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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어도 잘하다가도 나이가 어떻더라도 또 시작이라고

기타노 다케시의 <키즈 리턴>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기타노 다케시가 오토바이 음주운전 사고로 한 동안 공백을 가진 뒤의 첫 작품이다.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영화 속에서 죽음을 맞는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희망적인 성장 영화의 서사를 담고 있다. 학교조차 포기한 문제아 신지(안도 마사노부)와 마사루(카네코 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들과 비슷한 또래 인물들의 이야기도 조금씩 등장한다. 하고 싶은 일 없이 무료하기 일상을 보내던 둘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갔는지, 자신의 능력을 찾아 어느 위치까지 올라 갔는지, 그것이 끝난 후의 삶은 어떻게 계속되는지를 108분의 러닝타임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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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 없이 마사루가 하는 대로 따라다니면 신지는 복서에게 맞은 후 복싱을 시작하는 마사루를 따라 복싱을 시작하고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질 알아낸다. 마사루는 중간에 복싱을 포기하고 자신의 적성에 가장 알맞은 일(야쿠자)을 하게 된다. 그들 또래의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꾸준히 만담을 연습해 인기 있는 만담 콤비가 된 사람, 자신의 길 없이 끝까지 남의 말에 따라 살게 되는 사람, 여전히 무료하게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영화의 마지막, 누군가는 자신의 위치를 내려놓기도 하고, 누군가는 노력 끝에 성공을 얻으며, 누군가는 여전히 방황하고,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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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극 중 인물들의 정확한 나이를 말하지 않는다. 영화 중간 신지와 마사루가 다니던 학교의 졸업식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 이후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그들의 나이가 얼마나 들었는지는 언급되지 않는다. 그냥 그들이 20대이건 30대이건, 어떻게 살았든, 성공했든 망했든, 지금의 상황이 어떻든 지금이 시작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키즈 리턴>은 사고 이후 기타노 다케시의 재기 선언으로 읽히기도 한다. 코미디언에서 배우로, 감독으로 여러 번 새롭게 출발한 그의 인생관이 이 영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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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는 전문적으로 영화를 배운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는 화면의 구도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어떤 기법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예를 들면, 영화의 중간 마사루가 속한 조직의 구역을 침범한 상대 조직원을 잡으러 가는 장면의 테크닉이 독특하면서 인상 깊었다. 야쿠자 사무실 장면 중간에 갑자기 1초 정도 붙잡힌 상대 조직원이 등장하고, 그 짧은 컷으로 관객들을 집중시킨다. 시간 순서대로 서사를 펼쳐나가는 대신 액자형식으로 풀어가는 서사, 점프컷을 통해 만들어내는 유머 등을 보면 그가 엄청난 씨네필임이 느껴진다. 영화를 보는 것으로 영화를 배웠달까. 그런 면에서 쿠엔틴 타란티노를 연상시키게 되기도 한다. 그들이 뭘 좋아했고 어떤 영화를 많이 봤는지가 그들의 영화에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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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비>를 볼 때도 느꼈지만, 히사이시 조와 기타노 다케시의 콤비는 그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콤비만큼 뛰어나다. 미야자키의 영화 속 히사이시 조의 음악과 다케시의 영화 속 음악의 톤과 악기가 비슷함에도 영화의 분위기 자체는 다르게 느껴진다. 미야자키 영화 속 음악은 신비롭고 판타지적이라면 다케시 영화 속 음악은 냉정하게 영화 속 인물들을 바라보는 다케시의 카메라에 인물의 감정이 실리도록 돕는다. 다케시의 카메라로 인물들을 바라봐야 하는 관객들이 인물의 감정이 뭔지 알고 몰입하도록 유도한다. 히사이시 조의 인장과도 같은 타악기와 현악기의 사용은 익숙한 만큼 큰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극장 사운드로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그 음악과 영화의 조화로움에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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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타노 다케시를 영화로 접한 것은 그가 잔혹한 선생으로 출연했던 <배틀로얄>뿐이다. 이번 기획전을 통해 <하나-비>와 <키즈 리턴>을 극장에서, <아웃레이지>를 집에서 관람했다. 한 감독의 영화를 단기간에 극장에서 몰아보는 것은 신기하면서 즐겁고 거부하기 힘든 기회이다. 앞으로 4편의 영화를 더 예매해뒀다. 그 영화들은 다케시의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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