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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꾸준히 쓰기 위한 나의 루틴

by 취한하늘

'문명하셨습니다'라는 유행어로 유명한 '문명'이라는 게임이 있다. 오래된 시리즈로 여러 편의 게임이 출시된 바 있는데, 중독성이 강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문명하셨습니다'라는 말도 이 게임을 하다 삶에서 일정 시간 삭제되었다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는 말이다. 물론, 나 역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살면서 했던 수많은 게임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가 바로 이 '문명' 시리즈인데, 이 시리즈에 소모한 시간이 족히 2,000시간이 넘는다.(아, 내 인생..)


이 게임에서는 문명을 성장시키는 것이 주요 활동이다. 문명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기술이나 유닛 같은 것들을 획득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기술이나 유닛을 획득하기 위해 열심히 턴(이자 플레이어의 인생..)을 소모한다. 그렇게 턴을 소모해서 기술이나 유닛을 획득하고 나면, 그 효용을 만끽하는 데 또 여러 턴을 소모하게 된다. 그리고, 충분히 효용을 만끽하고 나면, 달성까지 얼마 남지 않은 다른 목표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면, 30 턴이 필요한 기술이 이미 20 턴 채워진 채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렇듯 촘촘하게 구성된 '유혹-노력-성취-보람'의 메커니즘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머리가 덥수룩하고 수염이 지저분하게 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아, 내 인생..)


정리를 해보면, 게임이 어느 한순간에도 모든 것이 깔끔하게 마무리된 상태로 남지 않는 것이다. 늘 무언가는 조금만 더하면 완료할 수 있는 상태로 존재하고, 그 마무리되지 않은 무언가가 자꾸 내 마음을 자극하는 것이다.(그래서 '문명'은 플레이를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원리를 글 쓰는 데 이용하고 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집중해서 그 글을 마무리한다. 생각이 어떤 주제에 집중되어 있을 때 마무리까지 달려야 전체적으로 일관된 느낌을 갖는 글이 된다.(내가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의 글을 마무리한 다음에 바로 작업을 종료하지 않는다. 항상 다음 글을 위한 페이지를 생성하고, 페이지 위 쪽에 글의 제목까지 적어 놓고 작업을 끝낸다. 때로는 대강의 줄거리를 적어 놓기도 한다. 그렇게 작업을 끝내고 나면 마무리되지 않은 글이 마음에 남고, 그 글을 마무리하고 싶은 욕망이 나를 계속 자극하게 된다. 그래서, 머지않아 나를 다시 글 쓰는 작업으로 데려다 놓는다. 이런 메커니즘 덕분에 지난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 번도 원하는 시간에 글을 발행하지 못한 적이 없다. 게다가, 다음 글의 주제가 항상 머릿속에 있어서, 평소에도 주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이런 방법이 누구에게나 통하는 보편적인 방법은 아닐 것이다. 완료하지 않은 퀘스트는 완료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 적절한 방법이다. 중요한 건,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면 필요에 따라 그것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어떤 '조건'에 반응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조건'을 이해하면, 부족한 의지를 메워주고 성취를 향해 나아가도록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오랜만에 '문명 5'를 한번 플레이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십 분만 하고 그만두면 별 문제없을 것이다. 아마도..(아,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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