벗어나고픈 노동자들의 희망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노조 설립을 방해한다.
영화를 보노라면 열화된 필름과 잡음 섞인 음질이 영화의 세월을 말해준다. 그러나 작품 외적인 요소를 일절 배제하고 영화의 배경, 등장인물만을 놓고 본다면, 우리는 이것이 1990년 영화의 것인지 2023년의 영화의 것인지 분간할 수 있겠는가?
오늘도 어딘가는 부당하고 열악한 노동의 현실에 대항한 '파업전야'를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여전히 그들을 '공산주의 빨갱이'라며 몰아세우고 있을 것이다. 사측은 여전히 노사화합의 가면을 씌워 파업을 저지하고 노조를 분열시키려는 책동을 멈추지 않고 있을 것이다.
구사대와 전경을 앞세워 영화의 상영을 저지하던 노태우 정부는 물러갔다. 신군부의 주역들은 역사적·법적 심판을 받았고 ―그것이 과연 합당한 수준이었는지에 대한 판단은 미루도록 하자―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영화 〈파업전야〉가 세상에 나오게 된 문제의식의 발단이 된 근본적인 현실은 아직도 그 시대에 머물러 있다.
수십 년이 지나 오늘날 영화 〈파업전야〉는 시대를 대표하는 명작의 반열에 당당히 이름을 내걸게 되었다. 영화의 OST '철의 노동자'는 집회 현장에서 빠지지 않고 불리는 대표적인 민중가요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영화가 세상에 나온 후 한참이 지나 태어난 한 사람이 영화를 보고, 그에 대한 평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영화 〈파업전야〉가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서 회자되는 것은, 역사의 한 장이 되지 못한 채 여전히 그 생명력을 잃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 시대의 비극이다. '노동자 주인 되는 세상'을 소망하던 그들의 꿈은 여전히 꿈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는 '모진 탄압과 좌절'의 시간의 견고한 사슬을 끊어내지 못했다. 그 사슬은 오늘도 노동자들의 숨통을 옥죄이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굳센 단결과 연대'의 시간을 멈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영화는 구사대의 일원이었던 '한수'가 끝내 분노하여 동지들과 함께 공장을 뛰쳐 나가는 모습과 함께 '철의 노동자'가 흘러나오며 끝을 맺는다. 언젠가 우리 사회의 부당한 노동 현실이 과거가 되고, 더 이상 영화 〈파업전야〉와 '철의 노동자'가 추억되지 않는 미래를 소망하며 이 글을 맺는다.
민주노조 깃발아래 와서모여 뭉치세
빼앗긴 우리 피땀을 투쟁으로 되찾으세
강철같은 해방의지 와서모여 지키세
투쟁속에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껴보세
단결만이 살 길이요 노동자가 살 길이요
내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아 민주노조 우리의 사랑 투쟁으로 이룬 사랑
단결투쟁 우리의 무기
너와 나, 너와 나, 철의 노동자
안치환 - 철의 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