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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01. 2024

2024-01-01

1. 2024년이 밝아서야 쓰는 2023년 결산. 영화 결산은 이미 했으니 패스. 2023년에는 이런 음악들을 즐겁게 들었다. 물론 가장 많이 들은 장르는 케이팝이고 에스파아이브르세라핌뉴진스였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던 100 gecs의 신보라던가 우연찮게 접해 들은 Masego의 앨범 정도가 가장 크게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여러모로 힙합이 약했던 해라고는 하지만 그건 차트 이야기고, NoName과 Danny Brown&JPEGMFIA의 앨범만으로도 꽤나 풍족하지 않았나. 여러 래퍼들과 함께 앨범을 낸 Alchemist가 아무래도 2023년 MVP인 것 같다.


2. 2023년은 유독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여럿 해보게 된 것 같다. 물론 팟캐스트ACT! 편집위원도 계속 하고 있고, 블로그에 영화리뷰도 (아직까지는) 꾸준히 적고 있다. 대학원 입학과 함께 관람편수 자체가 급격히 줄었지만...


2023년의 시작은 연극이었다. 2022년 12월 31일 킥오프를 가지며 출발했고 2023년 2월 18~19일 동안 연희예술극장에서 공연을 올렸다. 두달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드라마터그의 역할로 연극에 참여했다. 사실 드라마터크가 연극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아직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연출을 맡은 친구와도 이야기하긴 했지만, 조연출 비슷한 무언가로 일했던 것 같다. 배우로 참여한 몇몇 친구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연극은 처음이었다. 영화, 미술, 문학, 만화, 디자인, 음악 등 겹치는 듯하면서도 제각각 살아온 친구들 간의 공동작업이었다는 점에서, 정말로 '아마추어적'인 작업이 아니었을까. 그것과 관련해서 연극평론가 권나은님의 리뷰가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정확하게 설명해주신 것 같다.


2월에 또 다른 처음 해보는 일이 있었는데, 바로 을 내는 것이었다. 물론 단독저서는 아니고, 팟캐스트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을 함께 하는 홍은화, 조일남, 이보라, 윤아랑 평론가와 함께 했다. 2021년 말부터 2022년까지 팟캐스트를 통해 다룬 영화 중 세 편씩을 골라 비평을 썼고, '영화 팟캐스트를 한다는 것'에 관한 각자의 에세이를 실었다. 나는 글이 아니라 말로 행해지는 비평에 관해, 나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해온 씨네토크 프로그램과 팟캐스트를 함께 이야기하는 글을 적었다. 조일남님의 초대로 팟캐스트에 합류한 지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는데, 지난 시간 동안 영화를 보고 말하는 방법에 관해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존재가 이 팟캐스트가 아닐까 생각하며 글을 썼다. 책을 계기로 새로이 방송을 들어주시는 분들도, 기존에 방송을 들어왔지만 이를 기회삼아 우정어린 이야기를 나누어준 친구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더불어 영화연구자 이선주 선생님께서 발표하신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형식’과 ‘활동’으로서 영화비평]에서 팟캐스트와 책에 관계를 이야기해주신 것 또한 재차 감사인사를 드린다. 아쉽게도 책은 현재 모든 온라인서점에서 품절상태다. 오프라인 서점에 아주 극소수가 남아있다는 제보(?)를 받은 적도 있으니 잘 찾아보신다면...


2023년부터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회원이 되었다. 독립영화비평상에 당선된 것이 2021년 3월이니, 2년 만에 회원에 가입하게 된 것이다. 큰 결심을 한 것은 아니고, 2022년 인디포럼에서 일한 이후 어떤 거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 2022년 한해 동안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진행한 여러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었고, '독립영화 쇼케이스' 등을 통해 상영 및 기획 활동을 이어가고 싶은 바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2022년에 기획 및 진행을 맡았던 '인디포럼 월례비행'의 즐거움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던 것 같다. 2023년 '독립영화 쇼케이스'에서는 <피아노 프리즘>, <나의 피투성이 연인>, <돌들이 말할 때까지>, <생츄어리>, <괴인>, <당신으로부터>를 소개했다. 그 중 <생추어리>의 GV를 직접 진행했는데, 사진은 다른 공동체상영에서 왕철민 감독님의 <동물, 원>을 관람하고 이날 상영도 찾아와준 어린이가 질문하던 순간이다. GV를 진행한 경험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올해는 유독 인상적인 GV의 진행자로 앉아 있었던 순간이 많았던 것만 같다. 

다른 해와 달리 한여름인 8월 진행한 기획전 '한 팔로 포옹하기' 때의 GV도 그랬다. '돌봄'을 주제삼아 여섯 편의 영화를 묶어 상영하였고, 나는 조기현 감독님의 <1포 10kg 100개의 생애> GV를 진행하였다. 집이나 직장에서 돌봄노동을 하고 계신 관객들, 돌봄노동을 수행하는 청년들의 공동체 활동가 등이 극장을 찾아주었다. 그 중엔 택시를 타고 극장에 오던 중 택시기사님을 섭외(?)하여 함께 오신 분이었는데, 질문을 하던 도중 즉석에서 함께 온 기사님을 인터뷰하시는 흥미로운 순간이 있었다. 기획전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원래는 국내의 퀴어 다큐멘터리를 모아볼까 생각했었다. 지난 5월 ACT!에서 진행한 '다큐멘터리를 퀴어링 대담' 이후 꾸준히 생각하던 것이기도 했다. 다만 최근 영화제 등지에 소개된 작품들만으로는 6편을 채우는 것도 쉽지 않았고, 과거의 영화들을 끌어오려 해도 '독립영화 쇼케이스'의 기존 상영작과 중복되는 바람에 다소 방향을 선회하였다. 작품들을 디깅하며 고민을 이어가던 중 대담을 다시 읽었다. 대담에서 권아람 감독님이 돌봄에 관해 말하는 대목이 있는데, '돌봄'이라는 행위가 지닌 보편성과 특정성이라는 이중적 상황을 주목한다면 기존에 생각하던 퀴어 다큐멘터리에 관한 부분도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혼자 기획한 것은 아니고, 독립영화 쇼케이스 기획위 분들과 함께 했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으로 기획전을 진행할 수 있었다. 특히 <1포 10kg 100개의 생애>와 <돌아서 제자리로>처럼 영화제에서 한번 소개된 이후 다른 곳에 알려지지 못한 영화들을 새로이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2023년의 마지막은 인디스페이스와의 기획전 [벽을 해킹하기]였다. 최이다 감독님의 기획에 숟가락을 얹은 수준이 불과했지만... 내가 참여한 섹션은 '도시 뒤에 공간 있어요'라는 제목으로 홍민키 감독님의 세 작품 <리얼 서바이벌 가이드 공중도시>, <들랑날랑 혼삿길>, <낙원>을 상영하였다. 상영 후 진행된 토크를 통해 세 작품이 도시공간 속에서 배제되는 소수자를 어떻게 다루는지, 도시에서 퀴어의 위치는 어디에 놓이는지, 나아가 그것들이 가상성과 맺는 관계는 무엇인지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기말인지라, 기획자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상영들에 적극적으로 참석하지 못해 아쉬웠다.


3. 올해도 이런저런 곳들에 원고를 보냈다. 저에게 일감과 지면을 제공해주신 매거진 ODD, 프리즘오브, 웹진 한국영화, 웹진 인디언밥, 게임제너레이션에게 감사드린다. 여러 글 중 특히 소개하고 싶은 것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영화 <영화의 사도들> 리뷰다. 탄자니아의 시각예술 콜렉티브 아자부-아자부가 제작한 단편 다큐멘터리로, 16분의 짧은 러닝타임 동안 탄자니아의 영화문화의 지금을 담아낸다. 그것은 탄자니아 자국의 과거 영화를 되살리는 것이기도, 해외의 영화를 이웃과 친구에게 소개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우간다에서 출발하여 동아프리카는 물론 '놀리우드'에까지 전파된 VJ/BJ 문화(과거의 변사와 유사한 영화해설자의 역할)가 중점적으로 다뤄진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작년 한민수 님의 '해적질의 옹호와 현양'이 공개된 이후 있었던 여러 이야기들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지점에서도 꼭 무언가 말을 보태고 싶었던 영화였다.


4. 2024년도 이런저런 일들에 참여하게 될 것 같다. 우선은 또 하나의 기획전을 준비 중에 있고... 올해는 1년 내내 대학원과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라 작년보다 컨디션 관리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학교에 다니느라 읽지 못했던 책과 보지 못했던 영화들도 챙겨보아야지 생각하고 있다. 모쪼록 여유로운 1월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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