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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Jun 25. 2021

행복의 조건과 게임

행복의 조건


긍정심리학이라는 것이 있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강점을 바탕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심리학의 한 분야다. 이 긍정심리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마틴 셀리그먼이 행복을 위한 조건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하였는데, '긍정적 정서(Positive emotion)', '몰입(Engamement)', '관계(Relationship)', '의미(Meaning)', '성취(Accomplishment)'가 그것이다. 다섯 가지의 첫 글자를 따서 PERMA라고도 부르는데, 이 PERMA를 통해 사람은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저 다섯 가지를 보면서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가 있었으니, 바로 '게임(Game)'이다. 게임이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들에 저 다섯 가지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동안, 게임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지에 관해 많은 설명들이 있었고, 나 또한 나름대로의 설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긍정심리학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 행복의 조건을 보면서, 이 다섯 가지를 통해 게임이 사람들에게 즐거움 혹은 행복을 주는 원리를 설명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긍정적 정서(Positive emotion)


게임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중에는 긍정적인 감정도 있고, 부정적인 감정도 있다. 다른 유저와 대결을 하여 이겼을 때는 기분이 좋고, 졌을 때는 기분이 나쁠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더 많다. 게다가,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연출을 화려하게 해서 기쁨을 더 증폭시키는 반면에, 나쁜 일이 있을 때는 담백한 연출로 별일 아닌 것처럼 처리하기도 한다.

'게임'이라는 말에 늘 따라다니는 단어가 '재미'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재미를 주고자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재미를 느끼기 위해 게임을 한다. 사람마다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가 다양하기는 하지만, 게임마다 재미를 느끼게 하는 요소도 다양하고, 사람들이 본인에게 맞는 게임을 적절히 찾아서 하기 때문에,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재미'야 말로 대표적인 '긍정적 정서'중 하나일 것이다.


몰입(Engagement)


게임 업계가 예전부터 치열하게 고민하고 깊이 있게 연구해 왔던 것이 바로 플레이어를 게임에 몰입시키는 방법이다. 몰입이 잘 될수록 재미를 느끼기 쉽고, 게임을 더 많이 더 오래 즐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몰입감을 증대시키기 위한 많은 연구와 실험이 진행되었고, 실제로 많은 부분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

예전에는 스토리와 아트 같은 부분으로 몰입감을 높이려고 노력했다면, 온라인 게임이 대세가 된 이후로는 시스템적으로도 플레이어의 몰입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 결과로, 예전의 몰입감은 영화와 드라마에 몰입하는 것처럼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효과를 발휘하는 몰입감이었던 반면에, 지금의 게임은 아주 긴 기간 유지되는 몰입감을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게임을 하고 있지 않은 시간조차 게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도 발생한다.(현실을 착각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게임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는 얘기다.)

게임은 다른 콘텐츠와 달리, 고객이 주도적으로 경험을 만들어 가는 콘텐츠이기 때문에, 더 쉽게 몰입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보는 것과 하는 것이 주는 몰입감의 차이는 분명 클 것이다. 실제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게임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그런 경험이 얘깃거리가 되기도 한다.)


관계(Relationship)


혼자서 게임하는 것이 대세였을 때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은 게임 영역에서 매우 약한 것이었다. 그저 같은 게임을 즐기는 사람끼리 교류하는 것 정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온라인 게임이 대세가 되면서, 게임 내에서 이루어지는 다른 플레이어들과의 관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났다. 다른 플레이어들과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 가에 따라 장르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다가 '팜빌' 같은 소셜 게임이 등장하면서, 아예 플레이어와 플레이어의 관계가 게임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전통적인 게임 요소는 약하지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소셜 요소가 강한 게임들이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특히 이 게임들은, 원래 게임을 잘 안 하던 사람들도 게임을 하게 만들어서, 게임 시장이 크게 확장되는데 일조하게 되었다.

'캔디 크러시 사가' 같은 퍼즐 게임은 게임만 놓고 보면, 예전의 퍼즐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소셜 요소가 가미된 것 만으로 공전의 히트를 했고, 퍼즐 게임 하나만으로도 연 매출 1조를 넘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플레이하고 있다.

지금은 퍼즐뿐만 아니라 모든 게임에 소셜 콘텐츠가 많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게임 안에서 이루어지는 '관계'가 게임이 주는 주요 재미 중 하나로 완전히 자리 잡고 있다.


의미(Meaning)


'의미'라는 단어가 해석의 여지가 참 큰 단어인데, 긍정심리학에서 말하는 '의미'는 '자신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 어떤 것에 소속되고 거기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어떤 것'이란 조직일 수도 있고, 혹은 신념일 수도 있는 것 같다.

요즘 게임에는 플레이어들로 이루어진 일종의 커뮤니티들이 존재한다. 전체 플레이어들을 대상으로 하는 거대한 커뮤니티도 존재하고, 그 안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뭉치는 작은 커뮤니티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커뮤니티의 존재가 플레이어들의 재미를 강화하고, 게임을 더 오래 플레이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게임 회사들도 커뮤니티의 생성과 발달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커뮤니티는 단순히 같은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모험담을 나누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좀 더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체를 이루어 해결해야 하는 게임 속 임무를 같이 해결해 나가기도 한다. 특히 어떤 게임들에는, 사람과 사람 간의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간의 상호작용도 유도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의 성공을 위해 좀 더 헌신적인 활동이 요구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활동을 통해 재미를 느끼는 플레이어가 상당히 많다.

우리나라에서 돈을 제일 많이 번 '리니지'라는 게임에 대해서, '그것은 게임이 아니라 커뮤니티다'라는 말이 있었다. 최근에는 유저들이 게임 회사에 대해 집단행동을 하는 일도 몇 번 있었는데, 그 정도로 게임에서 커뮤니티는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이 없다.


성취(Accomplishment)


성취는 게임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개념이다. 게임의 기본적인 메커니즘이, 목표를 주고 그것을 달성하면 보상을 주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물론, 긍정심리학에서 말하는 '성취'는 보상하고는 관계가 멀다. 어떤 보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자체가 행복을 준다는 것이 긍정심리학의 '성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게임 업계에서도 이미 '성취'에 대한 이런 생각들이 많이 통용되고 있다. '성취'와 관련해서 대표적인 게임 속 콘텐츠로 퀘스트나 미션 같은 것을 들 수 있는데, 퀘스트나 미션에서 얻는 보상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자체가 플레이어에게 만족감을 준다는 것이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게임 속에는 많은 '성취 시스템'이 들어가 있다. 접속하는 행위만으로도 일단 어떤 미션이 해결되고, 게임 속에서 실행하기 쉬운 액션들로 이루어진 일일 미션도 많이 활용한다. 게임을 처음 시작하면, 레벨이나 등급 같은 것이 빨리빨리 올라가면서 성취감을 여러 번 느끼게 하고, 게임을 오래 플레이해야 달성할 수 있는 목표도 설정해 주어, 커다란 성취감을 맛볼 수 있게도 해준다. 그리고 하나의 성취를 이루어 냈을 때, 다른 목표를 빨리 제시해서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이탈하지 않게 하는 데도 많이 신경 쓰고 있다.

사람이 굉장히 느끼고 싶어 하는 감정이면서, 동시에 현실에서 느끼기 어려운 감정이 '성취감'인데, 그것을 게임에서는 자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게임에 더 쉽게 빠져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게임이 아닌 곳에 게임 기법을 쓰는 이유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라는 용어가 있다. 게임이 아닌 영역에 게임 기법을 도입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교육 콘텐츠일 것이다. 아무래도 아이들은 학습이라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기 쉽다. 그래서, 예전부터 교육 콘텐츠에 게임 기법을 도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임을 하듯이 즐기면서 학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요즘은 교육뿐만 아니라, 건강이나 쇼핑 등 여러 영역에 게임 기법이 도입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게이미피케이션의 성공 사례도 점점 더 쌓이고 있다. 게임 기법을 도입하는 이유는 게임이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요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고, 제품이나 서비스에 몰입하게 하며,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다른 고객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그렇게 형성된 공동체 속에서 능동적으로 활동하게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성취감을 느끼게 되면서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호감과 충성도(loyalty)가 증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게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문가가 좀 더 여려 영역으로 진출했으면 하는 생각도 있다. 게임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은 자연히 사람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그런 이해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어떤 영역에도 쓸모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시 고객들을 자사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어떻게 더 몰입시키고, 고객들의 만족도를 어떻게 높일 것인지 고민인 사람이 있다면, 게임 전문가와 얘기를 한번 나눠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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