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하나 이야기 하나
“예술은 불안한 자들을 편안하게 하고, 편안한 자들을 불안하게 해야 한다."
- 뱅크시
‘얼굴 없는 예술가’, ‘거리의 예술가’, ‘반자본주의적 예술가’. 현대인들에게 상당한 흥미를 끌만한 타이틀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타이틀을 모두 가지고 있는 예술가가 있다. 바로 뱅크시(Banksy)다. 그는 정체를 숨긴 채 권위주의와 자본주의, 전쟁 등을 비판하고 조롱하는 그림을 거리에 남겼다. 그리고 21세기의 가장 유명한 예술가중 한 사람이 되었다.
수십 년 동안 정체를 숨기고 있기 때문에 그의 정체에 대해 흥미를 가진 사람이 많고, 그만큼 추측도 난무하고 있다. 어느 정도 믿을 만한 정보로는, 브리스톨 출신의 백인이며 결혼을 했다는 사실 정도이다. 1974년생이고 본명이 로버트 뱅크스라는 것과 고등학교를 중퇴했다는 사실도 있는데, 어느 정도의 공신력을 가진 정보인지는 모르겠다.
의문스러운 점은, 수십 년 동안 활발하게 예술 활동을 하면서 정체를 숨기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가이다. 이에 대해, 그가 정체를 숨길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혼자서는 그렇게 오래 정체를 숨기며 활동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뱅크시의 팬들 중에서도, 뱅크시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뱅크시는 그라피티(일종의 벽화)로 유명하지만 그라피티만 그리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자전적 다큐멘터리를 찍기도 했고,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호텔을 운영하기도 했다. 영국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뉴욕 현대 미술관 등에 몰래 자신의 작품을 전시해 놓기도 했는데, 어떤 작품은 3주 이상 발각되지 않았다고도 한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것은 거리의 그림이지만, 목적을 위해 다양한 수단을 활용하는 것 같다.
뱅크시와 관련한 유명한 사건으로, ‘세절된 그림’이 있다. 뱅크시의 작품으로 알려진 그림이 경매에서 비싼 가격에 낙찰됐는데, 낙찰되자마자 액자에 몰래 설치되어 있던 세절기를 작동시켜 그림이 세절된 사건이다. 낙찰자에게는 천만다행으로, 세절기가 끝까지 작동하지 않아 그림은 절반만 세절되었다.
뱅크시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조롱한다. 하지만, 그가 충분히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위의 세절된 그림만 해도, 낙찰가의 10배 넘는 가격(약 340억 원)으로 다시 팔렸다. 자본주의를 조롱하기 위해 그림을 조각내는 퍼포먼스를 준비했지만, 그것이 작품의 가격을 더 올리는 결과가 되었다. 그 작품뿐만이 아니다. 뱅크시의 그라피티가 그려진 집은 관광 명소가 되고, 집값도 크게 뛴다고 한다. 결국, 뱅크시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고자 했지만, 오히려 자본주의는 뱅크시를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얼굴 없는 예술가이다 보니 가짜 작품도 많다. 그래서 뱅크시는 웹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인증한다. 웹페이지에서 뱅크시가 인증한 작품만이 진품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여기서도 약간 의문이 든다. 뱅크시가 순수한 사회운동가라면 모작을 경계할 필요가 있을까? 수많은 뱅크시가 비슷한 메시지를 그려내는 것이 더 좋은 상황 아닐까? 모작이 많아지고 진품과 구분이 어려워지면, 뱅크시의 작품이 자본가들의 놀잇거리가 되는 것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사회비판적인 뱅크시의 태도가 거짓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에게도 예술가로서의 명예욕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뱅크시의 그림 중에는 꽃을 던지는 시위대의 그림이 있다. 뱅크시는 자본과 권력에 저항적이지만, 동시에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폭력적인 시위는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촛불을 들고 나서거나 응원봉을 흔들며 행진하는 한국의 시위 문화를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미 한국에 와서 구경하고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