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구
나는 평생 두 개의 무대에서 살았다.
하나는 포디움 위의 무대다. 지휘봉을 들고 수십 명의 연주자들 앞에 서는 자리. 조명이 켜지고 관객이 숨을 죽이는 순간, 지휘자는 혼자다. 악보를 외우고, 음악을 해석하며, 단원들의 소리를 하나로 모아야 한다. 그 고독과 책임의 무게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회의실의 무대다. 전략을 설계하고, 조직을 설득하며, 시장의 변화를 읽어야 하는 자리. 처음 기업의 CSO로 불렸을 때, 나는 이 두 세계가 얼마나 다른지를 먼저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 얼마나 같은지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 정현구, <오케스트라 경영학: 하모니의 역설>
경영 관련 서적을 읽다 보면 종종 만나게 되는 비유들이 있다. 스포츠팀, 레스토랑의 주방, 오케스트라가 그것이다. 리더십의 영향력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조직들이기 때문에 자주 비유에 사용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이 직접 스포츠팀, 레스토랑의 주방, 오케스트라를 운영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을 활용해서 예시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스포츠팀 감독들이 쓴 책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감독들은 반대로 기업 경영에 관한 경험이 거의 없다.
그런데 어느 날 오케스트라 지휘를 40년 했다는 저자의 리더십 책을 만나게 된다. 심지어 이 책의 저자는 기업 경영에 관해서도 일가견이 있다. 리더십 책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 아닌가? 그래서 읽고 있는 책을 잠시 접어두고 정현구 저자의 <오케스트라 경영학: 하모니의 역설>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책은 전체적으로 오케스트라 연주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연주하고, 회고하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각 단계마다 기업 경영과의 닮은 점을 이해하기 쉽게 서술한다. 각 챕터의 마지막에는 독자의 입장에 따라 해당 주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정리해 주기도 한다. 이런 형식 자체가 이 책의 큰 장점이 된다.
리더십 서적은 단순히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독자를 움직여서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행동을 유도하는 책은 독자를 움직이기 위한 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 무기에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책의 주제다. 참신한 접근이나 개념, 혹은 해석을 제시하여 독자의 마음에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이런 개념이나 해석은 독자가 복잡하게 받아들이던 것을 단순하게 정리해 주는 효과도 있다. 두 번째 무기는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주제가 아주 독특한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하는 방식이 좋아서 독자가 쉽게 몰입하고 공감하는 책들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는 이런 유형의 책들이 많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를 생각해 보라)
<오케스트라 경영학: 하모니의 역설>은 두 번째 무기를 가지고 있다. ‘오케스트라’라는 친숙 하면서 신비로운 소재를 통해 독자의 몰입을 만들어 내고, 오케스트라와 기업의 연결을 통해 조직 경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것은 양쪽 분야를 모두 잘 알고 있는 저자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하모니’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처럼 단순하지는 않다. 조직의 비전, 역할의 정의, 실패를 다루는 방법, 고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 등 리더십에 있어 아주 중요한 요소들을 골고루 담아내고 있다. 다만 그 요소들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방식에서 특별함이 더 돋보인다는 것이다.
내용에서도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있기는 했다. 나처럼 오케스트라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오케스트라가 매우 ‘기계적인’ 조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정해진 악보를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연주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가 이야기하는 오케스트라는 기계적이 아니라 매우 인간적이었다. 기계적으로 소리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가진 소리를 어우러지게 만들어서 연주할 때마다 새로움 음악이 탄생하도록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어쩌면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자의 태도 때문일 수도 있는데, 기업 경영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사람’에 집중하는 모습이 일관되게 보인다.
개인적으로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영화 음악들도 대부분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것들이다. 다만 늘 디지털 디바이스를 통해 오케스트라를 접했을 뿐, 현장에서 직접 들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현장의 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현장에서 듣는 소리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졌다. 아마 조만간 어느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들으러 가지 않을까 싶다.
오케스트라도 처음 리허설에서는 소리가 어긋난다. 각자의 해석이 충돌하고, 파트 간의 균형이 맞지 않으며, 지휘자의 의도가 단원들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하지만. 충분히 함께 틀리고, 함께 교정하며, 서로의 소리를 들어가는 과정이 쌓이면 - 어느 순간 음악이 스스로 흐르기 시작한다. 지휘자가 지시하지 않아도, 단원들이 전체 음악을 향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순간.
그 순간을 향해 지금 리허설하고 있는 모든 리더에게, 이 책을 건넨다.
- 정현구, <오케스트라 경영학: 하모니의 역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