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 모락모락 나는 냄비가 식탁 위로 올라왔다. 내용물을 보고 있자니 어렸을 적 맛있게 먹었던 그때가 떠올라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만든 음식이라면 그저 한 끼를 때우는 데에 그쳤을 것이다. 저녁을 먹기 위한 오후의 생존이랄까? 하지만 내 눈앞에 보이는 그것은 내 손이 아닌 아버지의 손에서 나온 음식이었기에 유난히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이었다.
요리를 하셨던 아버지의 음식은 먹을 때마다 나와 동생의 입맛을 착착 휘감았다. 식사의 대부분은 어머니의 손에서 비롯되었는데, 가끔씩 해주셨던 국, 반찬들은 식사가 끝날 때쯤이면 우리의 뱃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신기하리만큼 질리지도 않고 마지막까지 먹는 기쁨을 선사해주셨다(아마 동생도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오랜만에 그 기쁨을 다시 한번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작은 행복으로 다가왔다. 아버지의 음식이 이토록 특별했던 걸까? 어쩌면 아버지의 손맛을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만감이 교차했던 시점으로 돌아가 뒷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카메라 어플을 실행시키고 무작정 앨범에 한 장 담았다.
후루룩짭짭 아버지표 라면의 소박한 실체:)
아버지는 멋쩍게 웃으시며 뭐 이런 것까지 사진을 찍냐고 한마디 하셨다. 그냥 평범한 오후의 한 끼 식사일 뿐인데 사진까지 찍는 아들의 모습이 생소하셨을 법도 하다. 기억은 많이 흐려졌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들은 너 나할 것 없이 소생되어 머리에서, 마음에서 요동치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어렸을 적 생각도 나고... 지금 안 남겨놓으면 언제 남겨놓겠어요~
그러고는 마지막까지 자리에 앉아 냄비 바닥을 기어코 보고 말았다. 예상은 했지만 가라앉아있던 진한 국물 맛이 찐한 여운을 남겼다. 아... 언제 또 맛볼 수 있을까...
언젠가는 아버지의 맛을 닮은 한상을 차려 드려 봐야겠다. 아들의 손맛도 기억하실 수 있게 말이다.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날일 것만 같았던 어버이날의 오후는 짧지만 강한 향기를 남기며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