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취한하늘 Jun 14. 2024

추억이 담긴 음식

어떤 음식을 보면 어떤 사람이 생각난다. 어떤 음식을 보면 어떤 장면이 생각난다. 음식은 우리의 삶과 늘 함께한다. 그래서, 음식에는 자연스럽게 추억이 묻어난다. 나에게도 그런 음식들이 있다.


짜장면, 순대, 만두


나보다 여섯 살 많은 형이 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에게는 삶의 롤모델이었던 형이다. 그런 형이 군대를 갔다. 그리고 훈련소를 퇴소하는 날, 가족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형은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와 형, 나는 중국집에 갔고, 짜장면 세 개를 시켰다. 짜장면이 나오자 나는 젓가락으로 짜장을 열심히 비볐다. 1분 정도 지났을까? 이제 먹어도 되겠다 싶은 순간, 형이 그릇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형의 그릇에는 짜장면이 있었던 흔적만 남아 있었다. 그 장면이 나에게는 정말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짜장면과 관련된 기억이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기억은 그때의 형이었다. ‘군인이 되면 다 저렇게 먹는 건가?’ 하는 생각도 했다.


형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 몇 가지 더 있다. 순대와 만두가 그것이다. 어렸을 때 심부름값을 받고 형 심부름을 많이 했다. 특히, 서점에 가서 책을 사 오는 심부름과 음식을 사 오는 심부름을 많이 했는데, 음식 중에서는 순대와 만두 심부름을 많이 했다. 형이 순대와 만두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순대는 ‘순대와 간’만 달라고 했고, 만두는 ‘야끼만두’를 사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식 가게가 있는 점포가 아니라 작은 노점에서 파는 것을 사 왔다. 심부름을 하고 나면 100원의 심부름값을 받았는데, 그걸 받으면 바로 오락실로 향하곤 했다.


밀크커피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재래시장이었다.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한 공간에는 넓은 광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광장의 구석에 커피 자판기가 있었다. 메뉴는 네 가지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난다. 밀크커피, 프림커피, 블랙커피, 코코아가 그것이다. 프림커피는 먹어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블랙커피는 한번 먹어봤는데, 너무 써서 다 먹지도 않고 버렸던 것 같다. 그나마 종종 먹었던 것이 코코아와 밀크커피다. 1980년대의 국민학생이 커피를 접하기는 쉽지 않았다. 커피는 왠지 어른들의 음료라는 느낌이 있었다. 아마 먹고 싶다고 해도 어른들이 주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종종 자판기 커피를 이용했다. 단 맛이 나는 밀크 커피는 어린이들도 먹을만했다. 하지만, 가격이 싼 것은 아니었다. 내 기억에는 150원이었던 것 같은데, 우리들에게 그것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오락 한 판이 50원이었고, 과자도 50원이나 100원에 팔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어른 흉내를 내고 싶어 하는 재래시장의 어린이들이 가끔 누리기에는 괜찮은 사치였다.


자판기 커피를 특히 많이 먹었던 시기가 있다. 바로, 수험생 시절이다. 나는 주로 공공 도서관에서 공부를 많이 했는데, 잠을 쫓아내기 위해서 자판기 커피를 많이 마셨다. 많이 마실 때는 하루에 7잔을 마신 적도 있다. 그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커피가 잠을 쫓는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많이 마셨는데, 그래도 피곤해서 엎어져 잔 적이 종종 있다. 아마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기를 바라며 마시지 않았을까 싶다.


컵라면과 김밥


도서관이 생각나는 음식이 또 있는데, 바로 컵라면과 김밥이다. 도서관 중에는 식당이 있는 도서관도 있었고, 매점만 있는 도서관도 있었다. 그리고, 식당이 있는 도서관에서는 라면을 많이 팔았다. 하지만, 나는 식당이 있는 도서관에서도 컵라면을 많이 먹었다. 컵라면만 먹지는 않고, 김밥을 항상 함께 먹었다. 컵라면과 김밥을 많이 먹은 것은 그것을 특별히 좋아해서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돈을 아끼려는 이유가 강했던 것 같다. 그 당시의 나는 돈을 넉넉히 들고 다니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먹는 것에 돈을 쓰는 것을 아까워했다.


컵라면과 김밥을 즐겨 먹었던 때가 나중에 한번 더 있었다. 직장을 다니던 도중이었다. 보통 3개월 정도 소요되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경쟁사를 따라잡기 위해 2개월 만에 완료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래서, 출근할 때 컵라면과 김밥을 샀고, 점심시간에도 컵라면과 김밥을 먹으며 개발 작업을 진행했다. 결국, 그 프로젝트는 1개월 반 만에 끝냈던 것 같다. 힘들기는 했어도, 그 기간 이후에는 다시 여유를 찾을 수 있었고, 그 프로젝트 덕에 나에 대한 평가가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나로서는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순두부찌개, 햄버거, 떡볶이


대학생 시절에 게임에 빠져 살았던 시기가 있다. 잠깐이 아니고 꽤 오래 그렇게 살았다. 2년 정도를 그렇게 살았고, 그래서 무려 세 학기를 평균 학점 0점대로 마무리했다. 나중에 게임 업계에서 일한 것을 생각하면 아주 무의미한 기간은 아니었지만, 당시만 놓고 보면 ‘게임 폐인’ 그 자체였다.


아침부터 밤까지 게임만 하고 살았지만, 그래도 밥은 먹어야 했다. 그래서 하루에 한 번 정도 나가서 식사를 했는데, 항상 같은 식당에 가서 같은 메뉴를 시켰다. 그것이 바로 순두부찌개였다. 가격은 3,500원으로 기억이 난다. 지금은 끼니마다 다르게 먹으려고 노력하지만 그때는 생각이 달랐다.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면 질리지 않는 한 그 음식을 계속 먹었다. 오히려, 점심때 중국 음식을 먹었다는 이유로 저녁에 중국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도 그런 성향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남들에 비하면 같은 음식을 꽤 자주 먹는 편이다.


폐인처럼 살았지만, 가끔은 외출하는 일도 있었다. 학교를 가는 경우도 있었고, 사람들을 만나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햄버거 두 개를 샀다. 다음 날의 점심과 저녁 식사였다. 밥 먹으러 나가는 시간도 아까웠던 것이다. 그런데, 한 번은 그 햄버거 때문에 배탈이 난 적이 있다. 더운 여름날이어서 저녁에 먹은 두 번째 햄버거가 약간 상한 모양이었다. 다행히 크게 탈이 난 것은 아니지만, 그다음부터는 햄버거를 한 번에 두 개씩 사는 일은 없었다.


떡볶이도 종종 먹었는데, 적은 비용으로 식사를 해결하고자 할 때 이용했다. 지하철 역 근처에 떡볶이집이 있었는데, 1,000원짜리 떡볶이에 계란 1개와 튀김 만두까지 들어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조금 하기는 했지만, 가끔씩 가진 돈이 거의 바닥날 때가 있었다. 그럴 때 특히 그 떡볶이를 애용했던 것 같다.


특별한 음식


요즘음 맛집이 참 많다. 예전에는 몰랐던, 혹은 없었던 새로운 음식들도 많다. 그런 음식을 먹으면 맛있기도 하고, 좋은 경험을 했다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아무리 맛있고 유명한 음식도 나에게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오히려 추억이 묻어 있는 평범한 음식들이 나에게는 더 특별하다. ‘진정한 맛’, ‘새로운 맛’ 보다는 어떤 기억을 생각나게 하는 맛이 나는 더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운이 좋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