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속에서 기록하는 중입니다
현재 통과 중입니다
"출구까지 n킬로미터 남았습니다"
작가님, 저는 언제 터널로 들어오게 되었을까요. 오랜 시간 동안 터널을 달리고 있는 것 같은데 아직 출구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이 존재하는 걸까요? 어째서 이런 터널을 지나고 있는 걸까요? 오래간만에 쓰는 오늘의 편지는 새로운 주제로 이야기하게 되었어요. 지난 편지는 달다구리 했는데 이번엔 조금 무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터널의 끝을 상상하며 마무리해보려고 해요. 무겁더라도 조금만 버텨주시길 먼저 부탁드립니다. 버텨주시는 것만 해도 금방 가벼워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서없지만 어떤 것이든 주절거려 보겠습니다. 장황한 이야기는 참 잘하는데 압축해서 표현하자면 다시 침묵으로 일관할 것 같아요. 일단 시작하겠습니다.
첫 문장의 대화체 <출구까지 n킬로미터 남았습니다>는 내비게이션 음성 같은 느낌을 넣어봤습니다. 마음속에서 알려주는 경로가 이게 딱 인 것 같았거든요. 아시다시피 제 MBTI가 P여서 그런지 목적지도 불분명해서 난감할 따름입니다. 저는 목적지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충분히 준비할 시간도 있었던 것 같은데 달리고 있는 저는 막연히 달리고 있는 것 같거든요. 함께하는 사람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결과는 지금의 상황인 것 같아요. 저에게 가장 풍족한 건 시간뿐인데 어째서 그 목적지를 정하는 게 이렇게도 어려운지... 인생은 참 쉽지 않습니다. 더 아이러니한 건 인생이 쉽지 않다고 생각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거죠.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충분히 이야기해왔는데 방법과 여러 제안들을 듣고 또 들어왔는데 바뀐 게 크게 없습니다. 남들보다 느린 진행은 저의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타이밍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거북이보다 느리고 달팽이보단 빠르다고 나름 자부해 봅니다. 박건호 작가님의 책 <당신이라는 자랑>의 한 구절도 생각납니다. 각자 자신만의 타이밍이 있다는 것. 남들과 비교하기보다 자신만의 타이밍으로 하나하나 이루어간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뭐,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책을 보면 확실할 테지만 제가 그 구절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말 많은 위로가 되었던 내용이었지만 너~~~무 느려서 답답하기도 합니다. 어째서 저는 이런 천성을 타고났을까요. 마음은 힘들고 괴로운데 한편으로는 천하태평인 게으른 완벽주의자입니다. 언행불일치... 어쩌면 저에게 들어맞는 5글자일지 모릅니다. 미래를 설계해 나가는 부분에서 만요. 아, 집안일도 해놓는다고 해놓고 안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심각할 정도로 반복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아무튼 미래계획을 너무 서두르고 있기 때문에 언행불일치가 반복되는 것 같아요. 미래는 말 그대로 겪어보지 못한 나중의 일이잖아요. 그것을 할 수 있을 만한 저에 대한 확신이 바로 서지 않아 불안한 마음에 서두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일은 벌여놓고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서 결과를 기대하고 있죠. 쓰다 보니 이런 수식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름까지 지어보자면 못난이 수식입니다. <1-1=2@> 웃긴 수식이죠? 말도 안 되는 수식을 인생에 대입하고 있습니다. @는 복잡한 제 마음까지 표현할 알파쯤으로 해두죠. 연관 속담으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정도가 알맞겠군요. 1 뒤에 붙은 '빼기'를 '+'로 바꿀 방법을 알고 있는데도 올바른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기를 주저하고 있을까요? 무거움의 크기가 생각보다 크네요. 제 무거움에 스트레스를 받진 않으셨을지 조심스러워집니다. 이젠 가벼워질 차례입니다. 앞의 의문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한 나름대로 경로수정에 돌입합니다.
"전방에 기록휴게소입니다"
얼마 전에 계획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김교수의 세 가지'유튜브 동영상에서 나왔던 내용입니다. 기록학자님이 직접 말씀해 주신 것이니 신빙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계획 짜는 것이 수능만큼 어렵다고 느끼지만 기록영역이 있다면 이 문제만큼은 반드시 해결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계획 안에서 자유로웠던 경험은 분명히 있었다는 거죠. 그래서 간단한 계획이라도 머리에 그릴 수 있는 계획을 기록할 작정입니다. 정말 많아서 중간에 그만둘까 걱정도 되지만 답답한 미래에 갇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습과 실패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체득이 될 때까지, 익숙해질 때까지 계획을 기록해 가겠습니다. 막연하게 운전해서 아까운 연료를 낭비하지 않도록 늘 전방을 주시하면서 기록휴게소에 매일같이 도달해야겠습니다. 내일을 맞이하기 전까진 꼭 기록휴게소에 들어갈 수 있도록 블로그엔 새로 카테고리를 만들고, 브런치엔 일기 쓰기를 통해 그 루틴을 마련해보려고 합니다. 제 글을 읽으신다면 이따금씩 기록휴게소에 들렀다 왔는지 확인해 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아마도 전 "아! 맞다!"를 외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와 동시에 작가님을 생명의 은인으로 여기겠습니다. 한편으론 내일을 기록하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까지 시간이 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한 약속임에도 불구하고 여차하면 잊어버리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글은 편지이지만 그와 동시에 '각서'라고 생각해 봅니다. 무언의 압박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두운 방에 스위치를 켜면 불이 켜져 환하게 밝히듯 이 '각서'를 통해 기록할 수 있게 만드는 스위치로 여기겠습니다. 이렇게 진지해지면 다시 무거워지는 분위기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새롭게 결의라는 것을 하면 한 걸음 옮길 힘은 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글은 쓰다가도 힐링받는 것도 있고요.
내비게이션 음성 중에 또 뭐가 있는지 생각하다가 더 쓰면 안 되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계획이 많아지면 전 또 산으로 가게 되거든요. 하루에 한 번 기록휴게소에 가는 것으로 먼저 만족감을 충분히 느껴보고 다음 경로를 설정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계획 속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온전히 나의 것이 되면 어디로 갈지 또 고민해 보겠습니다. 목적지 설정에 애 좀 탈 것 같습니다. 작가님도 앞으로의 경로설정에 크고 작은 고민을 하실 예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와 다르게 외향적인 작가님의 경로가 글로 남겨지면 어떨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모든 이들의 경로를 알 필요는 없지만 저와 연이 있는 사람들의 경로는 구체적이지 않더라도 조금은 궁금해지는데요. 작가님의 다음 편지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경로설정에 관한 편지가 아니더라도 좋습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길이 있기 마련인데 빙빙 돌아가더라도, 삼천포로 빠졌다가 가더라도, 차가 고장 나서 공업사에 맡겼다가 출발하시더라도 언제나 그 길을 응원합니다. 거긴 이유야 어찌 됐든 작가님이 가고자 하는 길일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