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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Mar 04. 2022

내 인생의 책들 2

책만 있으면 충분했던 시절들


초등학교 때부터 도서관에 다녔다. 초등학교 때는 시립 도서관에 다니고, 중학교 때는 중앙 도서관, 고등학교 때는 부평 도서관과 주안 도서관을 자주 갔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주로 공부하러 다녔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 것이 참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책이 많았던 것 같지는 않지만, 그때는 보물창고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책 읽는 습관이 들어서인지, 커서도 책을 많이 들고 다녔다. 학교에 갈 때도, 친구를 만나러 갈 때도, 출근할 때도, 손에 책이 없으면 허전함을 느끼고는 했던 것 같다. 같이 만나 한잔 기울이던 친구가 술 마시러 오는 데 책은 왜 들고 왔냐고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렇게 항상 들고 다니면서, 친구를 기다리는 10분 만이라도 책을 볼 수 있는 게 좋았다.

책과 함께 한 시간이 많다 보니 추억이 떠오르는 책들도 많다. 지난번에 이미 다섯 권의 책에 대해 글을 하나 썼는 데도, 아쉬움이 남아서 다섯 권을 더 추려봤다. 다른 책들도 좋은 책들이 많지만,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봤을 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책들이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들


초등학교 5학년 때 추리 소설을 많이 읽었다. 더 어렸을 때는 셜록 홈스의 이야기를 좋아했는데, 5학년 때 아가사 크리스티를 알게 된 이후로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을 많이 읽었다. 당시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 한 권의 가격이 1,500원 정도였던 것 같은데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 셜록 홈스의 이야기가 모험담에 가까웠다면,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은 정통 추리물의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을 탐닉하는 동안에는 셜록 홈스의 이야기를 추리 소설로 취급하지 않았던 기억도 난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은 나뿐만 아니라 형과 누나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서, 주로 형이나 누나가 돈을 대고 내가 서점에 가서 사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빨간색을 기본으로 한 표지의 시리즈물 중에서 한 두 권씩 골라 샀는데, 꽤 많이 샀기 때문에 내가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도 집에 몇 권은 존재했던 것 같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들 중 유명한 것은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같은 것이겠지만, 나에게는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나 '예고 살인', '화요일 클럽의 살인' 같은 작품들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추리 소설을 작가와의 대결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허를 찔린 작품들이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갈매기의 꿈


내가 다닌 중학교는 인천에서 학생 수가 가장 많은 중학교였다. 한 반에 56명 정도 있었고, 한 학년에 열다섯 반이 존재했다. 그래서 한 학년이 800명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와 그 주변이 조금 험하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 학교에 배정받은 한 친구는 울기도 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험한 환경이기는 했던 것 같다.

그 중학교에 많이 붙어 있던 문구가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문구였다. 액자에 담긴 포스터 형태로 몇 군데 있었던 것 같은데, 처음 봤을 때부터 그 문구가 나를 사로잡았다. 한참 생각이 많던 시절이고, 유명한 문구에 영향을 많이 받던 시절인데, 유독 갈매기 한 마리 아래에 있는 문구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서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읽었다.

중학교 때 인상 깊게 읽은 책들이 '갈매기의 꿈', '노인과 바다', '데미안' 같은 책들이다. 그 시절의 나는 '자아 성찰'에 깊이 몰입하고 있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건, 중요한 건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던 시기다. 그런 시절의 초입에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책이 '갈매기의 꿈'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 시절에 만들어낸 자아의 영향을 받고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


자아 성찰의 끝에서 나는 교육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교육 현실에 대해 불만이 많았고, 그래서 진정한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부딪혀 보고 싶다는 의욕에 불타오르며 교육자의 꿈을 접었지만, 지금도 교육자가 되었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한참 교육자의 삶을 꿈꾸고 있을 때 접한 책이 '죽은 시인의 사회'다. 영화로 더 유명한 작품이지만, 나는 책으로 먼저 접했다. 고등학생이었던 시절의 어느 밤에,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단숨에 읽어내려갔던 것 같다. 그만큼 몰입해서 읽었던 책이다. 키팅 선생님의 교육관에 빠져들었던 것 같고, 책에 나오는 교육 현실이 내가 몸담고 있는 한국 교육의 현실과 겹쳐 보였던 것 같다.

단순히 시험 점수를 높여주는 게 선생님의 역할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좋은 선생님이 많아야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더 커서는 교육이 아니라 다른 곳이 먼저 바뀌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교육의 변화로부터 다른 곳의 변화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육자가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안 그랬으면 좌절감을 많이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반지 전쟁


지금은 '반지의 제왕'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한국에 번역된 책의 제목이 처음에는 '반지 전쟁'이었다. 그리고 약간 두꺼운 책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책은 누나가 권해줘서 읽었던 것 같다. 그때가 재수할 때였는지, 대학에 진학한 후였는지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아무튼 꽤 분량이 많은 소설인데 굉장히 몰입해서 읽었고, 내가 두 번 읽은 몇 안 되는 소설 중 하나다.

'반지 전쟁'은 판타지 소설이다. 그런데, 여느 소설과는 느낌이 상당히 달랐다. 보통의 판타지 소설은 물리적인 행위가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었는데, '반지 전쟁'은 '빛의 기운'과 '어둠의 기운'이 서로를 밀어내고, 때로는 피하기도 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중심으로 묘사를 진행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고, 그래서 두 번 읽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이기도 한다. 사우론이 동양의 침략자이고, 반지원정대는 동양의 침략자를 물리친 서양의 영웅처럼 느껴진다.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이미 그런 논쟁이 존재했던 것 같고, 대체로 오해라는 쪽의 의견이 대세인 것 같다. 하지만, 중간계의 지도가 유럽을 떠올리게 하고, 사우론의 위치가 대략 터키 부근에 해당하는 걸로 봐서, 몽골군의 침략이나 이슬람 제국의 확장을 모티브로 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반대로 십자군 원정을 모티브로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방인


'이방인'은 40대 들어서 읽은 책이다. 언젠가 고전 문학을 몇 개 사서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 '이방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길지 않은 내용이라서 금방 읽을 수 있었는데, 주인공을 보는 느낌이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책을 다 읽고도 여운이 오래갔다.

열두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 장례식장의 장면이 머릿속에 일부분 남아 있다. 사람들이 무척 슬퍼하고 있었지만, 정작 나는 슬픔을 별로 느끼지 않았다. 당시 아버지는 아파서 병원에 있거나, 아니면 늘 어딘가에서 놀고 계셨다. 아버지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추억이 거의 없었다. 아버지 오토바이 뒤에 타고 공원에 나갔던 기억 한 두 번이 전부다. 그래서 그런지, 그다지 슬프지 않았다. 하지만, 슬픈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커가면서도 그런 일들이 여러 번 있었다. 나에게는 느껴지지 않는 감정을 가끔 연기해야 했다. 그것이 싫었고, 그래서 어쩔 때는 그런 자리를 일부러 피하기도 했다. 내 감정대로 세상을 사는 것이 어려웠고, 두렵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뫼르소를 이해할 수 있었고, 당당한 모습을 부러워하기도 했던 것 같다.

감정도 배우는 것이다. 감정은 경험으로부터 배워진다. 그래서, 경험이 부족하면 감정도 다양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부분들을 쉽게 이해받지 못하는 것이 내가 성장하던 시기의 우리 사회였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을까?


문학이 재밌다


어쩌다 보니 다섯 권 모두가 문학의 범주에 들어있는 책이다. 사실 문학은 내가 참 좋아하는 분야다. 읽다 보면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책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편이지만, 문학은 그중에서도 특히 좋아한다. 한동안은 커리어를 생각하면서 책을 읽었기 때문에 문학을 가까이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제 다시 문학을 몇 권 읽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한 페이지에 담을 수도 있는 내용을 긴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 많다. 그렇게 길게 풀어내면서 한 문장도 의미 없는 문장이 없도록 만드는 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주제로 그렇게 긴 내용을 만들어 내려면, 그 주제에 대해 아주 깊고 다양한 성찰이 필요할 것 같다. 덕분에, 문학을 접하는 나도 하나의 주제에 대해 길고 깊게 고민하게 된다. 그것이 내가 문학을 좋아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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