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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Jun 04. 2021

내 인생의 책들

나도 고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어쩌다 보니, 떡볶이와 게임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풀어놓게 되었지만, 나에게도 독서와 음악 감상이라는 고상한 취미가 있다. 특히 독서는 평생에 걸쳐 즐겨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내 돈으로 처음 책을 산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그때 산 최초의 책은 속담을 이야기로 풀어낸 책이었고, 두 번째로 구매한 책은 교훈을 담은 이야기가 40개 들어있는 책이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을 그때 처음 배웠고, 사자의 발톱에서 가시를 빼준 주인공이 검투사가 되어 다시 만난 사자에게 보은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생각난다.

중학교 때는, 대학생인 형이 용돈을 주면 꼭 책 하나와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샀다. 이때는 주로 고전 문학을 볼 때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몰입해서 봤던 책이 '제인 에어'였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주로 선물 받은 책(생일 선물로 책을 많이 받았다.)을 보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고,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다시 사서 보게 되었다.

기억에 남는 책이 무척 많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책을 몇 개만 골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대부분 유명한 책이어서,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익숙한 책들일 것 같다.


데미안 - 그야말로 내 인생의 책


워낙 유명한 책이고 전 세계의 많은 청소년들에게 여전히 큰 영향력을 끼치는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처음 본 것은 중학교 때였다. 헤르만 헤세를 이 책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던 것 같은데, 이후 한동안 헤세의 책을 찾아서 볼 만큼 감명을 크게 받았던 기억이 있다.

사실 내용이 쉽지만은 않은 편이어서, 중학교 때는 절반 정도만 이해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안에 모든 해답이 들어있다는 것과 끝없는 자아 성찰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세상의 기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쳤고, 내가 가진 철학이나 사상은 대체로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후 대학생이 되어서 한번 더 읽고, 직장인이 되어서도 한번 더 읽었는데, 세 번 읽고 나서는 데미안과 싱클레어가 사실 동일 인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지 가상의 인물을 설정했다고만 생각했는데, 세 번째 읽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되고자 했던 이상적인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싱클레어가 필요로 할 때마다 데미안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헤세를 읽고, 나중에 전혜린까지 읽고 나니, 그 뿌리에 존재하는 니체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사서 봤는데, 그 내용이 나에게는 너무 난해한 데다, 잘 읽히는 글도 아니어서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다. 이후 아직도 본격적으로 니체에 도전하지 못하고 있는데, 언젠가 한 번은 마음먹고 파고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삼국지 - 변화하는 대하소설


내가 소설 중에서 세 번 이상 읽은 것은 데미안과 삼국지뿐일 것 같다. 특히, 삼국지는 여러 가지 버전으로 많이 읽었고, 드라마나 게임으로도 많이 접했다. 최초의 삼국지는 한 권짜리 책이었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초등학생 때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삼국지의 이야기가 기본적으로 '영웅'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처음 읽었을 때부터 크게 끌렸던 것 같다. 이후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정비석의 삼국지를 읽었고,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었다.

삼국지가 지금 봐도 참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이문열의 삼국지만 봐도, 10권이나 될 정도로 분량이 많은 이야기임에도 별로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한 번은 그래서 왜 삼국지는 이야기가 그렇게 긴데도 불구하고, 비슷한 길이의 다른 소설들보다 더 흥미진진한 것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해답을 이야기의 '변화'에서 찾았다.

처음에는 궁을 중심으로 한 모략이 펼쳐진다. 하진과 십상시, 동탁의 이야기는 궁 주변을 잘 벗어나지 않는다. 황건적을 퇴치하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여러 영웅의 등장을 위한 소재 정도로만 쓰이고 있다. 그러다가, 동탁 토벌 연합이 형성되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영웅전의 성격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여러 무장이 등장하고 각자의 무용을 자랑한다. 이런 '힘 자랑'은 원소가 세력을 넓히는 과정에서부터 점차 '지혜 자랑'으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이후 적벽대전까지는 무장의 무용보다는 책사의 지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적벽대전 이후에는 위/촉/오의 구도가 형성되면서, 세 세력 간의 줄다리기가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이렇게 이야기의 '형태'가 변화하는 대하소설이 또 있는지 모르겠다. 새삼 이야기를 풀어내는 나관중의 솜씨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 다시는 읽지 못하는 책


이 책을 목록에 넣을까 말까 고민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책을 한번 읽은 후에 다시 읽고 있지 않고, 앞으로도 읽지 않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읽고 싶어도 읽을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슬픈 이야기를 잘 보지 못하는 성격이다. '개구리 왕눈이'의 왕눈이가 업신 여김을 당하는 것만 봐도 가슴이 저미는 편이다. 드라마를 보다가 좋은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더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아내와 같이 드라마를 보는 것이 어렵다. 좀 유쾌한 내용의 드라마 정도나 같이 볼 수 있다. 심지어 영화를 볼 때도 새드 엔딩인지 확인하고 보는 경우가 많다.(그래서 어벤저스 엔드 게임도 안 보고 있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젊은 시절 읽은 책이다. 그 시절에는 새드 엔딩에 지금보다 덜 민감했다. 그런데도 나는 이 책의 내용이 너무 슬펐다. 지금까지도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 중 가장 슬프게 느껴지는 이야기다. 그래서 한번 읽은 이후로 다시는 이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

나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다. 나이가 들면서 감성이 조금 풍부해지기는 했지만, 젊은 시절에는 정말 감정의 기복이 거의 없었다. 공감 능력이 원래 좋은 편은 아닌 데다, 사춘기 시절부터 '평정심'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면서 성장했기 때문에, 좋은 일에도 안 좋은 일에도 크게 흔들림이 없었다. 그런데 유독,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고난을 겪는 어린아이들에 대해서는 마음이 많이 흔들렸던 것 같다. 그 시절에는 결혼하기 전이었고, 당연히 자식을 키우는 입장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제제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많이 불편하다. 단지 소설 속의 인물인데도 그렇다. 심지어 작가가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불편한 것은, 현실에 수많은 제제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앞으로도 읽지 않을 것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했지만, 아무래도 언젠가는 한번 다시 읽어야만 할 것 같다.


아스팔트 사나이 - 치밀한 구성


'아스팔트 사나이'는 만화책이다. 자동차에 인생을 바친 주인공 이강토의 이야기이면서, 자동차 회사 간의 치열한 경쟁을 그리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 허영만은 '타짜'나 '식객'을 그리면서 사전에 엄청난 양의 공부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스팔트 사나이'에서 이미 그러한 진가가 발휘되고 있었다.

만화책을 소장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스팔트 사나이'는 오랫동안 내 책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완독 한 이후에는, 컴퓨터로 무언가 작업을 하다가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책장에서 '아스팔트 사나이'의 아무 편이나 꺼내어 아무 부분이나 펼쳐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처음 읽을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복선들을 새로 발견하게 되면서 작품의 치밀한 구성에 대해 감탄을 했다.

전체적인 내용은 한국의 자동차 회사가 한국을 제패하고, 이어서 세계 자동차 시장까지 석권한다는 내용이다. 다소 현실감이 떨어질 수 있는 내용이고, 실제로 판타지에 가까운 설정이 포함되어 있지만, 작품 전체에 깔려있는 리얼리티가 이야기를 현실 가까이에 붙잡아 주고 있다. 이런 것이 허영만 작가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구성도 좋지만, 한컷 한컷의 구도도 좋았는데, 마치 영화나 드라마의 카메라 웍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작가의 만화들에서도 좋은 구도를 볼 수 있었기는 하지만, 유독 '아스팔트 사나이'의 컷을 보면서 영화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다.

만화가 시나 소설 같은 문학 작품에 비해 수준이 낮은 것으로 여겨졌던 시절이 있다. 그것을 동일한 반열로 끌어올린 사람이 허영만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처음 느낀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었다.


홀로서기 - 나를 시에 몰입하게 만든 책


초등학교 때도 가끔 시를 써보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시를 좋아하고 쓰게 된 것은 '홀로서기'를 만나고 난 이후부터인 것 같다. 당시 노트 표지 같은 데서 흔하게 볼 수 있던 시가 서정윤의 '홀로서기'였다. 그리고, '둘이 만나 서는 것이 아니라 홀로 선 둘이 만나는 것'이라는 시구가 내 마음속에 '팍'하고 꽂혔다.

이후에 서정윤의 시집은 나오는 대로 다 샀다. 그리고 슬슬 다른 시인의 시들도 읽기 시작하면서, 누군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인지 질문받으면, 시집을 사달라고 하여 받기도 하였다.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때, 국어 시간 중 한 시간이 작문 시간이 되어 그때 시를 많이 써봤던 것 같다. 이후 대학교에 진학하고 군대를 가기 전까지 시를 여러 편 만들어 봤다. 당시 썼던 시들은 지금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모두 잃어버렸는데, 기억 속에 조금 남아있는 시들을 떠올려 보면, 억지로 꾸역꾸역 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서인지, 군대를 다녀오고 난 이후에는 시를 잘 쓰지 않았다. 지금 내 아내로 있는 사람과 연애를 시작한 후에 몇 번 편지에 담아 보낸 것이 전부인 것 같다.

지금도 시는 참 어렵다. 여전히 시에 매력을 느껴 간혹 도전해 보는 경우가 있기는 한데, 생각만큼 잘 쓰이지 않는다. 세상을 보는 시선 자체가 공감각적이어야 좋은 표현의 진실된 시가 나올 텐데, 나는 세상을 추상화시켜 보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주제를 잡는 것에는 익숙해도 시적 표현을 만들어 내는 것은 서툴기만 하다.

그 시절에 산 서정윤의 시집 중 세 개가 아직 내 책장에 꽂혀 있다. 연도를 보니 1993년에 발행된 것이 두 권, 1995년에 발행된 것이 한 권이다. 쉽게 버려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기는 한데, 막상 '홀로서기'를 펼쳐 본 것이 몇 년 전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브런치를 하면서, 다른 작가님들의 시를 많이 접하게 되어, 요즘은 시를 꽤나 많이 읽고 있기는 한 것 같다.


시간 보내기 참 좋은 물건


어렸을 때부터 어디 나갈 때 꼭 책 한 권을 들고나갔다. 가방이 있으면 가방에 넣고, 가방을 안 들고나갈 때면 책만 손에 들고나갔다. 술 약속이 있을 때도 들고나갔고, 그렇게 들고나가서 들고만 다니다가 다시 들어올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들고 다니면 조금이라도 더 읽게 되기는 했다. 지하철 안에서든, 친구를 기다리면서든 딱히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야 할 때, 책을 읽으면 시간도 금방 가고, 의미 있는 활동을 한 것 같아 기분도 좋았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는 책을 많이 못 읽고 있다. 일단 재택을 하다 보니 돌아다니는 시간이 적어진 것도 있고, 집에서 시간이 날 때면 책을 읽기보다 글을 쓰는데 시간을 쏟고 있는 것도 독서량이 줄어든 이유 중 하나이다. 그래서 이제는 글 쓰는 시간의 일부를 책을 읽는데 할애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올해 일과 관련된 글들을 쓸 계획이었기 때문에 작년에는 조직 이론이나 경영 관련된 책을 많이 찾아 읽었다. 내년에는 '이야기'를 만들어 볼 생각이니, 올해는 소설을 많이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오랜만에 서점부터 한번 방문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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