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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인이십팔호 Jun 23. 2019

중이의 기나긴 망명과 여인들

중이, 적나라에서 계외를 만나다.





중이는 적나라로 도망가서 그곳에 진나라 재상인 이극이 쳐들어오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다


이오도 1년 뒤 이곳으로 망명하려고 했는데 물론 양나라로 도망가서 나중에 진목공에게 의탁해서 진나라로 돌아와 혜공이 된다. 아마도 진헌공은 후환을 제거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중이를 받아들인 적나라도 반격에 나선다. 이후 이 모든 사달을 만들었던 진헌공이 죽는다. 권력에의 의지가 컸던 그가 과연 도망간 두 아들들의 복수를 걱정않고 눈을 감았을지는 모르겠다. 이제 여희 혼자 남게 되었으니 그녀 역시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아들을 반드시 왕위에 올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극이 여희에게서 태어난 아들인 해제를 죽이고 다시 여희의 동생이 낳은 탁자도 죽이면서 진목공에게 의탁한 이오에게 왕위를 거래하면서 혜공이 돌아오게 된다. 결국 혜공은 이극을 죽인다. 이유는 두 명의 군주를 죽이고 그 충신인 순식을 죽였으니 내가 너를 보호하는 것도 어렵지 않겠냐고 묻자 이극도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당신이 왕이 되었겠느냐면서 죽이려면 어떤 이유를 갖다 붙일 것이니 나는 명을 따르겠다고 하고 칼에 엎어져 죽었다고 합니다. 모두가 자존심으로 살고 죽는 인물들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중이와 함께한  측근 : 서신, 선진, 위주, 조최, 진문공, 호언



흥미로운 일은 망명한 중이는 무사태평하게 지내고 있었다는 점이다. 중이는 호언, 조사, 전힐, 위무자, 사공계자 등 측근들과 함께 적나라로 도망갔는데 적나라 사람들이 장구여를 정벌해서 그 두 딸인 숙외와 계외를 잡아다 중이에게 주었다고 한다. 중이는 계외를 아내로 삼고 숙외는 조사의 아내로 삼게 했다고 하는데 숙외와 조사의 아들이 조돈인데 훗날 '여름날의 태양'으로 비유되는 유명한 진나라의 재상이 되고 향후 전국시대 조나라의 시조가 된다.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면서 마음이 다급해지는 것은 중이가 아니라 그의 측근들이었고, 이들은 적나라에서 재기의 기회를 얻지 못할테니 중이로 하여금 보다 더 큰 기회를 찾기 위해 다시 망명길에 오를 것을 재촉한다. 중이가 제나라로 망명을 떠나려고 할 때 아내인 계외에게 “나는 25년을 기다렸소. 돌아오지 않으면 후가하시오”라고 하니 계외가 “나는 25살이고 앞으로 25년을 기다렸다가 시집을 가면 그 때는 관속으로 들어갈 것이니 그대를 기다리게 해주십시요”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중이는 이 말에 크게 감동하여 다시 눌러 앉아 12년을 적나라에서 더 지내게 된다.    


물론 12년뒤 중이는 제나라로 떠난다. 그 과정에서 위나라를 경유하는데 거기에서 박대를 당한다. 이 점은 훗날 중이가 진문공이 되었을 때 아주 중요한 결과로 나타나는데, 위나라를 멸망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어쨌든 당시 제환공 시기인데 제환공은 중이에게 딸을 아내로 주고 온갖 혜택을 베푼다. 따라서 중이는 제나라 생활에 만족했던 모양이다.



이러한 안락한 생활이 계속되면 어떤 야심도 포부도 사그라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주변 측근들은 자신들의 인생이 달려 있는 문제이고, 주군의 성공여부에 따라 자신들이 지금 투자하고 있는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보상받을 수 있다. 양자 간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과연 누가 이길까? 

측근들은 중이를 모시고 뽕나무 아래에서 모의하던 중 누에먹이는 일을 하는 여인이 그 말을 듣고 아내인 강씨녀에게 고했다고 한다. 




너 외에 누가 그 얘기를 들었느냐?


저 외에는 어느 누구도 모릅니다. 저도 듣자마자 달려와서 고한 것입니다. 



그 여인이 이렇게 대답하자,  중이의 아내 강씨는 칼을 빼어 그녀를 죽여버린다. 


그리고 중이에게 갔다. 



 당신들이 모의하는 말을 들은 자는 이제 죽었으니
천하를 지배하려는 큰 뜻을 펼치세요.

하지만 중이는 그런 뜻이 없다고 대답한다.

사실 어떤 남편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들고 와서 너의 얘기를 들은 사람을 다 죽였다고 하는 아내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아무런 일도 아니라고 변명을 거듭할 수밖에 없을테고, 중이가 바로 그 상황에 빠져 있던 것이다. 



그러나 제나라의 상무적 기풍에서 자란 제나라 공주의 기질을 잘못 알았던 셈이다. 

강씨녀는 중이에게 사랑에 빠지고 생활의 안락에 만족하는 일은 공명을 세우는 일을 실패하게 하는 원인이라고 떠날 것을 요구한다.




완강히 부정하고 버티는 중이를 결국 호언하고 짜고 술을 먹여 취하게 하고 국경을 넘게 한다.    

술에서 깬 중이는 이미 국경을 넘어온 것을 뒤늦게 알고 호언을 질책했지만 이미 배는 떠난 셈이었고, 이제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하릴없이 떠난다. 중이 일행은 조나라로 들어가는데 당시 조나라 군주 공공이 중이가 통뼈라는 소문을 확인하려고 목욕할 때 몰래 훔쳐봤다고 한다. 관음증(?)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중이에 대한 소문에 호남아라는 얘기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조나라 군주가 특이한 취향을 가지고 있던 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행동은 중이에게 대단히 모멸적인 것이었음에 틀림없었다.



진나라 공자는 제왕의 상이고, 그 따르는 인물들은 상국의 상이다.


조나라에는 대부인 희부기라는 인물이 있는데 그 아내가 관상을 잘 봤다고 한다. 조나라 군주의 행실을 듣고 이 아내가 남편에게 진나라 공자 일행을 저녁초대를 하라고 이른다. 아마도 희부기의 아내도 소문이 분분한 이 망명 왕자를 보고 싶었던 것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여인의 통찰력은 단순히 호남아의 얼굴을 보려는 호기심이 아니라, 자신의 군주가 박대한 이 망명 왕자가 소문에 따를 경우 범상치 않은 인물일테니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을 염려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저녁 초대를 받은 중이 일행이 희부기의 집에 들어오자, 부엌 뒤에서 몰래 이들을 바라보던 희부기의 아내가 남편을 불러 진나라 공자는 일세의 제왕이 될 상이고 공자를 따르는 사람들을 보니 하나같이 상국이 될만한 인물들이고 이들이 도우면 진나라 공자가 반드시 돌아가 제후들을 지배할 뜻을 얻게 될 것이니 잘 대접하고 무례하게 군 것을 사과하라고 한다. 희부기가 저녁을 대접하는데 중이의 밥그릇에 구슬을 넣었다고 한다. 중이가 밥을 먹다가 입에 들어간 이물질을 뱉어보니 구슬이자, 이 구슬을 돌려주면서 희부기에게 마음만 받겠다고 하며 훗날 무슨 일이 있다면 반드시 희부기의 집안을 보존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중이 일행은 자신들을 박대한 조나라를 떠나 송나라로 망명하는데 송양공은 후대한다. 비록 송나라 양공의 후대가 잠깐의 편의를 보장했지만, 재기의 기회를 후원할 인물이 못되었던지 다시 정나라로 떠나는데 정나라 문공은 이들을 박대한다.



송나라 20대 송양공(宋襄公)






원래 영웅은 이렇게 롤러코스터를 타는 경로를 밟는 것일까? 

중이의 망명길은 막바지에 더욱 극적이다. 망명 길에 놓인 가련한 운명의 왕자와 그 추종자들의 삶에 후대와 박대가 무수히 교차한다. 초나라로 가게 되는데 이 시기 초나라는 중원진출의 야심을 가진 성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위대한 제왕 간의 만남인 셈이었다.(물론 어느 누구도 그것을 알아채지는 못했지만)


초성왕은 거지꼴로 돌아다니는 이 진나라 왕자가 아주 마음에 들었나보다. 늘 연회에 초대해서 자신의 자리 옆에 앉히고 진나라 왕자를 극진히 돌보아주었다고 한다. 어느 날 성왕이 잔치를 베풀어 대접하면서 중이에게 진나라로 돌아가게 해주면 나에게 선물로 무엇을 보답하겠는가 묻는다. 중이가 초나라 왕께서는 다 가지고 있는데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겠느냐고 답하자 그래도 무엇으로 선물할 것인지를 묻는다. 이 때 중이의 대답은 신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야심과 포부를 그대로 드러낼 위험이 있다. 중이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섬뜰 아래로 내려가 절을 한 뒤 성왕에게 저를 진나라로 돌아가게 해주면 중원에서 군대를 끌고 만나게 될 경우 90리를 피해 있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화해가 안되면 왼쪽에 채찍과 활을 잡고 오른쪽에 화살통과 칼집을 차고 대결하겠다고 한다. 이를 듣던 초성왕의 재신인 자옥이 분개하여 중이의 야심이 드러났으니 중이를 죽이자고 주장하는데 초성왕이 진나라 공자는 언변이 좋고 도량이 넓고 검소하며 예절이 바르다고 평가하며 그를 따르는 인물들도 공손하고 너그럽고 충성스럽고 능력이 있다고 하면서 거절한다. 그러면서 하늘이 그를 돕는다면 누가 그를 죽일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진목공에게 보낸다.



중이, 진나라의 왕이 되다


왕이 된 중이, 진문공 동상



진목공 역시 중이를 후대한다. 딸 다섯을 아내로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진목공의 후원 하에 드디어 중이는 혜공이 죽고 왕위의 공백이 생긴 진나라로 돌아가게 된다. 이때 진목공의 딸은 진문공의 왕후가 되고 진목공의 강병 3천이 같이 들어왔다고 한다. 중이가 진나라의 왕이 되자 적나라의 계외도 진나라로 오게 된다. 또 둘 사이의 아들도 입궐하게 한다. 20여년전 의리를 지킨 셈이다.


진문공은 자기 딸을 조사에게 시집보냈는데, 이때 숙외와 조돈도 들어온다. 조사가 이 두 모자를 거절하자 조사의 아내 조희가 “사랑하는 사람을 얻었다고 옛 사람을 잊는다면 어찌 사람을 부리겠습니까 반드시 그들을 맞이해야 합니다”라고 하여 숙외를 내자로 삼고 조돈을 적자로 삼은 뒤에 자신과 세 아들들은 그 아래에 위치했다고 한다. 진문공의 탄생은 이러한 뒤틀린 운명의 코스를 따라서 위기와 기회를 스스로 통제하면서 결국 만들어진다.    




진문공을 끝까지 시종했던 측근들은 어떻게 되었던 것일까? 

이제 그들의 시대를 열기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아직 문공이 살아 있을 때 그리고 이후 왕권이 유지되고 있을 때는 나라와 군주에 충성하고 자신의 명예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진나라의 유력가문들을 보면 이미 헌공 때도 그 지위를 유지했던 순(지/중행)씨, 한씨, 위씨, 극씨 등이 있고, 사씨(범), 조씨, 난씨, 선씨 등이 있다. 순씨 가문의 순식 같은 경우는 헌공이 죽은 후에 해제와 탁자가 이극에 의해서 제거될 때, 이극이 ‘신생, 중이, 이오 세 공자를 따르는 사람 중에 원한을 가진 자들이 난동을 부릴텐데 모두가 그들을 돕고 있는 중에 당신을 어떻게 할 것이냐?’라고 묻자 “돌아가신 군주와 언약했으니 나는 죽으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하고 장렬히 죽음을 택했다.     




진문공이 왕위에 오른 지 얼마 뒤, 초나라가 송나라를 침범한다. 송나라 양공의 후대를 받았던 진문공은 보은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또 초나라 성왕에게 받은 후대 역시 보은해야 할 딜레마에 빠진다. 이 때 선진이 송나라의 구원요청을 패자가 될 기회라고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요구한다. 반면 호언은 초나라의 은혜를 입었는데 초나라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초나라가 얻은 위나라와 조나라를 공격하면 초나라가 두 나라를 구원하러 돌아갈 것이기에 개입하자고 한다.




진문공이 삼군을 편성하고 군대의 지휘를 맡길 인물을 선정하는데 조사가 극곡을 추천한다. 극곡이 중군을 맡고 극진이 보좌하고 호언이 상군을 맡고 형인 호모가 보좌하고 난지와 선진이 하군을 맡고 순임보가 군주의 전차를 조종하고 위주가 활을 쏘는 전사를 맡는다. 전체를 조사가 기획한다. 지금 등장하는 인물들이 바로 훗날 춘추시대를 주름잡게 될 진나라의 귀족가문들이다.



 

앞서 보았듯이 위나라와 조나라는 진문공 일행을 박대했던 나라이기에 진문공은 이 두나라를 멸망시키지만 희부기와 관련된 나라라서 조나라를 정벌할 때 약속을 지킨다. 희부기 집을 보존하라고 명령하는데 위주와 전힐이 자신들의 노고를 위로하지 않고 은혜갚을 일만 먼저한다고 하면서 희부기 집을 불태웠다고 한다. 진문공이 위주와 전힐을 처단한다.



초나라 21대 초성왕(楚成王)


이후 초나라와 맞붙게 되는데 초성왕이 “진나라 후작은 외국에서 19년을 지내고 결국 진나라를 차지했으니 험악하고 어려운 처지에서 여러 가지 곤란을 맛보았으니 백성의 진정과 거짓을 다 알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진나라와 전투하지 말라고 한다. 또한 진문공도 약속대로 90리 밖으로 후퇴한다. 양자의 회전은 후퇴하는 진나라 군사를 초나라 자옥이 초성왕의 명령을 듣지 않고 추적하다가 대패하면서 새로운 패자로의 진문공을 만들어 낸다. 자옥은 결국 패전에 대한 책임으로 자살하고 진문공은 자옥의 죽음에 대해 기뻐했다고 한다. 보은과 복수를 명확히 구분한 진문공이 과연 어진 사람이었을까? 섬뜩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진문공의 역정을 살펴보면, 여희라는 여인으로 인해 불우한 망명 생활로 점철된 인생을 살고, 인생 말년에 왕위에 올라 짧은 재위기간 중 패자로의 위상을 누린 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가 생각하지도 못한 망명과 왕위등극의 전 인생에 걸쳐 만났던 여인들은 하나같이 그를 각성시키고 독려하면서 끝까지 삶에 대한 의지와 목표를 잃지 않도록 도와주었던 인물들이다.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겠지만, 아내의 위치에서 내조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인물들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핵심은 아내로의 부덕이 아니라
여성들이 진취적으로 자기판단과 결정을 통해 목표를 향해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지를 여과없이 드러낼 정도로
춘추시대 원형적 여성상은 결코
우리가 알고 있는 현모양처나 여필종부의 이미지를 갖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이미 남녀로의 역할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하나의 합리적 행위자로의 역량을 갖고 있었고,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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