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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인이십팔호 Sep 23. 2021

예로 다스리면
여섯 가지 흥성(六興)을 가져온다

여기에서 공자가 주목한 관중의 공적(公的) 행위, 즉 아홉 번 제후들을 규합하여 제환공을 패자의 위치에 올려놓은 것이 무슨 이유로 공적(功績)이 되는 것인지 되짚을 필요가 있다. 그 근거는 “제후들과 1차 회동할 때 전쟁을 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2차 회동할 때 환과고독을 돌보라고 명령했다. 3차 회동할 때 토지세를 5/100, 시장세를 2/100, 관문세를 1/100을 거두라고 명령했다. 4차 회동할 때 도량형을 통일하고 늪지와 연못은 때에 따라 출입하도록 명령했다. 5차 회동할 때 하늘과 땅과 산천의 제사 받들기를 때에 맞추어 하라고 명령했다. 6차 회동할 때 물자를 오관에게 공물로 바치고 사보에게 보고하며 상제를 예로 섬기라고 명령했다. 7차 회동할 때 중요 직책에 있으면서 예가 없는 사람을 귀양 보내라고 명령했다. 8차 회동할 때 예의염치를 세워 언행이 사벽하지 않은 사람을 오관에 천거하여 삼공에 임용하라고 명령했다. 9차 회동할 때 제후들 봉토 안의 재물과 나라에 있는 것을 폐백으로 천자에 올리라고 명령했다”는 구합제후(九合諸侯)의 의의, 곧 전쟁 중지부터 예의염치의 수립에 이르기까지 질서를 가져올 처방책의 성공적인 시행에서 찾아진다. 


사실 신화화되어진 부분도 없지 않지만 구합제후의 내용은 패자의 규범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사안들인데, 오히려 패정을 강력히 비판했던 [맹자]에서 제시된 왕정(王政)의 청사진에 더 가깝다. 즉 “늙어서 아내가 없는 것을 홀아비라 하고 늙어서 남편이 없는 것을 과부라 하고 늙어서 자식이 없는 것을 무의탁자라고 하며 어려서 부모가 없는 것을 고아라 한다. 이 네 부류의 사람들은 천하의 곤궁한 백성이며 문왕은 정사를 펴고 인을 베풀었을 때 반드시 이 네 부류의 사람들을 우선했다”고 지적하거나 “시장에서 점포세만을 거두고 물건에 세금을 매기지 않거나 법에 의거해 단속만 하고 점포세를 받지 않으면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며 그 나라의 시장에서 장사하기를 원할 것이다. 세관에서 감시만 하고 세금을 거두지 않으면 천하의 여행자들이 모두 기뻐하며 그 나라의 길로 다니기를 원할 것이다. 농사짓는 사람에게 조법을 적용하고 따로 세금을 거두지 않으면 천하의 농부들이 모두 기뻐하며 그 나라의 땅에서 농사짓기를 원할 것이다 … 이와 같이 된다면 천하에 대적할 사람이 없게 될 것이다 … 이렇게 되고서도 통일된 천하의 왕이 되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반전(反戰), 환과고독(鰥寡孤獨)의 복지, 부세(賦稅)의 합리성, 도량형의 통일과 늪과 연못의 출입통제 등은 [맹자]의 왕도론에 내포된 정책들이기도 하다. 


그렇게 보면 의외의 반전(反轉)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 맹자의 왕도론이 단순히 군주의 도덕적 완성과 선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즉 “농사의 때를 어기지 않으면 곡식을 이루 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되고 촘촘한 그물을 웅덩이와 연못에 넣지 못하게 하면 고기와 자라를 이루 다 먹을 수 없으며 도끼와 자귀를 적절한 때에 따라 산과 수풀에 넣게 하면 재목을 이루 다 쓸 수 없을 것입니다. 곡식과 고기와 자라를 이루 다 먹을 수 없으며 재목을 이루 다 쓸 수 없으면 이는 백성으로 하여금 산 사람을 기르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데 유감이 없게 하는 것이니 산 사람을 기르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냄에 유감이 없게 하는 것이 왕도의 시작”이라는 [맹자]의 왕도론은 군주의 책무로 신민의 생존기반 확보와 이를 통한 양생상사(養生喪事)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 반대급부로 신민의 책무이행-군주의 시혜에 대한 보상으로서 복종과 순응-을 제시했던 것이다. 따라서 ‘잘 먹고 잘 사는’ 양생상사에 대한 군주의 관심이 신민의 복종과 순응의 의지와 노력을 요구한다는 군주-신민 간 호혜성에 기초한 의무이행을 논리적 기반으로 채택했음을 알 수 있다. 


[맹자]에 제시된 양생상사의 청사진이 예치에 의한 왕정의 실현을 그리고 있듯이, 군주의 덕에 의해 성취될 [관자] 예치론은 여섯 가지 흥성(六興)의 내용을 제시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① 민생을 부유하게 하는 것-밭을 개간하고 주택을 건설하고 재배를 강구하고 사민을 권장하고 농사를 면려하고 담장과 지붕을 수리하는 것. ② 재물을 수송하는 것-잠재된 자원을 개발하고 적체된 물건을 수송하고 길을 닦고 관문시장을 편리하게 하고 보내며 초청함을 신중히 하는 것. ③ 이익을 남기는 것-고인 물을 터 이끌고 못물을 이용하고 맴도는 얕은 물을 트고 진흙이 막힌 곳을 트고 막힌 것을 소통시키고 나루와 다리를 신중히 하는 것. ④ 정치를 관대히 하는 것-농지세를 줄이고 부세를 가볍게 하고 형벌을 느슨히 하고 죄과를 사면하고 작은 과실을 용서하는 것. ⑤ 위급함을 구제하는 것-어른과 노인을 봉양하고 어린이와 고아를 사랑하고 홀아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고 병든 이를 문병하고 재앙과 초상을 당한 이를 위로하는 것. ⑥ 곤궁함을 진휼하는 것-얼고 추운 이를 입히고 주리고 목마른 이를 먹이고 빈한한 이를 구제하고 피로한 이를 진휼하고 거덜 난 이를 도와주는 것. 마치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라는 [논어]의 언명과 중첩시켰을 경우, 예치가 갖는 윤리성과 함께 효능성을 명시하는 듯하다. 


예치의 효능성에 대해서는 제환공이 관중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것(爲國)에 대해 묻는 대화에서도 찾아진다. 관중은 널리 현인을 등용하고 백성을 자애롭게 보살피고 멸망한 나라를 보존하고 녹이 끊어진 세가를 다시 이어주고 나라를 위해 죽은 사람의 자식을 채용하고 세금을 가볍게 하고 형벌을 가볍게 하니 이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큰 예라고 답한다. 여기에서 관중이 말한 ‘예’는 통치술의 의미를 함축하지만, 통치술 자체가 애민(愛民)의 실현이라는 의미임을 상기할 때 통치기제의 여부와 상관없이 ‘예의’의 실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장차 선왕에게 거슬러 올라가 인의의 근본을 캐자면 예가 바로 그 최선의 길이 되는 것 … 그러므로 예를 높이면 비록 밝지 못하더라도 법사일 것이고 예를 높이지 않으면 비록 아는 것이 많을지라도 산유일 것”이라는 [순자]의 평가를 적용해보면, 법에 의한 패정과 예에 의한 왕정 모두 규범화라는 최종단계를 지향하는 ‘좋은 정치’인 것이다. 결국 “선왕의 한번 물러나고 두 번 나아가는 계략을 쓰는 사람은 패업을 달성하고 나아가기만 하는 사람은 왕업을 달성하고 한번 나아가고 두 번 물러나는 사람은 나라가 줄고 계속 물러나기만 하는 사람은 망한다”는 점에서, 예치는 일차적인 패업(霸業) 성취와 논리적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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