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장문의 글을 쓰기 위한 준비.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다. PC 통신 시절에는 익숙하던 일이었다. 당시에는 댓글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새로 글을 쓰면서 제목에 [re:xxx] 등의 게시물 말머리로 인용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21세기 들어오면서 하이텔에 답변 게시판이라는 템플릿이 생겼지만, 텍스트 뷰어 방식의 한계로 보기에 불편했다. 어쩌면 “w 명령어 한 번에 글 한 번”으로 길들여져 온 유저들의 관성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무엇보다, 이미 인터넷은 PC 통신의 모든 것을 계승하고 있었다.
밀레니엄이 다가오기 전까지 문자는 하나의 완결된 글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전보는 그 용도의 긴급성, 비용 등의 장벽으로 문자로 표현됨에도 글에 대한 이미지를 깨지 않았다. 전보에서의 문자는 글보다는 기호로서 기능하였던 것이다. 또, PC 통신에서는 기본적으로 1게시물이 하나의 완결된 글 형태로 작성되었다. 물론 당시에도 1~2줄짜리 뻘글을 쓰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고작 15~20줄로 게시판 썸네일이 구성되던 시절이라 뻘글은 웬만큼 큰 게시판에서는 지양되는 분위기였다.“냉무”라는 제목은 쉽게 쓸 수 없었다.
그런데 ‘댓글’은 ‘SMS’와 함께 글에 대한 인식을 완벽히 전환시켰다. ‘댓글’과 ‘SMS’는 ‘문장’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인 매체이다. 기존 문단 이상 단위의 글에 익숙하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변화였다. 심지어 문장 단위로 분절하여 하나의 타래로 구성되는 서비스도 등장하였다. 트위터가 그것이다.
나는 이런 기술을 좇는 것이 즐거웠다. 트위터 역시 피쳐폰 시절부터 사용해왔다. 140자에 생각을 압축하여 작성한다는 것은 왠지 매력적이었다. 마치 시를 쓰는 기분이랄까. 상대적으로 짧은 단위의 글들 사이에 수많은 맥락이 존재하고, 그런 것들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나는 시대를 앞서간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다 개소리다.)
이제 트위터는 잘 쓰지도 않지만, 트위터에서의 습관은 여전히 나를 좀먹고 있다.학자들은 단문 글쓰기에 대하여 경고하며 가장 위험한 것 중 하나로 트위터를 꼽고 있다. 서비스 초창기부터 있어왔던 경고였으니 어쩌다 맞아 떨어졌다고도 볼 수 있고, 이제 와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니 ‘경제학적인 예측’ 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여간 장문을 쓰는 것이 너무 어려운 몸이 되어버렸다.
어쨌든 다시금 장문을 쓰게 되었다. 나는 이 서평을 앞으로 계속 장문을 쓰기 위해 훈련 삼아 쓸 것이다. 맥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나갈 수 있는 훌륭한 글을 쓰는 것은 나에게는 너무나 멀어진 이상이 되었다. 그래서 일단은 마구마구 써보려고 한다. “일취월장”은 개인의 일과 그 향상에 대한 책이므로, 서평은 주로 인상깊게 읽은 부분을 나에게 대입해보고, 타인에게도 전달할 수 있는 시사점을 숨겨놓는 정도로 진행해볼까 한다.
1장
운(運)
나는 아케이드 리듬 게임 장르에 오랜 애정을 가지고 있다. 학창시절 처음 비트매니아를 접한 이후 20년 넘게 이 장르를 즐기고 있다. PC통신 시절 동호회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하도 오래 즐기다보니 학생 때 적은 용돈으로 부모님 눈 피해가며 게임을 하던 동호회 친구들은 이제는 허튼 데 돈 쓰고 다닌다며 아내들에게 등짝 스매시를 당하며… 여전히 다니고 있다. 현재 리듬 게임은 1천 원으로 3~4곡, 약 6~7분 간 게임을 즐길 수 있다. PC방이나 당구장에 비해서 그다지 가성비 좋은 취미는 아니다.
리듬 게임의 목표는 정해진 악보를 완벽히 연주하는 것이다. 이것을 ‘올콤보(All-combo)하였다’ 고 한다. 고레벨 곡으로 갈수록 완벽히 연주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 프로필을 등록한 사람이 한국,일본, 대만, 홍콩 등에서 30만 명이 넘지만, 아직 1명도 올콤보하지 못한 곡이 여러 곡 존재하는 게임도 있다. 실제 악기로 합주할 때에도 실수를 하기 않기란 정말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밀리초 단위로 판정을 체크하는 리듬 게임에서 올콤보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환경에서도 정말 어려운 곡들을 올콤보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험이라는 요소가 존재하는 영역이기에 어느정도 재능과 실력에 기대는 측면이 있지만,최상위권에서 평준화 된 이후에 올콤보를 이루는 것은 결국 ‘운’이다. 주석으로 링크한 동영상은 게임 중 가장 어려운 곡 중 하나를 세계 최초로 올콤보한 동영상인데, 마지막에 다들 기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수많은 시도 끝에 이루어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리듬 게임은 ‘운’과 ‘성공’에 관한 명확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최고 수준의 곡을 아무런 준비없이 올콤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올콤보하기 위한 ‘확률’을 올리기 위하여 정말 많은 준비를 한다. 체력, 화면을 분석하는 반사신경, 특정 어려운 구간은 특훈을 통한 체화 등. 수많은 노력이 퍼부어져야 올콤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그 다음부터는 수많은 시도 뿐이다. 시도 중 또 계속 모자란 부분을 수정하고 연습한다. 그렇게 해서 언젠가 한 번 대망의 올콤보 리절트를 받는다. 물론 한 번 받았다고 다음에 또 받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게임이기 때문에 명확한 목표와 명확한 보상이 주어지므로,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과정을 명확히 설계할 수 있다. 비즈니스에서는 어떨까? 사업 영역에 따라, 직무에 따라 목표와 보상조차 모호한 경우들이 있다. 하는 일에 대해 운과 실력의 영향력을 최대한 정밀하게 측정하는 것을 강조한 책의 부분은 그래서 매우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주어진 영역이 어떤 곳인지 알아야 그에 대한 목표를 제대로 수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력의 영향력이 높은 곳과 운의 영향력이 높은 곳을 나누어 고려하고, 어떤 목표를 세우는 것이 적합한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2장
사고(思考)
나는 교육대학원에서 중학교 수학 교과서 중 통계 단원 관련 논문을 쓴 적이 있다. (너무나 부끄러운 졸고여서 RISS에서 비공개 처리하였다.) 여러 가지 자료들을 찾고 논문을 정리하면서 느낀 점은, 전세계 어디나 통계 교육을 오해하고 있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통계학은 수학이 아니다. 통계학에서 도구로서 수학을 사용하는 것뿐이다. 물리학, 경제학 등이 수학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독립사건과 종속사건은 단순히 확률의 곱과 일치하느냐 일치하지 않느냐로 배우고 넘어가기에는 인생 전반에 걸쳐 너무나 중요한 개념이다. 사건의 연속인 인생에서 그 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맥락적 사고를 가지는 데 가장 중요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통계 교육 연구를 티끌만큼 해본 사람으로써 책에서 이런 부분을 지적해주어 저자들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
책에서는 사건 사이의 그릇된 관계 판단으로 오는 파국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독립과 종속을 오해하는 부분이다. 독립사건을 종속사건으로 오해하는 것은 ‘과잉’ 이다. 억지로 관계를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필요한 추가 판단들이 생길 수 있고, 개중에는 돌이킬 수 없게 되는 판단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해야 할 판단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종속사건을 독립사건으로 오해하는 것은 그 자체로 ‘치명적’이다. 있는 관계를 없다고 판단해버린 것이다.
또 하나 이 장에서 중요한 지적은 공급자 중심의 사고 방식에서 탈피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요즘 시대에서는 잠언 같은 위치의 이야기이지만, 막상 실무에서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일이다. 문장 자체가 추상적인 표현이고, 분업화, 복잡화된 현대에 고객은 대부분 내 눈앞에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고객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최대한 고객을 관찰하고 고객 중심의 판단이라는 근거를 세우는 버릇을 들여야 할 것이다.
3장
선택(選擇)
나는 “생활의 달인”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주로 한 직업에서 오래 일한 경력자들이 등장하여 신기한 기술들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보다보면 그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또는 단순 작업을 요하는 작업을 보여주거나 또는 집단이 아닌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작업을 보여준다.이런 루틴한 직업군일수록 직관이 힘을 발휘한다. 경지에 오른 기술은 “예술적이다.” 라는 표현으로 찬사를 받기도 한다. “예술” 이라는 표현 자체에서 직관과 가장 닿아 있는 맥락을 읽어낼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 아닌 집단이 어떤 문제를 결정해야 하는 직업군이나 예측불가능한 상황에 대응해야 하는 직업군에서는 이런 직관이 파멸을 불러올 수 있다. 책에서는 다양한 의사결정 과정을 통하여 끊임없이 집단의 선택을 검토,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섯 단계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가장 특기할 만 하다고 여긴 부분은 바로 정보 신호, 사회적 압력에 의한 침묵이다. 타인을 신경 쓰다가 개인의 의견을 내지 못하는 상황, 또 직급, 상황 등 사회적 요인에 의하여 개인의 의견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전 회사는 이런 현상이 팽배해 있던 곳이었다. 자수성가한 기업 오너가 가장 빠지기 쉬운 오류는 독선적인 태도에 있는데, 스스로 노력하여 성공한 예시에 오너 자신이 잡아먹혀버리는 것이다. 문제는 ‘운’에서 봤듯이 한 번 성공했다고 또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더 큰 문제는 독선적인 태도가 지속되면 중간관리직들은 ‘오너의 말만 듣기만 하는’ 사람만 남게 된다. 스스로 침묵을 택하고 동료, 하급 직원들에게 CEO가 했던 말들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이제 와서 “겉으로 소통하자, 의견을 내자”라고 주장해도 회사 전체에 배어 있는 문화를 쉽게 되돌릴 수는 없다. 침묵을 넘어서 그 침묵을 남에게 강요하는 상황, 더 나아가 침묵하지 않으려 노력해도 말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회사는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 회사는 CEO의 고집으로 사업 다각화의 타이밍을 놓쳤다. 스마트 기기를 이용한 신사업을 일으키려 해도 기존 실패한 타 회사의 업무 프로세스를 답습하는 바람에, 계속 큰 폭으로 매출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손익분기점 역시 매년 큰 폭으로 갱신하고 있다. 경쟁 회사가 사업 3년 만에 흑자 전환하고 현재 비용 회수 지점에까지 다다르고 있는 시점에, 이 회사는 4년 동안의 손익분기점이 마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와도 같다. 그럼에도 CEO는 본인 자신의 의견만으로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내가 이직하게 된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4장
혁신(革新)
과거에는 개혁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던 것 같은데, 요즘은 혁신이라는 말을 더 자주 접하게 된다. 나는 개혁이라는 단어는 “고친다” 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혁신이라는 단어는 “새롭다” 에 초점을 두고 있는 차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혁신이라는 단어에 꼭 따라 붙는 것이 ‘창의’ 라는 단어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창의의 이미지는 ‘창조’이다. 많은 사람들은 어느 날 불현 듯 놀라운 아이디어가 떠올라 패러다임을 바꾸는 멋진 일이 창의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멋진 일이긴 하지만, 그런 일을 내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감나무 아래에서 입 벌리고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더 멍청한 일이다.
창의성의 핵심은 끊임없는 시도이다. 책에서 모차르트의 쾨헬 번호 등을 예시로 들어주고 있다. 나도 몇 가지 대 볼 수 있다. 근대 수학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천재인 오일러는 사후 20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전집 출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의 너무 많은 저작물 때문이다. 프로게이머 중 가장 압도적이고 창의적인 실력과 그에 따른 수상 실적을 자랑했던 워크래프트 3의 장재호는 밥만 먹고 게임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상대 서치를 켜놓고 잠을 자다가 상대가 서치되면 벌떡 일어나 이긴 다음 다시 서치 버튼 누르고 자는 수준이었다. (‘게임에 미친 놈’이라며 이 일화를 소개한 사람은 역시 당대 최고의 프로게이머 박준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무조건 같은 시도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 숙달이 되어 장인은 될 수 있겠지만, 새로워지지는 않는다. 개선을 위한 새로움을 조금씩 가미해가는 것, 그 과정에서 굴절적응 등 여러 가지 양상으로 혁신은 일어난다. 그러니까, 개혁은 ‘하는’ 것이지만 혁신은 하는 것이 아니다. 혁신은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혁신이 일어나도록 끊임없이, 많이 해보는 것 뿐이다.
5장
전략(戰略)
이 장은 주로 경영, 마케팅 분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부분이다. 주로 개발 실무를 한 나는 공부하는 심정으로 읽었다. 전략은 멋들어진 계획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물론 실행에 초점을 두어 움츠러드는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니다. 책에서는 생각보다 사람의 잠재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실제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것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전략이 훌륭한 전략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런 실행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 가장 중요한 목표에 집중, = 선행지표에 따라 행동, = 선행지표의 가시화,= 책무를 서로 공유를 제시하고 있다.
되도록 많고 빠른 trial-error, 일단 하라, 정의를 갖추어라, 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테제로 이해하였다. 마케팅 전략은 현대 직장인은 직군에 상관없이 누구나 인식하고 있어야 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을 최근에 하고 있다. 내가 가장 모르는 요소이기도 하고 하여 부연하며 곱씹어 보았다. 마케팅 전략에 대한 핵심 요소로 리마커블이라는 용어를 제시했는데, 언뜻 보면 흔히 듣게 되는 말이다. 물론 책에서는 자세한 세부 요소를 통하여 ‘리마커블’을 부연하고 있고, 그 중 통념을 수정해야 할 부분이 인상깊었다.
먼저 감성적인 부분에서 생리적 현상과 연관시킨 부분이다. “생각은 머리로, 감정은 심장으로”로 대표되는 기존 통념은 감정, 사고가 결국 시냅스와 호르몬의 작용이라는 21세기의 연구 결과들로 폐기 수순을 밟게 되었다.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격렬한 반응을 얻어내라는 것은 특히 곱씹어 볼만한 요소였다. 또 참신성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기존 상품과의 연결성을 잊어버리게 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이 부분 역시 곱씹어볼 만한 내용이었다.
6장
조직(組織)
보통 나는 책을 읽을 때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소설책 등은 단숨에 눈만 움직여가며 빠르게 읽는다. 이렇게 집중하여 읽으면서 맥락을 계속 유지하고 소설 속에 빠져들려고 노력한다. 교양서 등은 단숨에 빠르게 읽지 않고 천천히 생각하며 읽되, 중요한 부분은 메모하고, 의견을 적고 하면서 특기할 만한 내용을 곱씹는다. 그래서 내 서가에서 책들을 살펴보면 소설책은 깨끗한데, 교양서는 여기저기 접혀있고, 군데군데 낙서들이 있다.
그런데 이 장에서는 한 번도 책을 접지도, 메모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7장으로 넘어가면서 놀랍게도 내가 예전 직장에서 1년 정도 조직장으로 있으면서 내가 충실히 생각해온 내용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실제로 했다고는 자신할 수 없다. 하지만 마음 속에 담아두며 항상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던 내용들로 가득했다.
팀원들에게 항상 자기 계발할 기회를 주려고 노력했고, 관리 업무 뿐만 아니라 팀원들이 하는 일 중 약간이라도 내가 맡을 부분을 만들었다. 이것은 내가 실무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이었지만, 팀원들에게 동질감을 부여하는 효과를 얻기도 했다. 팀원들이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사고가 터지지 않는 한, 일정 체크만 하고 일부러 쳐다보지 않았다. 중간중간 결과물을 볼 때마다 지적하고 싶은 부분들이 있지만, 틀린 것이 아니면 넘어갔다. 팀원이 큰 사고를 쳤을 때 항상 대외적으로는 최대한 팀원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며, 대내적으로는 함께 모여 철저하게 과정을 분석하고 팀원이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업무 절차와 마음가짐들을 교정하였다. (혼내는 대신으로 술은 한 잔 얻어먹었다.) 처음 조직장으로서 들어간 회의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나보다 늦게 퇴근하면 혼날 것이다.” (물론 내가 주 40시간 근무를 준수한 것은 아니다.) 사적인 사정은 스스로 말하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내 마음가짐을 팀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혼란하던 사업부 내에서 우리 팀은 내가 직접 이직하기 전까지 퇴사 0 %를 자랑했다. (바로 옆 팀은 6개월 만에 조직장 제외 퇴사 100 %였다.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 애기들 사지에 던져놓고 나온 기분이 들까도 생각해봤지만 내 자신이 팀원들에게 “절대 나나 다른 사람들 때문에 하기 싫은데 수동적으로 너를 희생하지 말아라. 네 자신이 제일 중요하다. 누군가 나가면 다른 사람들이 물론 힘들겠지만 너만큼 힘들지 않다. 네 자신을 가장 소중히 하라.” 라고 말했고, 팀원들도 (술을 많이 먹어서 그랬는지) 진심으로 받아주는 느낌이었으니까 알아서 잘 할 것이다. 얼마 전에 전화했더니 “어떻게든 살아지네요~” 이러고 있다…
조직장으로서의 마음가짐보다 하나의 조직 구성원으로서 특기할 만한 책의 언급은 정서적 압박감이다. 성장 목표와 증명 목표로 목표의 유형을 구분하였는데, 전자를 내가 성장했는가에 초점을 맞춘 목표라면 증명 목표는 구성원들이 나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목표이다. 내가 업계 신입이던 시절, 나는 주로 증명 목표를 추구해왔었다. 남들이 특별히 그것을 요구한 것이 아닌데, 실수를 하게 되면 남들에게 내 결과물을 보여주기가 너무나도 부끄러웠고 스스로 자책하는 일이 많았다. 신입이 이런 목표를 가지게 되면 정말 위험하다. 점차 업무에 대한 자세가 위축되고 조직 내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주위에 그런 신입직원들이 있다면 성장 목표로 압박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동료들이 지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나도 많은 도움을 받았고, 지금은 적당한 압박감에서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고 있다.
7장
미래(未來)
흔히들 사람들이 미래를 대비한다고 하면서 미래에 일어날 법한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책에서는 뜬구름 잡는, 그리고 전 장들에서 설명했듯이 맞을 가능성이 별로 없는 단순 예측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또 책에서는 미래에 관련한 이야기는 ‘예측’ 보다는 변화와 적응력을 높이기 위한 ‘지식’ 과 ‘시나리오’ 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나리오의 골격에 대해서 “기하급수의 6D” 라는 모델을 제시한다. 나 역시 크게 동의한다. 지수곡선에 의한 발전은 예전부터알고 있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수학 교재 편집자인 나는 이 모델을 나의 직군에 대입해 보았다. 그리고 어렴풋이, 근거 없이 생각하고 있던 현 직군의 미래에 대해서 구체화할 수 있었다.현재 수학 교재의 핵심 콘텐츠인 ‘문항’의 디지털화는 어느정도 진행된 상태이다. 근 10년 전부터 체계화된 문제은행 서비스가 스타트업 기업들을 중심으로 개발되기 시작했고, 현재 매쓰홀릭 등 벤처업체들이 미약한 수준이지만 성공적으로 서비스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회사들이 시장 혁신을 이루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어쨌든 문항 콘텐츠는 아직 사람이 만들어야 하고, 구축에는 ‘노가다’, 즉
자본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신사고, 비상교육, 천재교육, 미래엔 등 기존 교육 출판 기업은 아직 콘텐츠의 디지털화 진행이 지지부진한 편이다. 종이 교재의 규모는 방대한 편이고 문항들을 문제은행에 포팅하는 작업은 지금 현재도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저 내용을 복사-붙여넣기하는 수준이고, 매체 변경에 의한 문항 설계의 고민은 없다. 심지어 CEO들은 그 필요성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콘텐츠가 많으니까 그것을 옮기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회의 시간에 들은 말이다. 매체의 혁신으로 인하여 출판 시장이 쪼그라들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 중 교육 출판 시장은 괴멸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대형 교육 출판 회사들은 공통적으로 몇 년째 매출규모가 지지부진한 편인데, 스마트 교육 신사업 등 다른 사업으로 간신히 전체 매출 규모를 유지할 뿐이고 문제집 사업 부문의 매출은 극적으로 감소하는 중이다. 학생 수 감소, 정기고사 폐지, 수능-EBS 연계 등 여러 가지 이슈가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매체 자체의 권력 이동이라고 생각한다. 종이책은 학원 교재 등 특정 대상을 타깃으로 하는 교육 사업 내 부가적인 기능 정도로 유지될 것이다.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결국 나는 기존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교육 출판 기업들이 수학 교재의 혁신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교육 출판 기업들이 스마트 교육을 외치며 종이에서 태블릿으로 매체 변경을 꾀하고 있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그저 마케팅 요소로 보일 정도로 형편없는 수준이다. 이 와중에 네이버나 카카오 등에서 지속적으로 교육 쪽으로 발을 넓히려는 움직임이 있다. 결국 파괴적 혁신은 은행 업계처럼 기존 업계가 지지부진한 사이에 외부 거대 회사에서 치고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결론적으로 수학 교재는 현재는 잠복기 끝 무렵이라고 보여진다. 그리고 대규모 자본이 시장을어느 순간부터 빠른 속도로 흡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점이 이 업계의 파괴적 혁신이 될것이다.
8장
성장(成長)
공부머리의 첫 시작은 자리를 비비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학창 시절 웬만큼 공부해 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다. 독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책에서는 독서의 7가지 조건 중 “인지부조화 이용하기”로 이 “자리 비비기”를 더욱 발전시켰다. 결국 자리 비비기도 인지부조화 이용하기도 넓은 의미의 trial-error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앉아 있기를 주구장창 시도하다 보면 결국 공부가 머릿속에 들어오게 되어 있고, 무작정 책을 쥐고 앉아 있다보면 결국 책을 읽고 싶은 순간이 오게 된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의 역량이다.
또 책에서는 “슈퍼 네트워커”라는 개념으로 연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읽는 내내 예전에 읽었던 책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링크(21세기를 지배하는 네트워크 과학)” 은 이미 2002년에 나왔던 책으로, 네트워크와 복잡계에 대한 이론을 일반인도 알기 쉽게 설명하였다. 네트워크에서 연결점이 유독 많은 노드인 “허브“, 그리고 다른 군집들을 연결해 주는 ”커넥터“ 등의 개념 등이 인상깊었는데, 20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도 책의 내용들이 대부분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또 서가에서 책을 꺼내야겠다.
사실 사람이 성장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마음을 먹는 것이 중요하다. 의지만 있다면 방법이 조금 어긋나거나 환경이 부족하더라도 좋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노력은 의지와 직결되어 있다. 방정식에서 노력과 의지가 지수로 엮여 있는 것이 성장방정식에서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결언
책 마무리의 레퍼런스들만 읽는 것으로 목표를 잡아 시작해도 지금보다 훨씬 똑똑해지지 않을까? 책 전체에서 느껴지는 것은 “성의”였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이후로 이런 류의 책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두께. 그리고 그만큼의 사례, 레퍼런스. 이 책은 각각의 어젠다보다 어젠다들을 강화하기 위한 사례들을 모아놓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왠지 결언이 짧지만, 일단 2700단어 짜리 글을 만들어 낸 나 자신에게 축하를 좀 해줘야겠다. 이 정도 글을 쓰는 데 오롯이 4시간이나 들이다니. 부끄럽기 그지 없다. 보잘 것 없는 성취지만, 점점 늘려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