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첫 모임에서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앉은자리에서 20가지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미션이었지만 다시 글을 쓰겠다는 열정으로 모인 자리였기에 못할 것도 없었다. 시작은 언제나 열정으로 해내기 마련이니까. 하고 싶은 일을 쓰되 포커스는 바로 '죽기 전에'라는 시기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100세 시대인 걸 감안하면 무엇부터 하고 싶은 지 '나의 마음'이라는 정글로 짧은 시간에 거대한 여정을 떠나야 했다.
떠나자마자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2025년 12월 책 출판'이었다. 유일하게 대략적이면서도 구체적인 날짜까지 제시하며 버킷리스트의 정글에서 가장 1순위로 떠올렸던 것이다. 글쓰기 모임인만큼 가장 빨리 떠올렸는지도 모르지만 그동안 글쓰기를 해오며 출판의 꿈을 은연중에 키워왔던 것이 한 몫했다. 한 없이 작게만 생각해왔던 나의 존재를 글쓰기를 통해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길러주었기 때문에 더 작아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고 지금은다시 성장하는 중이라고 믿고 싶었다.
책 출판을 필두로 나머지 19개의 보물 같은 버킷리스트를 찾고 마음의 정글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다. 책 1천 권 탐독하기, 공저 출판 3권 등 글쓰기와 관련된 버킷리스트를 찾은 건 나름 큰 수확이었다. 할 수 있을까 하는 나를 의심하는 마음이 살금살금 기어 나오려고 했지만 가능, 불가능의 잣대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쓴 것만으로도 대단했고 삶에 대한 욕심이 있다는 것 자체가 기특했다.
8월 27일
길몽을 꿨나 싶었다.일어나자마자 확인한 인스타그램 DM(디렉트 메시지)에 졸음이 확 달아났다. 한참을 스마트폰 화면에 눈길이 멈춰있었다.혹여 잘못 전송된 메시지가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도 해봤지만 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메시지는 없었다. 실용서를 출판하는 출판사라고 굉장히 간단명료한 소개와 함께 나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연락드리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출판에 관심이 있다면 메일로 연락을 부탁하는 글과 함께 메일 주소를 같이 보내왔다. 말로만 듣던 출판 제의 문자였다.
'이게 무슨 일이지?'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는 카카오 브런치 작가라고 소개를 해두었긴 했지만 글에 관한 피드는 올린 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터라 일단 일말의 의심의 여지를 두게 되었다. 그렇다고 의심을 의심으로 남겨둘 마음은 1도 없었다. 해당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검색해보고 관련 블로그가 있는지도 검색해보고 나름대로 조사를 진행했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모리 작가님의 도움 덕분에 출판사를 알아가는데 그 윤곽은 확실해져 갔다.
결론을 도출하는데 그리 긴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의심은 기회와 열정으로 바뀌어 있었고 스마트폰의 화면은 메일창을 띄우기 시작했다.
8월 29일
출판에 관심을 표하는 메일을 전송하고 반나절쯤 지나서야 출판과정의 전반적인 내용을 수신받았다. 답장을 기다리고 있겠다는 마지막 문장이 가슴을 찌릿하게 만들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어서도 그 찌릿찌릿한 여운은 여전히 남아있다.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내가 원해서 쓰게 된 문장 하나하나가 한 편의 글이 되어 내 곁에 남겨졌다. 이 세상에서 나만이 그 가치를 알고 있으니까 그걸로 만족했다. 내가 쓴 글이 세상에 나온다는 것은 정말 먼 훗날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살아가며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곧 글이 되어 농익은 문장력을 뽐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해왔다. 그 상상이 현실이 되었을 때 책을 쓰고 세상에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렇게나 빨리 기회가 찾아왔다. 버킷리스트의 효과일까?
3년 안에 내가 쓴 작은 책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설레발을 혼자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게 된다.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초짜의 자세다. 마음을 가다듬고 출간 준비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다잡아보려 노력해본다. 출판 작가님들의 조언이 절실하기도 하고 어떤 답장을 보내드려야 할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한편으론 글쓰기와 몇 배는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간헐적 단식을 하듯 어쩌다 쓰고, 심심하면 쓰고, 번뜩일 때 끄적이고 그런 수준이 아니다. 세상에 출사표를 던질 소중한 첫 글을쓰는 것이기에 글쓰기 자체가 인생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에 다가온 기회는 사실 내가 하겠다고 정했을 때부터 가까워지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