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나는 지금, 나로 살아간다

- 흘러간 강물에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길 위에 선 나

by 세니카

결혼기간 내내,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면 살아왔던 걸까요.

그 시간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긴장 속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부부인데, 왜 긴장 속에 살았을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나에게 남편은 편안함이나 의지의 그런 존재가 아니라, 조심해야 하고 눈치를 봐야 하는 대상이었습니다. 내 마음을 열고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가정적인' 남편을 바란 적도 없었습니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는 것이 응당 내 몫이라 여기고 살았습니다.

집안일을 부탁하거나 나누자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습니다.

'아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모든 걸 감당하면서 살았죠.


**


집을 나오기로 결심하고 이사 준비를 하면서 짐을 정리했습니다.

내 짐이래야 딸이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사 준 옷들과 책이 전부였습니다.

내가 좋아했던 책들.

언젠가 북카페를 하고 싶다는 바램을 갖고 모아둔 책들, 열심히 밑줄 그으면 읽었던 책들...

그러나 새로 이사할 집에 그 책들을 가져갈 수 없어서 책들 대부분을 버렸습니다.

이사하고 가끔 떠오르는 책들이 있지만, 그럴 때면 괜스레 마음이 허전해집니다.


그리고 가계부.

결혼 생활 내내 써온 가계부를 정리했습니다.

수입과 지출을 기록하고, 가끔은 메모를 쓴 가계부였는데, 특히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날들의 메모가 눈에 띄었습니다.

기억해야 할 메모들은 사진으로 찍고, 가계부들을 모두 버렸습니다.


하지만, 독서 노트 하나는 모두 챙겼습니다. 정서적으로 외롭고 힘들었던 시간들.

나는 책을 읽고, 독서 노트를 만들어 책 속의 문장들을 적으면서 내 마음을 붙잡았습니다.

그렇게 모인 독서노트들은 전부 내 이삿짐에 넣었습니다.


**


그동안의 삶의 흔적들을 하나씩 정리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이제 놓아버리자고.

꼭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살자고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책들과 가계부를 정리하는 상황 속에서,

물건에 대한 애착은 앞으로 갖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빚에 대한 가계부의 메모들을 들춰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했을까?"

"이런 삶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이들이 없었다면,

책이 없었다면,

내가 버틸 수 있었을까?

그 두 존재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든든한 두 기둥이었습니다.


**


나라는 사람은 언제나 희망을 붙잡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다시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나의 작은 아버지는 저를 두고 '이상주의자'라고 했나 봅니다.

남편에게조차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희망은, 그가 나와 상의도 없이 시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온 날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날 이후, 그에 대한 신뢰는 지하 바닥으로 추락했고,

이제는 다시 찾을 수 없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그는 내게 희망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저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건강하고 무탈한 삶을 살기를 바랄 뿐입니다.

더는 그와 인연을 맺을 일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나의 지난 시간들도,

이미 흘러가버린 강물일 뿐입니다.

다시는 그 강물에 발을 담그지 못할 것입니다.


과거에 얽매여 지금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지나온 삶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앞으로의 삶은,

지금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타인을 바꾸려 애쓰지 않을 것이며,

오직, 나 자신을 바꾸는 데만 애쓸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지금의 나로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브런치15.png


마감하며

이상으로 15회로 나의 인생 후반전 첫 챕터는 마감합니다.

앞으로의 나의 삶이 어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내 인생을 운전해서 가야 한다는 사실만은 확실합니다.

그 누구에게도 내 운전대를 맡기지 않도록, 제 마음을 단속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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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일상에 대한 일들과 마음들, 활동들에 대한 관련 링크를 올려 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방문 주시고, 브런치북 읽고 왔다고 하시면 정성껏 덧글 달겠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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