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공장은 언제 시작될까

산업혁명과 인지 혁명을 관통하는 ‘조립 라인’의 시간

by 드라이트리

산업혁명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았다. 우리는 흔히 증기 기관의 발명을 산업혁명의 시작으로 기억하지만, 기술의 발명과 산업의 탄생 사이에는 늘 긴 시간차가 존재했다.


1712년, 세계 최초의 실용적 증기 기관이 등장했다.


old-bess.jpg https://blog.rootsofprogress.org/the-newcomen-steam-engine


그러나 이것이 곧바로 공장을 만들어내지는 않았다. 증기 기관은 개별 장치였고, 생산을 조직하는 시스템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초의 공장 시스템이 등장하기까지는 67년이 걸렸다.


1779년, 기계·노동·공간을 하나의 생산 구조로 묶는 공장이라는 개념이 비로소 현실이 되었다. 새뮤얼 크롬프턴은 1779년에 면과 기타 섬유를 실로 방적하는 데 사용되는 기계인 스피닝 뮬(spinning mule)을 발명하였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spinning-mule-Samuel-Crompton-machine-Richard-Roberts-1825.jpg?w=740&h=416&c=crop https://www.britannica.com/summary/Industrial-Revolution-Timeline


공장은 있었지만, 아직 ‘대량생산의 논리’는 완성되지 않았다. 공정은 여전히 단절되어 있었고, 생산성은 사람의 숙련도에 크게 의존했다. 현대적 의미의 조립 라인, 즉 작업을 세분화하고 흐름으로 연결한 시스템이 자리 잡기까지는 다시 134년이 필요했다.


1913년, 포드식 조립 라인은 산업을 완전히 다른 단계로 끌어올렸다.


ford_assembly_line_-_1913.jpg https://www.smithsonianmag.com/smart-news/one-hundred-and-three-years-ago-today-henry-ford-introduce


1913년, 헨리 포드는 하이랜드 파크 공장에서 세계 최초의 이동식 조립 라인(moving assembly line)을 도입하며 제조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이 시스템은 자동차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이동하고, 노동자들은 한 자리에 고정된 채 특정 작업만을 수행하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자동차 한 대를 생산하는 데 걸리던 시간이 기존의 12시간 이상에서 약 90분 수준으로 급격히 단축되었고, 이는 합리적인 가격의 모델 T(Model T)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기술의 발명 → 시스템의 등장 → 생산 방식의 완성. 산업혁명은 이 느린 3단계의 축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제 같은 질문을 AI에 던져볼 차례다. AI 공장은 언제 시작될까?

인지 혁명의 타임라인을 따라가 보면 흥미로운 평행 구조가 보인다.


1999년, GPU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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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Force 256은 1999년 8월 31일에 발표되었으며, 10월 11일 SDR 버전, 12월 중순 DDR 버전이 출시되었다. 이 제품은 기존에 CPU가 처리하던 T&L(좌표 변환 및 조명) 연산을 그래픽 카드 내부 프로세서에서 하드웨어적으로 처리한 최초의 소비자용 그래픽 카드로, 엔비디아는 이러한 혁신을 계기로 이 제품을 ‘GPU(Graphics Processing Unit)’라 명명하였으며, 이것이 오늘날 GPU라는 용어의 기원이 되었다.


범용 연산을 병렬 처리로 확장한 이 장치는 AI 시대의 증기 기관이라 불릴 만하다. 단일 기술로서의 잠재력은 컸지만, 이것만으로는 산업을 만들 수 없었다.


2016년은 하나의 분기점이었다. GPU, 대규모 데이터, 알고리즘, 소프트웨어 프레임워크, 클라우드 인프라가 결합되며 ‘AI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시스템’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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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엔비디아는 세계 최초의 딥러닝 전용 슈퍼컴퓨터로 불린 DGX-1을 출시하며 AI 인프라 발전의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다. DGX-1은 데이터 과학자와 연구자를 위한 ‘박스형 슈퍼컴퓨터’로 설계되어, 수주가 걸리던 AI 모델 학습 시간을 수일 수준으로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시스템은 NVLink로 연결된 8개의 Tesla P100 GPU를 탑재해 최대 170테라플롭스의 반정밀도 연산 성능을 제공했으며, 플러그앤플레이 방식과 최적화된 딥러닝 소프트웨어를 함께 제공함으로써 자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구축하지 않아도 대규모 AI 개발이 가능하도록 했다. 초기에는 개념에 대한 의구심도 있었지만,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직접 첫 DGX-1을 오픈AI에 전달한 일화는 현대 AI 혁명의 상징적 장면으로 자주 언급된다. DGX-1은 ‘AI 공장’이라는 개념을 현실화하며, 이후 등장한 현대적 AI 데이터센터의 토대를 마련했다.


모델을 만들고, 학습시키고, 개선하는 과정이 반복 가능한 공정으로 정리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증기 기관 이후 67년이 걸렸던 공장 등장까지의 시간이, AI에서는 17년으로 압축되었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산업혁명에서 조립 라인이 했던 역할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인지적 조립 라인(Cognitive Assembly Line)일 것이다.


데이터 수집, 전처리, 모델 학습, 추론, 피드백, 개선이 사람의 개입 없이 흐름으로 연결되는 구조. AI가 ‘도구’가 아니라 ‘생산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단계다. 이 시점은 언제일까.


첫 공장에서 첫 조립 라인의 등장까지 134년이 걸렸던 역사를 그대로 대입하면 2050년이다. 그러나 AI의 시간은 산업혁명의 시간과 다르다. 소프트웨어는 물리적 제약을 덜 받으며, 축적 속도는 훨씬 빠르다. 같은 비율로만 계산해도 2033년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중요한 것은 연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인지적 조립 라인의 시대는 먼 미래가 아니라,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복잡한 시스템이 일정 규모 이상 성장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하나 더 필요하다.
바로 전문화의 필연성(Specialization Imperative)이다.


산업혁명에서 공장은 범용 기계만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증기 기관이라는 범용 동력 위에, 방적기·직조기·프레스 같은 고도로 전문화된 장비들이 붙으면서 생산성이 폭발했다. AI 역시 마찬가지다. 범용 모델만으로는 산업이 되지 않는다. 특정 작업, 특정 산업, 특정 문제에 최적화된 전문화된 구성 요소들이 결합될 때 비로소 ‘공장’이 된다.


지금 AI 산업에서 벌어지는 경쟁은 모델 성능 경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가 인지적 조립 라인의 표준을 장악하느냐의 싸움에 가깝다.


그래서 이제 질문은 바뀐다. AI가 세상을 바꿀 것인가가 아니다.
누가 AI 시대의 록펠러와 카네기가 될 것인가이다.


산업혁명에서 승자는 가장 똑똑한 기계를 만든 사람이 아니었다. 에너지와 공정을 통제하고, 시스템을 소유한 사람들이었다. AI 시대 역시 마찬가지다. 알고리즘이 아니라, AI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확장할 수 있는 공장을 소유한 자가 질서를 만든다.


AI 공장은 이미 돌아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아직 ‘실험 단계’에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https://sequoiacap.com/article/10t-ai-revolution/

https://www.youtube.com/watch?v=yoycgOMq1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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