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카페크리틱 녹음을 위해 쓴 메모.
친애하는 저희의 객원멤버 금동현 님이 안성기에 대해 블로그에 남긴 메모가 있는데요. 안성기 배우가 돌아가시고 영상자료원에서 발 빠르게 진행한 온라인 기획전 라인업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1980~90년대 영화들, <만다라>,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개그맨>, <남부군>, <태백산맥>, <축제>와 같은 한국영화의 걸작들의 얼굴을 맡았습니다. 동현님은 여기에 대해 ”한국영화의 ’ 1990년대‘는 그 누구도 아닌 안성기가 열었다. ’80년대적인 것‘에서 ’90년대적인 것‘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안성기가 필요했다“라고 적고 계십니다. 여기에 여러모로 동의하게 되죠. 다른 한편으로, 안성기는 자신이 1980~90년대를 든든하게 받쳐온 방식을 그대로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이어갑니다. 보통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작을 1999년의 <쉬리>로 여기는데, 그 1년 전에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작품은 안성기, 신현준, 추상미 주연의 이우혁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퇴마록>이었습니다. 국내 CGI 발전사를 이야기할 때 1994년의 <구미호>, 1996년의 <은행나무 침대>와 함께 거론되곤 하는 영화인데요. 앞선 두 영화보다 (발전했다고 하기엔 뭣 하지만) 조금 더 많은 분량의 CGI를 보여주기도 하고요. 사실 영화 자체는 <7광구> 버금가는 졸작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작년 개봉했던 애니메이션 <퇴마록>과 비교해도요. 특히나 박 신부 역의 안성기는 원작의 묘사를 떠올렸을 대 미스캐스팅 그 자체입니다. 원작 속 박 신부의 묘사가 180cm가 넘는 다부진 체격의 거한이라는 점과 다양한 액션을 선보이는 캐릭터였으니 말이죠. 안성기는 이제 막 발걸음을 뗀 국내 CGI 기술과 정신산만한 영화화, 그리고 미스캐스팅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굉장히 꼿꼿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어쩌면 그 모습은 2010년대 이후 <7광구>, <타워>, <신의 한 수> 등의 졸작 혹은 어정쩡한 ’한국형 블록버스터‘ 속에서의 모습이라던가, 다시금 신부로 출연한 <사자>에서의 안성기의 모습을 미리 보는 것만 같습니다. <퇴마록>으로부터 딱 5년 뒤, 안성기는 <투캅스>를 함께했던 강우석의 신작에 출연합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대실패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1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한국형 블록버스터‘인 <실미도>이죠. 한국 최초의 천만영화이기도 하고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얼굴들로 저희가 떠올리는 건 사실 설경구, 송강호, 하정우, 이정재, 류승룡, 마동석, 황정민 등의 얼굴이지 안성기가 아닙니다. 다만 안성기는 <퇴마록>과 <실미도> (그리고 <투캅스>와 같은 90년대의 히트작)을 통해 그 출발점을 단단하게 만들어준 존재이기도 합니다. 물론, 다시금 동현님의 말을 빌리자면, 1990년대를 열었던 안성기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뒷자리에서 영화의 격이 필요할 때 소환되던 존재인 셈입니다. 사후적인 평가이지만, 한국 상업영화 시장이 몰락한 것을 통해 첫 삽이 정말로 잘못 떠졌음을 알게 되었지만요. 그런 의미에서, 그의 마지막 출연작이 동시촬영된 <한산: 용의 출현> 과 <노량: 죽음의 바다>, 그리고 150억 에산이 투입된 가톨릭 영화 <탄생>인 것이 묘하게 다가옵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몰락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의 영화들이니까요.
사진은 차례로 <퇴마록> <실미도> <7광구> <탄생> <한산: 용의 출현>의 안성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