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터스> 리 아이작 정 2024
지진이나 해일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자연재해 재난영화의 단골손님은 역시 토네이도일 것이다. 재난영화의 대부분이 할리우드에서 제작되기에, 다분히 미국적인 자연재해라 할 수 있을 토네이도의 잦은 등장은 일견 당연한 수순처럼 다가온다. 얀 드봉의 <트위스터>는 토네이도를 소재로 한 재난영화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영화의 흥행과 함께 (얀 드봉이 참여하지 않은) 속편들과 목버스터가 쏟아졌고, <샤크네이도>와 같은 극단적인 사례나 <인투 더 스톰>처럼 파운드푸티지/모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한 영화 등으로 이어졌다. <트위스터>와 직접적 연관은 없지만 후속작을 표방하는 <트위스터스>는 전작의 계승과 확장된 스펙터클이라는 익숙한 공식을 따른다. 1996년보다 발전한 VFX는 더욱 거대하고 실감나는 토네이도를, 그리고 처참한 재난의 풍경을 묘사한다.
큰 줄기에서 두 영화는 비슷하다. 토네이도에 매료된 폭풍 추격꾼(storm chaser)들이 주인공으로 나오고, 그들은 거대한 자연현상에 매료된만큼 그것의 위험과 파괴력을 잘 알고 있다. <트위스터>의 주인공들은 ‘도로시’라는 시스템을 만들어 정확한 토네이도 예보를 하고자 했다. 그것의 목적은 토네이도로 인한 피해를 가능한 줄이고자 함이며, 그 기저에는 토네이도에의 매료와 동시에 그것의 압도적 힘으로 인해 사랑하는 이를 잃은 경험이 있다. <트위스터스>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케이트(데이지 에드거 존스)와 하비(앤서니 라모스)는 과학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친구 셋을 잃었다. 다만 그들의 목표는 전작의 주인공들과 다르다. 그들은 정확한 토네이도 예보를 위해서가 아니라(물론 하비의 ‘도로시 5’라는 기계를 통해 전작의 오마주를 바치지만), 토네이도를 길들이기 위해 그것을 추격했다. 비록 그것은 실패했고 친구들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지만 말이다. 시간이 흘러 토네이도 데이터를 수집하는 사업을 벌이는 하비는 기상청에 근무하는 케이트를 찾아와 함께 일하자고 말한다. 더 정확하고 정교한 측량을 위해 토네이도를 쫓던 중 마주친 폭풍 추격꾼 유튜버 타일러(글렌 파월)는 하비에 사업에 불만을 가진 듯하다.
리 아이작 정은 <미나리>에 이어 오클라호마를 배경 삼은 영화를 찍었다. (<미나리>의 배경은 아칸소이지만 오클라호마주와 맞닿아 있는 지역이며, 촬영 자체는 오클라호마에서 진행되었다) 지난 몇 년간 오클라호마의 토네이도 발생 빈도가 급증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은 기후위기를 그 원인으로 꼽는다. <미나리>의 오클라호마가 ‘아메리칸 드림’이 현실화될 수 있는 이민자의 미개척지였다면, <트위스터스>의 오클라호마는 지금의 미국이 마주한 현실 자체다. 하비의 투자자인 부동산업자는 토네이도로 집을 잃은 이들의 땅을 헐값에 매입해 수익을 올리고, 하비는 토네이도의 정확한 관측이라는 목적을 위해 그와 손을 잡았다. 그가 전작의 주인공을 계승하여 토네이도의 관측과 예보에 집중하고 있음을 떠올려보면, 하비의 욕망은 전작의 주인공들이 지녔던 욕망, 토네이도를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에 가깝다. 케이트는 그와 다르다. 그의 목적은 토네이도의 관찰과 예보가 아니라 길들이는 것이다. 수분을 흡수하는 수지를 활용해 토네이도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그의 이론적 계획은 현실을 예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해결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트위스터스>에 기후 변화(climate change)나 기후 위기(climate crisis), 지구온난화와 같은 재난영화의 단골 개념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지나가는 대사로도 이 용어들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심지어 리 아이작 정 감독은 이 영화가 기후 위기에 관한 메시지를 담으려는 영화가 아니라고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다. <트위스터스>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토네이도의 거대하고 강력한 힘뿐만이 아니다. 그것이 휩쓸고 지나간 마을, 죽어가는 사람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을 착취하는 자본가, 더욱 늘어가는 재해. 영화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대신 케이트, 타일러, 하비라는 세 인물과 그들 주변의 상황들을 통해 보여준다. 단지 보여줄 뿐이다. 겉보기엔 토네이도에 뛰어드는 정신나간 돈키호테에 가까운 카우보이 타일러는 자신의 활동을 통해 토네이도에 의한 피해자들을 구호하고자 한다. 날씨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케이트는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으로 인해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이 다치고 죽는 것을 참을 수 없는 사람이다. <트위스터스>는 무작정 토네이도에 뛰어드는 사람들의 어떤 낭만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전작과 궤를 같이하지만, 그것을 채우는 세부는 완전히 다른 재료들로 채워진다. 누군가는 음모론으로 비하할지라도 이미 현실로 다가온 문제 앞에서, 그것을 단순히 “한몫 잡을” 기회로 여기는 이들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트위스터스>는 자신이 맞닥뜨린 문제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가장 전통적인 할리우드의 방식으로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