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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스리랑카 Feb 13. 2022

노가다는 나의 벗

죽은 소나무를 찾아서

가끔, 툇마루에 걸 터 앉아 이빨을 닦는다. 이유는 잡다한 살림들이 모여사는 다용도실 천창 아래 걸어논 몽골 보르칸 칼돈산(그럴거라고 추정하지만 단언하진 못하겠다, 몽골인들이 너무도 신성시하는 산이기에 )에서 양치하는 착각을 맛보기 위해서이다. 청명한 칼돈산 아래, 말갈기를 휘날리며 황색 초원을 질주하는 말 그림인데, 이 그림은 몽골 과기대 교직원실 벽에, 떡하니 자리 잡은 서양화 20호(70cm*50cm) 사이즈의 유화였다. 사실, 몽골에 도착해 근무하면서 사무실을 오갈 데마다 이 풍경에 푹 빠졌다. 그 뒤 나는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할 무렵,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워 선생들을 모두 초청해 갈비찜, 생선전, 잡채, 감주 등등 한국 음식을 만들고, 푸짐하게 구운, 몽골식 양고기 머리를 곁들여 보드카를 대접했다. 그 답례로, 선생들은 과감히 징기스 칸의 정기가 담긴 그 액자를 끌어내어, 귀국 이삿짐 속에 넣어 주었다. 몽골을 기억하라고, 다시 만날 거라고 하면서. 



코로나 팬데믹에 갇혀 얼마큼 떠내려왔는지 모르겠다. 돌아보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 같았지만 결코 아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감정 또한 그렇다. 그렇게 거친 황색 고원을 질주하면서 '2021년 노가다' 일 년을 마감했다. 더럽게 지겨웠다. 지원하면 다시 써준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 뒤 관공서 '노가다 '모집이 집중된 2022년 일월을 맞는다. 이리 재고,, 저리 재고,, 뜀박질 테스트, 관련 업무 필기시험, 면접시험까지 일월 한 달, 구질구질한 발품을 좀 팔았다. 그 덕에 '산림 병해충 예찰방제단' 6명 모집에 가까스로 몸을 실었다. 계약기간 2.7~11.30, 근무시간 09:00~18:00, 1일 노임 73,280원, 근무 중 음주 적발 시에는 경고 없이 '짤림란'에 특별 서명을 하고 근로 계약을 맺었다.



 벗들이 상상한 대로 이 몸은, 물설고 낯선 일에 곧잘 적응해, 작은 병영 같았던 산불 진화대에서 주둥아리 지퍼를 닫은 채 반벙어리처럼 살았다. 산림병해충 예찰단도 행동은 민첩하게, 수다는 짧게, 지갑은 늘 열려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경험에 미뤄 보건대, 작은 규모의 집단일수록 단단한 편견이 신줏단지처럼 떠받들어지는 분위기에, 헛 발질은 도리어 더 큰 치명상을 입을 확률이 크다. 그나저나, 죽은 소나무를 찾아, 날이면 날마다 산속을 헤매는 일이다 보니, 비록 죽은 소나무가 밥을 먹여 줄망정, 행운이다. 아무것도 기약할 순 없는 슬픈 세월. 이 와중,  파미르행 노선을 정하고, 차표를 준비하고, 악착같이 긁어모아 파미르에서 아낌없이 탕진하는 것, 이것이 올해의 목표이자 일하는 목적, 벗들의 건투를 빈다.   






 

설렁탕 전문점  '이남장'(명동점)

입춘을 하루 앞두고 서울 나들이를 다녀왔다. 서울 중구 을지로 2가 199-63, 낯익은 주소.  한때, 죽순처럼 명동 바닥에 피어올랐던 어느 금융기관에서 젊은 한 시절, 이곳에서 밥을 빌어먹었다. 지금은, 장안의 유명 설렁탕 집 '이남장(명동점)'이 이곳을 점령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크게 이상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이남장과 이곳은 아주 오래전, 인연이 깊은 이웃사촌이다. 그 유래를 살펴보면 이렇다. 이곳에서 을지로 3가 방향 한 블록 아래,  타일 골목 초입에 위치한 낡은 타일로 도배된 건물 이남장 본점은, (지금도 건재하다) 이곳 직원들의 숙취에 찌든 위장에 탁월한 공로가 있으며, 80년대 우울한  을지로에 가지 것  화로에 불을 지필 수 있었던 정말 서민다웠던 집이 이남장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남장의 주인 신영주 여사는, 그곳에서 그저 그런 '그 집'을 인수하여 장안의 유명한 탕집 반열에 올려놓았다. 거대한 가마솥 서너 개를 올려놓고, 밤새워 불을 지피고, 탕을 끓였다. 기억으로 되돌아 보건대, 자리가 잡히고 유명 탕집으로 등극한 이래, 이남장 신영주는 저녁 시간이면 사우나와 화장을 마친 뒤, 여전사 차림으로 나타나 열서너 개의 테이블을 순례하며, 손수 숯불 석쇠에 고기를 구워 주었다. 사실, 두툼한 고기에 가위로 칼집을 넣는 방식을 그때 배웠다. 그 후 그곳 설렁탕으로 다져진 젊은 직원들은 열심히 살다 속절없이 늙어버렸고, 더러는 탕의 효험 한 약발이 다해 죽어 갔다. 나 역시 세상천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지칠 때면, 이곳에 들려 원기를 회복했다. 아주 어김없이 마음껏. 그러던 어느 해, 신영주는 만수무강을 뒤로한 채, 쓸만한 세상을 훌쩍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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