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일기
그녀는 내 방 문을 슬며시 열어 학창 시절 급식소에서 받던 은색 식판을 건네곤 재빠르게 사라졌다. 거기엔 한 가지 국과 밥, 두세 가지의 반찬이 꾹꾹 담겨 있었다. "힘내~자기"
내가 죄를 저질렀냐고? 그래서 감옥 갔냐고?? NO~~~!!
그저께부터 갑작스레 오른 열이 문제였다. 오후부터 몸이 나른하고 두통이 생기더니 급기야 열이 39도까지 올라갔다. 집안엔 긴장감이 맴돌았다. 매사에 긍정적이던 아내도 괜찮을 거야라며 다독였지만 말수가 줄었다.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열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2주 전의 기억부터 더듬어 올라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문제가 될 부분은 없었다.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일주일에 두세 번 딸아이와 함께하는 오전 산책, 그것도 사람 없는 산이나 공원 주변으로 돌아다녔다. 올 설에도 홀로 제사를 준비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나 혼자 본가에 들러 마스크를 쓰고 도와드리고 밥도 따로 먹었다. 카페나 식당에 간 건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이다. 그럼 무엇이 문제일까... 아!! 그러고 보니 2일 전 아내가 인터넷으로 주문한 빵을 가지러 잠시 외출했을 때 거리에서 턱스크를 끼고 친구들과 노가리를 까던 남자가 마침 지나가던 내 얼굴에 대고 기침을 했었다. 요즘 같은 시기에 분명 쌍욕을 할 일이지만 담배를 집어 들며 별거 아니란 듯 너무나 당당했던 그의 표정에 오히려 당황스러워서 얼른 집으로 와 옷을 갈아입고 얼굴을 씻었다. 그래... 그럼 그때였나...
아이가 있는 집은 당연하겠지만 아내와 난 코로나 시작부터 지금까지 정말 많은 노력을 해왔다. 손은 물론 현관을 수시로 소독을 하고 위험한 곳은 가지 않았다. 사무실로 사용하던 곳도 근처에 확진자가 생겨 많은 이득을 포기하고 집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그렇게까지 신경 썼는데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타인으로 인해 내가 코로나에 걸린 거라면 그동안의 노력은 무엇인가 싶어 억울함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미 저녁이라 내일 근처 보건소로 가서 검사를 받기로 했다. 열로 인해 몸이 힘들었지만 그보다 더 힘든 건 심적 고통이었다. 오전까지도 딸아이를 봤는데 혹시라도 가족에게 옮기지 않았을까란 불안감은 나를 잠 못 들게 했다.
아침에도 열은 떨어지지 않았다. 옷을 입고 모자와 마스크를 둘러쓰고 서둘러 보건소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빠른 시간 안에 검사를 받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얼굴과 전신에 보호장구를 감고 힘들게 일하고 계신 의료진분들에게 참으로 감사했다. 지금껏 코로나를 잡을 수 있었던 건 누가 뭐래도 이분들 덕분이다. 검사 결과가 나오는 하루 동안의 시간은 정말 길고도 길었다. 시간을 이렇게 길게 늘일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만큼...
다음 날 아침. 한 통의 카톡 문자가 도착했다.
아... 정말 다행이다.
대학 합격 문자를 받았을 때가 이러했을까. 안도감에 다시금 "음성" 이란 글자를 계속 뚫어지게 쳐다봤다. 맞다. 확실히 코로나가 아니다. 음성 소식에 아내도 힘이 난 듯했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잠이 쏟아져 왔다. 그동안 혼자 아이를 보느라 고생한 아내였지만 열이 떨어지기 전까진 어쩔 수 없었기에 미안함을 간직한 채 자리에 누웠다.
아무래도 한동안 무리해서 몸살이 온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때가 때이니 만큼 증상이 있다면 꼭 검사를 받아보라고 모두에게 권유하고 싶다. 세상은 홀로 사는 게 아니니까. 아무리 마이웨이고 건강에 자신 있더라도 우리에겐 소중한 가족과 친구와 이웃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하루 빨리 마스크를 벗고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