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취한하늘 Jan 29. 2021

[Movie] 성장, 모든 생명의 영원한 숙제

@ 글 내용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의 내용과 결말을 알아도 괜찮은 분만 읽어주세요.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성장'한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성장을 위해 노력한다. 성장이라는 것은 더 완전해지고자 하는, 그래서 더 잘 생존하고자 하는 생명체의 본능이다. 당연히 인간에게도 성장은 중요한 요소이며,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성장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주변 사람, 우리 사회의 성장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성장이라는 주제는 드라마, 게임, 영화, 소설 등에 단골로 등장하는 주제가 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성장의 과정을 거쳐왔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성장의 이야기는 쉽게 공감을 얻어낸다.

이번 글에서는 세 편의 영화를 통해 바로 이 '성장'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 피할 수 없는 소년소녀들의 성장통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내가 성장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다. 주인공 마코토는 어느 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요새는 워낙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이제는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에 피로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주인공 마코토가 시간 여행을 사용하는 방식은 다른 이야기와 느낌이 조금 다르다. 마코토는 이 능력을 이용해서 노래방에서 원 없이 노래를 부른다. 시간이 다 되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노래를 선곡하는 것이다. 일상의 사소한 실수를 만회하기도 하고,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기도 한다. 이 얼마나 유쾌하고 청춘다운 모습인가. 어른들에 비하면 시간 여행을 대하는 태도가 무척 경쾌하다.

신나게 능력을 사용하던 마코토는 능력을 사용하는데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능력을 이용해 나의 불행을 피하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 불행을 대신 겪게 된다. 감독이 운명론자라서 이런 설정을 넣은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스스로 짊어져야 할 것을 피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성장기에 빠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 낯설게만 느껴지는 그 감정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마코토. 하지만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치아키와 결국 헤어지고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되는 것은, 어쩌면 그 시절의 사랑이란 것이 대부분 그렇게 아픔으로 남게 되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아픔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다시 또 힘차게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을 마코토를 통해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 복잡한 감정들도 모두 성장을 위해 필요한 일부분이니 피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미래를 향해 달리고 있는 소년소녀들이니까.


굿 윌 헌팅 - 자신을 안아주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영화 '굿 윌 헌팅'은 조금은 다른 관점의 성장 이야기를 풀어낸다. 주인공 윌은 비록 좋은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누구도 가지지 못한 천재성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 천재성을 알아본 한 교수에 의해 좋은 제안도 받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천재성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천재성은 그저 청춘들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영화에서 시선을 두고 있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마음이다.

윌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양부로부터 지속적인 학대를 받은 윌은 상처가 깊은 청년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깊게 남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윌은 자존감이 낮은 청년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늘 다른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이는 결국 다른 사람에 대한 공격성으로 나타난다.

다행히도 윌에게는 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친구 처키가 그렇고, 연인 스카일라가 그렇고, 로빈 교수가 그렇다. 주변 사람들의 진심 어린 사랑은 결국 꽉 닫혀있던 윌의 마음을 열게 한다. 특히 로빈 교수는 윌이 자책에서 벗어나 자신을 끌어안을 수 있게 이끌어 준다.

윌처럼 학대를 받은 것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크고 작은 상처를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때때로 그런 상처들은 자신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요새 많이 쓰이고 있는 '자존감'이라는 말은 자신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마음을 말한다. 예전에는 '타인을 존중하는 것'만을 강조하고 교육하였다면, 지금은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타인을 존중하려면 먼저 자신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상처를 피하지 말고 대면해야 한다. 마음속 상처를 인정하고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는 자신을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안아주는 것이야말로 다른 어떤 것보다도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며, 그런 위로를 통해 사람은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된다.


라디오 스타 -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


사람이 성장한다는 것은, 단순히 나이를 먹고 어른의 몸이 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때로 우리는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영화 '라디오 스타'의 최 곤은 화려한 록스타였던 젊은 시절에 머물러 있다. 이제 더 이상 찾는 사람도 없는 한물간 연예인이지만, 최 곤은 아직 자신을 최고의 록스타로 여기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을 최고의 록스타로 대우해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실은 최 곤의 기대와는 다르고, 그래서 최 곤은 자신을 부당하게 대우하는 세상과 충돌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그런 최 곤의 옆에는 역시 최 곤을 최고의 록스타로 여기며, 최 곤이 상처 받지 않게 보호해주는 매니저 박 민수가 있다.

이들의 일상에 변화가 생긴 것은 최 곤이 지방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DJ를 하게 되면서부터이다. 최 곤이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한 방송이고, 방송국 관계자나 지방 시청자나 모두 달가워하지 않는 방송이었지만, 이 방송 덕분에 최 곤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연결되게 된다.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좁은 세계에 갇혀 있던 최 곤에게,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평범한 사람들의 고민은 어쩌면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과거의 달콤한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에게 그 달콤함을 다시 가져다주지 않는 세상에게 짜증만 낼 줄 알았던 최 곤에게, 영월 사람들은 이런 삶도 있다고, 이런 고민도 있다고, 이런 기쁨과 이런 아픔이 있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최 곤도 점차, 자신의 좁은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더 넓은 세상 한가운데로, 사람들 사이로 나아간다.

영화에서는 최 곤을 아이로, 매니저 박 민수를 보호자로 설정했지만, 사실 박 민수도 '최 곤'이라는 좁은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결국, 영월 방송국에서의 낯선 경험은  최 곤과 박 민수 두 사람 모두를 '어른'으로 이끌어 준다. 그리고 어른이 된 두 사람은, 역설적으로 서로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된다.


로빈 윌리엄스를 추억하며..


우리가 타인의 성장기를 보면서 애잔함을 느끼는 것은, 성장에 따르는 아픔이 너무나 잘 이해되고 공감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기쁨보다는 슬픔을 통해, 즐거움보다는 아픔을 통해 성장을 이룬다. 피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그 슬픔과 아픔을 그저 잘 이겨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래서 그저 말없이 토닥여 주고 싶은 마음이 우리를 쉽게 감상에 젖게 만드는 것 같다.

지금도 성장을 위해 슬퍼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상처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 누구나 다 그렇게 아파하고 슬퍼하면서 어른이 되어 간다고 말하고 싶다. 문득, 로빈 윌리엄스가 보고 싶어 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