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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스리랑카 May 21. 2023

노가다는 나의 벗

오월은 푸르구나, '곰취'의 발바닥처럼


5.15일 대략, 아카시아꽃이 활짝 만개해, 온 지천에 달달한 향내를 진동할 때쯤, 산불 강조 기간이 드디어 막을 내리면서 산불 감시원을 필두로 일자리가 서서히 문을 닫는다. 곳간에 양식이 남은 자들은 가방 싸 들고, 못다 한 청춘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지만, 대다수는 여름철 일거리를 찾아 이곳저곳 발품을 파는 계절이 또한 오월이다. 인간사 발버둥을 치든 말든, 산중엔 꽃들이 피고 지고, 그들만의 그윽한 잔치를 벌이고 있는 모습 또한 오월. 

주로 산중에서 여러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산림 조사원과 바이오 매스가 한 식구가 되어 산속을 누비고 다닌다. 산림 조사원 경력 십수 년, 바이오 매스 경력 십수 년이다 보니, 거짓말 보태 임도의 자갈이 몇 개 있는지, 산속의 귀한 수종이 몇 개나 있는지, 산중 특산물이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 훤히 꿰뚫고 있는 막강 팀이다. 그 팀의 늙은 막내가 바로 그대들의 벗, 이 몸이다. 주워들은 풍월이 무섭다고, 때로는 아는 체에 뻥까지 가미한 잘난 체를 하다 보니, 가끔은 말문이 막히고 헛소리에 대한 스스로의 해명을 요청받기도 한다. 그만큼, 산중에서의 경험은 짜릿하면서도 벅차, 조금만 양념을 가미해도 아주 훌륭한 스토리가 탄생하는 곳.

태양이 황경 60도의 위치에 올 때 24절기 가운데 8번째 절기 '소만'이 5.21일이다. 절기에 따르면, 농촌에서는 이때부터 모내기가 시작해 연중 가장바쁜 철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은 산골 강원에서도 절기가 빨라져, 오월 중순경부터 시작해 거의 모내기가 끝나가는 시점이 '소만'이다. 그 옛날 산골 농사일을 기억하는 동료분 회상에 의하면, 모내기가 끝나기 무섭게, 오월 산중의 제왕 '곰취'를 따러 내 달렸다고 한다, 이때의 곰취가 일등급. 일진이 좋으면, 곰취를 낫으로 풀 베듯 자루에 담았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지금은, 깊은 산중에 자생지가 조금 남아 있을 뿐, 아주 귀한 산나물이 되었다. 

이 곰취에 대해 애정과 존경을 담아 썰을 풀어 벗들에게 약간의 감치는 맛이라도 보여드리겠다. 우선 장황한 족보를 들먹이면 이렇다. 식물 계, 속씨식물 , 쌍자엽식물 , 국화 목, 국화 과, 곰취 , 곰취 명이 그것이다. 곰취를 논할 때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 중 하나가 '깊은 산속'이다. 어느 정도 깊어야만 할까, 고참들의 식견과 그간의 경험에 의하면 족히 7~800 고지대 습지에, 풍부한 일조량이 뒷받침되고 산들바람이 막힘없이 통과할 수 있는 산속 초원지대가 곰취의 본향이다. 가끔, 산림 조사원과 동행하여 산림 자생 식물 조사에 나서면, 한 손에 샘플용 자루와 함께 전지가위를 챙겨 곰취의 터전을 파괴하는 침입자들을 응징해 주지만, 점차 무성한 숲에서 고군분투, 살아남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오월 산중, 산나물의 제왕이라 칭송하는 근거가 있다면, 탄력 있는 미끈한 줄기, 족히 솥뚜껑 크기의 산들거리는 싱싱한 잎 앞에 서면,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한다. 더욱이 그 맛은 어떤가, 내려오는 구전에 의하면 입맛 까다로운 곰돌이가 즐겨드시는 나물이라 '곰취'라 명명했다는 유래가 그 맛을 보증하고 있다. 그럼에도 맛이 어떻길래 벗들이 다그친다면, 마지못해, 이렇게 말하겠다. 그냥 곰취 맛이여...     

   





원주  구 도심에 해발 200여 미터 내외의 남산이 위치해 있었다. 그 작은 동산을 끼고 소금공장, 잠사 회사, 기도원, 수도 사업소 등 초창기 원주의 모습을 간직했던 남산이 지금은 싹 다 밀어버리고 24층 규모의 고층 아파트로 변신 중이다. 이곳 남산에 90년대 중반, 어찌어찌 흘러와 터를 잡고 정착한 술 친구가 있었다. 시내에서 같이 한 잔 걸치고 비틀비틀, 어느 곳에서 접근하든 추월대(관찰사 나리가 달 구경 하던 정자 터) 근방에서 수렴되는 남산을 올라 내려오기를 즐겨 했던 그곳이, 한집 두 집 불들이 꺼지면서, 더 이상 '이 길을 사용하지 마시오!'경고 표지판이 붙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술 한잔 걸치면 즐겨 오르던 그곳이 드디어, 공사가 시작되었다(실은 2022. 7월 경 착공) 굳이 옛날 골목길 따라 마구잡이 헤질 대로 헤진 누추한 주택가를, 살지도 않으면서 보존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시비 걸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약간의 연민과 아쉬움이 있을 뿐. 진실로 바라건대, 주민들의 오랜 숙원 사업이 성공해 살림도 나아지고, 번듯한 아파트에서 저 멀리 치악산의 스카이라인을 감상하는 낭만도 함께 누리시길, 술친구의 안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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