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영화(산업)가 최악의 한 해를 보낸 가운데, 산업 바깥에 놓인 영화들은 언제나처럼 흥미로운 순간들을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거룩한 밤: 데몬헌터스>, <전지적 독자 시점>이나 <대홍수> 같은 기획의 철저한 실패를 경험한 영화들이 극장과 OTT를 가리지 않고 쏟아져 나왔고, (한국영화는 아니지만) <미키 17>과 <어쩔수가없다>는 소위 한국 '거장'들의 처참한 실패를 여실없이 보여주었다. <검은 수녀들>, <악마가 이사왔다>처럼 입봉작으로 주목받았던 감독들 또한 실패를 맞이했고, 그나마 나름의 시도를 선보인 <퇴마록>이나 <하이파이브> 같은 '졌잘싸' 영화들이 흥미로웠달까. 이러한 와중에 중예산 영화 지원이나 AI 영화 제작 활성화 같은 한심한 정책들이 나돌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얼마 전부터 기회나 자리가 될 때마다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필요한 것은 제작지원이나 무척이나 한정적인 개봉지원이 아니다. 관객이 없는데 영화가 제작되고 개봉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영화제나 소수 상영관을 겨우 배정받을 뿐인 개봉이 아닌 다른 방식의 상영 및 관람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다보니 올해는 여러 심사에 침여하게 되었다. 예심이건 본심이건 무수한 영화를 봐야한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 해 동안 만들어진 영화들을 한 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은 적잖은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물론 심사 일정으로 인해 놓친 영화라던가, 가지 못한 상영이 적지 않지만 말이다. 고되고 보람찬 한 해였달까. 다른 한편으로, 작년의 연말 리스트 글에서 2025년 30주년을 맞이하는 여러 곳들(씨네21, 한예종 영상원, 부산국제영화제 등)을 이야기했었다. 그 글에서의 바람(?)과 다르게, 각각의 30주년은 정말 아무 일 없이, 정말로 이렇다 할 사건도 변화도 발언도 없이 흘러만 간 것 같다. 각각이 각자의 3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들을 내놓았지만, 거기서 무언가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웠달까? 물론 그 모든 것들이 내란이라는 거대한 사건에 휩쓸려갔다는 인상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한 해를 정리하며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났으면 싶은 10편의 영화를 골랐다. 단편과 장편을 구분하지 않았고, 극장개봉 및 영화제나 기획전 등에서 첫선을 보인 신작들로 꼽았다. 가나다순으로 나열했다. 참고로 올해 이전에 관람하여 이전 리스트에 포함된, 가령 <에스퍼의 빛>등의 작품들은 포함하지 않았다.
<3학년 2학기> 이란희 2024
‘노동영화’라는 명명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붉은 머리띠를 둘러매고 팔뚝질하며 구호를 외치는 투쟁의 이미지가 떠오를 테다. 사측이나 고객의 폭언과 갑질에 시달리며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는 불행한 노동자와 일터의 풍경을 떠올릴 수도 있다. 혹은 그러한 순간들 속에서 가능한 일탈과 연대의 순간을 새겨 넣는 영화들을 떠올려 볼 수도 있다. <파업전야> 속 붉은 머리띠와 높이 치켜둔 횃불,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폭언 속에서도 지켜나가던 웃음을 서서히 잃어가는 <다음 소희>의 콜센터 현장실습생, 노동의 현장에 카트로 장벽을 치고 투쟁과 연대의 현장으로 탈바꿈시키는 <카트> 속 마트 노동자들. 이란희의 영화는 그러한 현장과 이미지를 조금씩 비껴나간다. 이란희는 우직하게 이들의 노동을 담아낸다. 점심시간에는 근처 백반집에서 밥을 먹고, 추가보수가 걸린 잔업을 일상처럼 받아들이며, 여느 또래 학생들처럼 성인이 되는 순간을 기다리는 19살의 노동. 노동영화에 으레 등장하곤 하는 악역이나 비교대상도 이 영화엔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등장하긴 하지만 적극적인 갈등의 주체가 되지 않는다. 현장관리자는 규정의 회색지대에서 안전장치의 부재를 지적하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회피하거나 휴일 근무를 진행한다. 하지만 <3학년 2학기>에서 그가 악인으로 묘사되는가? 그렇지 않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며 수능을 준비하는 창우의 동생은 고된 하루를 보내고 퇴근한 창우가 잠든 곁에서 불을 켜고 공부하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다. 하지만 영화가 그 둘의 처지를 비교하는가? 그렇지 않다. <3학년 2학기>는 위험한 현장과 과중한 노동에 내몰리게 된 현장실습생의 모습을 담아내지만, 위험과 과로를 스펙터클로 담아내길 정중히 거절한다. 영화 속 노동자들이, 영화 밖 관객들이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공간이 언제든 죽음을 맞닥뜨릴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 그럼에도 생계와 진로 등을 두고 두려움과 월급 사이를 저울질해야만 하는 사회초년생의 초상. 창우의 얼굴은 영화 내내 무표정하다. 20살이 된 새해 첫날 우재가 일하는 편의점 앞 벤치에서 맥주를 마시는 장면 등 몇몇 순간을 제외하면, 창우의 웃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어딘가 무기력해보이기도, 성실하게 노동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한 창우의 무표정은 <3학년 2학기>의 중추를 이룬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회초년생의 어리숙한 얼굴이자, 피로와 고통을 참아가며 월급을 받아야 하는 서민의 얼굴이며, 자신 앞에서 벌어진 사고에 아파하기보단 당황스러워하는 얼굴이다. <3학년 2학기>는 이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지거나 슬픔에 사로잡혀 울먹거리길 바라지 않는다. 그 얼굴은 그 순간들 속에서도 노동을 지속하고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바로 그 얼굴이다.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홍상수 2025
홍상수의 신작이 으레 그러하듯,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또한 앞선 영화를 보며 염두에 둔 독해 방식을 가볍게 무시하게끔 한다. 시인 동화가 우연히 방문하게 되는 연인 준희의 집 구조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탑>이나 <도망친 여자>를 떠올리게끔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이 영화에 접근하는 것은 어느새 무의미해진다. 홍상수 영화에서는 이례적으로 콘텐츠판다와 전원사의 로고가 나오는 순간부터 등장한 디제시스 내의 사운드는 영화의 시작부터 머리속에 물음표를 띄우게끔 한다. 이러한 지점들을 차치하더라도,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는 그의 2000년대 영화들만큼 웃기다. 특히나 찌질한 시인 동화의 모습은 홍상수 영화 속 김상경이나 김태우가 연기했던 예술가 (특히 영화감독) 남성들에서 섹스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제거한 것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어쩌면 <수유천>이나 <여행자의 필요>와 같은 근작에 비해 소품으로 보이는 이번 영화의 즐거움이랄까.
<그래도, 사랑해> 김준석 2025
올해 유독 독립영화 지원사업의 틀 바깥에서 제작된 영화들의 약진이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무엇보다 그러한 약진에 있어 자신이 당장 손에 쥔 것들, 이를테면 가족, 친구, 동료, 집, 차와 같은 것들을 영화의 대상이자 소재삼는 영화들이 장편과 단편을 가리지 않고 많았던 한 해였다. <그래도, 사랑해>는 그러한 일련의 영화들 중 가장 발군의 영화다. 실제로 배우인 감독과 그의 아내를 주인공 삼는 영화는 육아 중 누가 먼저 배우로 복귀할 것인지를 논의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연극판의 동료들을 불러 나름의 오디션을 하기로 한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코미디 영화의 설정과도 같지만, 그것이 같은 상황에 놓인 실제의 대상들의 몸과 음성으로 행위될 때 영화가 갖는 맥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풍성해진다. 기본적으로 대본이 있는 극영화이지만, 동시에 실존하는 관계와 쌓인 시간 속에서 등장하는 제스처들이 빼곡히 차 있다. 유사한 제목을 공유하는 감독의 앞선 두 단편(<그래도, 화이팅>, <그래도, 행복해>)의 거친 질감이 오정석 촬영감독을 통해 정리되어 제시되는 순간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좀 더 자세하게 영화에 대해서는 이보라 평론가가 마테리알에 기고한 글이 여러모로 좋은 설명을 제시하고 있으니 그걸 참고하는 편이...
<도라지 불고기> 양지훈 2025
*지난 6월 진행된 동명의 전시서문 발췌로 대체...
논픽션과 픽션을 가리지 않고 재일조선인은 역사의 피해자로, 차별과 혐오 속에서 살아가는 소수자로 재현되었다. 물론 이것의 재현은 중요한 문제다.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일제의 과오가 존재하고, 차별과 혐오는 현재진행형이다. 박수남이나 양영희의 다큐멘터리를 보지 않아도 우리는 피해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고, <피와 뼈>(2005)나 <파친코>(2022~2024)를 보지 않아도 차별의 시간을 알 수 있으며, <우리 학교>(2006)나 <나는 조선사람입니다>(2021)을 보지 않아도 조선학교 학생들에 공감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영화들은 그것을 재현한다. 그러한 재현이 비윤리적이거나 잘못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때의 재현은 필요한 정치적 전략에 가깝다. 피해와 가해의 스펙터클, 일본과 한국, 북한을 넘나드는 재일조선인 인물들의 내러티브는 매력적이고, ‘기억하기의 정치’라는 측면에서 효과적이다. 피해와 차별을 증언하고 재연하는 얼굴은 영화적 장소이자 피해자됨과 약자됨이 체현된 표면이다. (중략) 얼굴 없는 이들의 이야기로 구성된 다큐멘터리는 무엇인가? 관객은 카메라 앞의 주어진 대상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도라지>와 <불고기>의 다큐멘터리적 진정성이나 진실성을 의심할 수도, 심지어 그것이 비윤리적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이러한 비판은 일정 부분 타당하다. 그들의 이야기만을 취해 작가의 입맛대로 재일조선인을 재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작품이 담아내는 재일조선인의 이미지에 집중해보자. 이들의 삶은 일제강점기와 분단이 만들어낸 역사적 아이러니 속에서 조총련과 조선학교라는 이름의 폐쇄적 공동체와 강제되는 국적 선택의 문제 속에 놓인다. 도입부에 열거한 작품들에서처럼 그것은 이들의 피해자됨과 약자됨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들의 삶이 피해자나 약자의 규범 속에 놓이는가? 학교에서는 북한 노래를 공연하지만 노래방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가요를 부르는, 여느 젊은이들처럼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진로를 고민하는 평범함이 여기에 담겨 있을 뿐이다. 이 평범함을 어떻게 찍을 수 있을까? 평범함에는 매력적인 내러티브도, 눈길을 사로잡는 스펙터클도 없다. 작가는 평범함의 유일한 스펙터클일 수 있을 얼굴마저 지워버렸다. 행여 관객이 저들의 얼굴을 재일조선인의 초상이라는 스펙터클로 받아들일 여지마저 배제한다. 운동장의 인공기, 강당에 걸린 북한 지도자들의 초상, 한복을 입고 안무를 추며 부르는 북한노래. 이것들은 얼굴 없는 재일조선인이 놓인 역사가 아니라 환경을 환기한다. 그들이 지금과 같은 삶을 살게 된 원인이 아니라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양지훈은 찍는다. <불고기>에서 작가가 스쳐지나가듯 말하듯이, 한국을 살아가는 (아마도 전시를 찾은 대부분의) 관객들은 경험하지 못했기에 궁금해하기도, 부러워하기도, 이상하게 바라보기도 하는 삶.
<바얌섬> 김유민 2023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 프리미어작이니 개봉이 꽤 늦어진 편이다. 인천의 (사실상) 무인도인 사승봉도에서 전체가 촬영된 이 영화는 왜란 시기 조선을 배경이다. 충청도 방언을 구사하는 소년(꺽쇠), 청년(창룡), 중년(몽휘)는 난파한 거북선에 선원이었다. 얼피 세 남성의 생존분투기를 코믹하게 그려낸, <캐스트 어웨이>와 <김씨 표류기> 같은 영화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설정이다. 하지만 <바얌섬>은 이들의 생존을 영화의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아니, '손톱 먹은 들쥐' 등 전래동화나 설화에서 차용된 판타지적 설정과 얼핏 타임루프에 빠진 듯한 이들의 반복되는 일상은 이 영화를 독특한 SF 판타지적 분위기로 이끌어 간다. 미약하게 감지되는 장르 설정의 맥박 위에서 세 사람은 얼핏 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난파된 거북선의 선원 몽휘가 자신의 소년-청년-중년 시절을 떠올리는 주마등이자 저승으로 향하기 전 머무는 연옥과 같은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한국 독립영화에서 좀처럼 시도되지 않는 사극이라는 점, 문명의 흔적(건물은 물론 식탁이나 의자조차 나오지 않는)이라고는 없는 배경 등은 <바얌섬>을 최근의 독립영화들이 보여주는 촬영에서 완전히 동떨어지게끔 한다. 인물은 의자에 앉거나 골목을 거닐며 대화할 수 없고, (학교, 집, 식당 등) 독립영화의 친숙한 장소들에 존재할 수도 없다. 때문에 이 영화는 그간의 독립영화가 익숙하게 인물을 담아내던 촬영과 편집의 방식에서 자연스레 거리를 두게 된다. 충청도 방언이 자나내는 익숙치 않는 분위기와, 리산드로 알론소나 루크레시아 마르텔이 슬쩍 스쳐지나가는 영화의 풍경과 리듬감이 반갑다.
<유령> 임지훈 2025
영화의 전당에서 진행된 김정근 감독의 다큐멘터리 워크숍을 통해 제작된 작품으로, 임지훈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사실 이 영화의 기술적 완성도는 형편없다. 동네 주민을 인터뷰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어정쩍하게 상대방의 배를 찍고 있기도 하고, 색보정이나 음향 믹싱과 같은 후반작업은 전혀 거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심사회의 때 심사위원 세 명이 가장 먼저 합의한 수상작이었다. <유령>은 부산 곳곳의 재개발 구역, 버려진 집과 모텔, 도시빈민들이 거주하던(혹은 거주하는) 공간들을 담아낸다. 카메라는 이곳들의 풍경을 담아낸다. 녹슨 철문, 버려진 쓰레기, 페인트칠이 벗겨진 건물, 널부러진 자전거... 임지훈의 카메라는 한 거주불명자가 살았던 주소지와 거주년도를 담은 자막과 함께 그 동네를 담아낸다. 그럼으로써 이 영화는 탐정극이자 반(反)-도시교향곡이 된다. 그리고 영화는 감독-탐정이 마침내 찾고자 했던 것을 마주했을 때의 환희를 소거한다. 그저 덤덤하게, 감독은 자신이 찾고자 했던 대상 옆에 앉아 평범한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관객은 이 탐정극의 자세한 내막에 대한 설명을 듣진 못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쉬이 마주할 수 없는 부산의 모습들을, 탐정의 태도로 도시를 바라볼 때에야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이미지들을 우리에게 남긴다.
<인서트> 이종수 2024
1월 <부모 바보>를 자체배급으로 개봉시키고, 하반기에는 '비개봉 상영'이라는 형식으로 <인서트>의 영화제 이후 상영을 이어가고 있는 이종수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물론 이종수 감독의 영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지극히 '독립적인' 배급 방식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 바보>에서 사회복무요원과 담당 사회복지사의 관계를 통해 루틴한 일상 속에 틈입한 어떤 삶의 조건과 발견들을 담아냈다면, <인서트>는 영화의 '인서트 감독'인 주석과 우연히 촬영부에 들어온 주현의 관계를 통해 그것을 더욱 강화한다. 인서트라는 영화의 제목에서처럼, 무엇과 무엇 사이를 채워주기 위해 존재할 뿐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다녀야 하는 사람은 무엇을 바라보고 또 발견할 수 있을까? 주석의 뒤를 쫓게 되는 관객들은 인서트가 단순히 장면과 장면 사이를 매끄럽게 만들어주는 용도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화에 동참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한편으로는 '삶의 은유로서의 영화만들기에 관한 영화'라는 전형성을 따르는 듯 하지만, 우리는 영화 내내 그 전형성을 가벼이 회피하는 끼어듦을 목격하게 된다. 인서트 속에 끼어든 인서트, 중요한 것들로 여겨지는 장면과 장면 사이를 채워줄 뿐인, 대체 가능한 어떤 대상이 아니라 '사이'라는 시공간에 주목하는 영화. 어쩌다보니 서로의 삶에 끼어들게 된 두 주인공의 연애담은 인서트라는 은유를 통해 즐거이 바라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로 완성된다.
<지금, 녜인> 임대청 2025
미얀마 만델레이로 자원봉사를 떠났던 최진배는 그곳에서 녜인 따인이라는 여성과 만나 연애를 시작하고, 함께 한국으로 와 부부의 연을 맺는다. 함께 삶을 꾸려가던 2021년 2월 1일,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다. 아웅산 수치 여사를 비롯한 미얀마 민주화 투쟁의 주요 인사들이 체포되고, 군부에 저항하는 시민들은 폭력적으로 진압당하기 시작한다. 최진배는 '미얀마 투데이'라는 이름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해 한국인들에게 미얀마 뉴스를 전달하기 시작한다. 녜인은 미얀마 현지의 지인들과 연락해 그들의 소식을 한국에 전달한다. 시간이 흐르고 군부의 집권이 점차 길어지자, 미얀마에 대한 국내 보도는 줄어들고 사람들의 관심은 사라진다. <지금, 녜인>은 군부 쿠데타 발발부터 현재의 이르는 시간 동안 두 사람의 활동을 기록한다. 그들은 배달 플랫폼의 배달기사로, 음식점 종업원으로 일하며 번 적은 돈을 모아 미얀마에 송금하기도 한다. 불안정한 인터넷과 VPN을 통해서야 겨우 안전하게 연락할 수 있는 미얀마의 시민들은 군부의 탄압과 학살 속에서도 세 손가락을 치켜든 채 희망을 잃지 않고자 한다. 이 영화는 그들이 어떻게 희망을 잃지 않았는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2020년대 들어 세계 각지에서 학살과 내전, 쿠데타가 발발하고 민주주의와 시민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지금, 녜인>은 미얀마를 이야기함과 동시에, 우크라이나에서, 팔레스타인에서, 방글라데시에서, 네팔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군사주의와 파시즘에 대적하여 생존권을 사수하고자 하는, 나아가 생존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국경 너머의 우리가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군부에 의해 불타버린 마을, 시위 도중 다친 사람들, 군부와 전투 중 사망한 민병대원들의 사진을 뽑아 벽에 붙여 놓는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가족이 위협받을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녜인은 미얀마의 상황을 전파하는 데 힘을 쏟는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가 한 차례 체포되고, 위험을 피하기 위해 여동생이 한국에 와야하는 상황 속에서도 말이다. 영화의 제목이 가리키는 '지금'은 녜인이라는 개인의 지금을 말하는 것임과 동시에,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물론 영화 속 최진배의 말처럼 지금 우리 눈앞에 닥친 위기 또한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한국에서는 계엄령을 통한 내란이 시도되었고, 그것은 여전히 완전한 해소 상황에 이르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지금'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생존하고 있는지, 군부는 어떻게 시민을 탄압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 군사주의는 어떻게 생존을 위협하는지 두 눈 부릅뜨고 목격해야 한다. 라고 <지금, 녜인>은 강력하게 발언하고 있다.
<지느러미> 박세영 2025
오랜 기간 추가촬영과 후반작업을 거쳐 공개된 박세영의 새 장편영화. <지느러미>는 통일 한국을 배경으로, 자세한 설명은 나오지 않지만 (아마 핵전쟁 여파일 듯한) 오염으로 인해 발생한 돌연변이 물고기 인간 '오메가'들에게 해안의 오염물질 제거를 일종의 노역으로 부과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다. 영화는 오메가라는 돌연변이 인간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혐오를, 오메가 관리국의 신입 직원 수진, 비밀리에 운영되는 실내 낚시터 직원 미아, 죽은 동료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장벽을 넘어 도시로 넘어온 오메가, 세 사람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전작 <다섯 번째 흉추>나 <기지국>이 그러했던 것처럼 어딘가 기괴하게 멸망한 (혹은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듯한 존재들) 세계가 등장하는 <지느러미> 또한 박세영 특유의 거친 질감과 어두우면서도 강렬한 색감을 통해 표현된다. 비교적 단순한 내러티브를 직선적으로 밀고 나갔던 단편 극영화와 달리 앞선 두 편의 장편 극영화에서 스토리텔링의 불친절함을 되려 내러티브의 징검다리로 사용했던 것처럼, <지느러미> 또한 감각의 덩어리들을 제시하는 것으로 스토리텔링을 갈음하는 시도를 선보인다. 여기에는 <지느러미>가 세팅해둔 세계관이 (명확히 설명되는 부분이 많지 않음에도) 나름의 정합성을 가지고 작동한다는 점에서 전작들과 차별화된 지점이 발생한다. 이 영화의 세계-짓기(worldbuilding)는 타 종족에 대한 차별과 혐오라는 포인트를 다양한 감각의 덩어리, 이를테면 오프닝 시퀀스에서 철벅철벅 걸어다니는 오메가들, 북한 선전물을 닮은 통일 한국의 선전물들,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공통적으로 묻어 있는 검은 때, 친-오메가 시위대와 반-오메가 시위대의 충돌과 같은 순간들이나 이미지적으로 두드러지는 요소들을 통해 기능한다. 여기에는 그 요소들이 우리가 영화 바깥에서 봐온 것들의 SF적 변용이라는 점이 한 몫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지느러미>는 다소간 판타지에 가까웠던 앞선 두 장편보다는, 되려 우리의 현실을 새로운 세계에 이식한 모습을 선사한다.
<파기상접: 깨진 그릇 붙이기> 임지수 2025
올해 관람한 국내 다큐멘터리들을 보며, 더불어 12.3 내란 이후의 광장을 보며 지금의 국내 다큐멘터리에 요구되는 현장은 어디일지를 반복해서 고민했던 것 같다. 단순히 광장을, 참사와 재난을, 투쟁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올해 만난 몇몇 다큐멘터리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이를 질문했다. <오, 발렌타인>은 30여 년 전의 투쟁을, <흔들리는 사람에게>는 10여 년 전의 학생운동을, <부력>은 2010년대 액티비즘 다큐멘터리의 현장들을 증언, 편지, 일기 등의 형태로 재방문했다. 여기 또 하나의 다큐멘터리가 있다. 자신이 보기 위한 일기이자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이며, 동시에 동료들을 향한 고백이고 세상을 향한 증언이 되는 영화. <파기상접>은 그간 여러 다큐멘터리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다뤄졌던 한예종 영상원 방송영상학과 H교수의 성희롱 고발을 다룬다. 2019년 익명의 대자보를 통해 처음 폭로된 성범죄는 유사한 피해를 겪은 다른 학생들의 대자보와 고발로 이어졌다. 학교는 H교수에 대해 3개월 정직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고, 영화는 그러한 일련의 사건들로부터 5년의 시간이 흐른 뒤이다. 임지수는 자신과 함께 학교에 다니며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영화제에 상영되기도 한 남아름, 홍다예, 김윤겸 등의 학우이자 동료이며 동지인 이들을 찾아 인터뷰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오래 전 찍었던 푸티지들을 찾아 다큐멘터리를 완성하고자 한다. 그들이 주축이 되어 전개된 미투운동은 절반의 성공으로 마무리되었다. H교수에 대한 처벌과 학내 성범죄 규정 마련 등의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장기간 진행된 투쟁은 피로와 갈등, 트라우마로 자리잡는다. <파기상접>은 그 오래된 상처를 다시 끄집어내고, 영화의 제목처럼 금이 간 과거의 시간을 동료들과 함께 짜맞춰 붙여보는 작업이다. 다시 붙은 깨진 그릇에 남은 흔적이 지닌 미학처럼, 이 영화는 이미 마무리된 듯한 사건과 운동의 시간이 남긴 상흔을 액티비즘 다큐멘터리와 자기고백적 에세이의 문법을 통해 자신만의 다큐멘터리 미학을 향해 나아간다. 사실 깨진 그릇을 붙이는 것은 그 결과물보단 그 과정의 아름다움을 상기하게 되는 작업이다. <파기상접>은 그러한 시간의 기록이자, (이제는 알고리즘 생성되기까지 하는) 정보와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액티비즘의 가능성 중 한 가지를 제시한다.
+그밖에 기억에 남는 영화들
<부모 바보> 이종수 2023
<임계> 권희수 2025
<무색무취> 이은희 2025
<봄밤> 강미자 2024
<3670> 박준호 2025
<여름이 지나가면> 장병기 2024
<창경> 이장욱 2025
<오, 발렌타인> 홍진훤 2025
<가끔은 여정이 아름답기도 하다> 고한벌 2025
<퍼니스트 홈비디오, 코리아> 김국희 2025
<로타리의 한철> 김소연 2025
<부력> 박배일 2025
<1980 사북> 박봉남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