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24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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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자원 [영화서클] 원래는 못 본 작품을 전부 챙겨보려고 했는데, 허리 부상 이슈로 얄라셩의 <국풍>, <섬>, <그들도 우리처럼>, <출구>의 상영만을 겨우 다녀왔다. 재작년 인디스페이스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질문' 기획을 함께했던 김수연 선생님이 최근 발표한 논문 "1980년대 초기 '작은영화'의 수행성 연구"에 기반한 강연과 얄라셩의 주축 멤버였던 김홍준, 박광수 감독의 토크가 상영 후 이어졌다. 2년 전 즈음부터 1980년대 대학 영화동아리, 얄라셩을 비롯해 이화여대 누에, 경희대 그림자놀이, 연세대 영화패, 홍익대 빛의소리, 고려대 돌빛, 한양대 소나기 등에서 제작된 영화들이 관심을 받고 있고, 이들이 대학 바깥에서 형성한 여러 집단들에 대한 연구와 상영 등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1990년대 비디오테크에 관한 이야기도 이선주 선생님의 [시네필의 시대] 이후 관심이 높아진 것 같고, 1970년대부터 이어지는 작은영화/소형영화의 아방가르드 실천이나 프랑스문화원에서 진행되었던 '토요단편'이 함께 언급되는 것도 신기한 현상이다. 누군가는 이제 '원로' 영화인에 가까워진 당시의 영화인들이 은퇴 전에 자신들의 행보를 공식화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아주 틀린 말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댜른 한편으로 독립영화(와 영화 자체)의 근간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독립영화사 다시쓰기의 맥락이 조금 더 깊게 개입된다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 [독립영화하다]와 [무명의 비평가들] 기획전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독립영화의 생산주체는 단지 독립영화인만이 아니다. 방송국, 아이돌 엔터산업, 패션기업, 인디밴드, 대학, 미디어센터, 미술관 등 서로 다른 수준의 자본과 네트워크를 지닌 이들이 만들어낸 장/단편 영화가 독립영화라는 카테고리로 한데 묶여 유통되는 게 2010년대 독립영화의 상업화를 거쳐 2020년대 더욱 빠르게 전개되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어떤 오타쿠적 연구자들, 혹은 지금의 독립영화 '판'이 퍽 만족스럽지 않은 이들이 되려 70년대로, 80년대로, 90년대로 되돌아가보는 것이 아닐까. 물론 나도 그 중 한 명이고. 시네토크에서 흥미로웠던 순간은 앞선 강연에서 구술에 기반한 연구이기에 발생한 오류들을 (주로) 박광수 감독이 실시간으로 정정하던 순간이었다. 여기서 정정된 정보들은 사소할 수도 있는 것, 이를테면 누가 서울영화집단의 회원이었는지 아니었는지라던가, 장선우 감독이 얄라셩 출신이라는 잘못된 정보라던가 하는 것들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금이 이런 정보들의 정정이 이루어져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지난 2~3년 동안 나온 여러 연구에서 다소 선형적이고 단절적으로 기술된, 1996년 서울영상집단의 [변방에서 중심으로]가 다소 성급하게 독립영화사를 정립한 이래로 잘려나간 맥락들이 복원되는 과정이랄까. 참여 중인 독립미디어 세미나에서 미디액트 김명준 소장님이 종종 80년대 '영화'운동이 사실 '영상'운동으로 부르는 게 적절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는데, 운동이라는 맥락에 반쯤 걸쳐 있는 얄라셩의 영화들을 보며 이 말을 떠올렸다. 아래 글과 논문들을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박은지 (2021). 부산프랑스문화원과 시네필리아. <부산영화사>

이선주 (2022). 비디오필리아, 시네필리아, 뉴 시네필리아-1990년대와 21세기 한국 시네필의 어떤 경향. <구보학회>. 32호.

유운성 (2023). 독립영화_1980년대 비제도권 영화의 풍경. 한국영상자료원(편). <1980년대 한 국영화>.

김수연 (2024), 한국 실험영화 동인의 등장과 뉴시네마 실천 연구, 부산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김수연 (2025), 1980년대 초기 '작은영화'의 수행성 연구, <영화연구>, 106호.

금동현 (2025), ‘한국소형영화동호회’의 사회문화적 성격 연구 ― 회지(會誌) 『소형영화』, 촬영대회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한국극예술연구>, 84호.


발표된 논문은 아니지만 작년 중앙대 영화미디어학 대학원생 컨퍼런스에서 송은지의 "1980년대 '광주 비디오(들)'의 해적질 네트워크와 해적판 미학" 발표도 흥미로웠는데, 대학과 종교시설에서 유통되던 광주 비디오(들)을 <상계동 올림픽>과 노동자뉴스제작단보다 앞선 비디오 독립 다큐멘터리 실천으로 바라보는 지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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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책 작업을 하다가 한참 찾아본 정보들. <브루스 리의 클론들>이라는 제목으로 주로 알려져 있는, 1970~80년대 브루스플로이테이션(bruceploitation)의 대표작인데, 이 작품의 정보가 DB나 위키마다 상이해서 이것저것 찾아봤다. 우선 영화의 제목들은 아래와 같다.


The Clones of Bruce Lee

神威三猛龍

사형삼걸

등등...


IMDB나 위키피디아 등 여러 영문DB에는 연출이 조셉 콩(Joseph Kong 혹은 Joseph Velasco)와 남기남의 공동연출처럼 써있는데, 유튜브의 영어더빙 판본에는 조셉 콩의 이름만 올라와 있다. KMDB에 올라와 있는 이영재 연구자의 글을 통해서 조셉 콩이 브루스플로이테이션을 주로 제작하던 대만 출신 감독이라는 것은 알았는데, 그렇다면 (홍콩/필리핀 합작으로 표기되어 있는) 이 영화에 남기남은 왜 올라간건가…. KMDB에 <사형삼걸> 페이지를 보면 1981년작(영문DB들에는 1980년작)으로 되어 있고, 다른 짝퉁 이소룡보다 거룡의 단독주연작처럼 크레딧이 표기되어 있다. 물론 포스터는 원본의 그림을 가져오고 다른 짝퉁 이소룡 배우들 이름도 써있지만…. 세버린 필름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이소룡-들> 속 거룡의 인터뷰를 보면 세 명의 짝퉁 이소룡 촬영 분량이 각 1/3이었고, 자신은 한국에 필름을 들여와 더 완성도 있는 버전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게 남기남이 참여한 <사형삼걸>이라 생각하면 말이 맞아들어 간다. 실제로 두 판본의 러닝타임이 10분 정도 차이나기도 한다. 다만 <사형삼걸>은 필름으로만 보관되어 있어 당장 확인할 수는 없고, 이와 관련한 남기남의 인터뷰나 당시의 잡지기사도 찾지 못했다. 하여간 그렇다고 치고, 남은 의문은 몇몇 아티클이나 블로그에 <브루스 리의 클론들>이 1977년작으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인데…. 온라인상에서는 이거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가 없다. 일단 거룡이 짝퉁 이소룡으로 등장한 첫 영화가 1977년작 <최후의 정무문>이라 <브루스 리의 클론들>에 함께 출연한 장일도(Bruce Lai), 여소룡(Bruce Le), 장정의(Bruce Thai) 등의 활동과 꼭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닌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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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린 램지의 신작 <다이 마이 러브>는 데이빗 O. 러셀의 영화들 이후 오랜만에 미쳐 날뛰는 제니퍼 로렌스를 마주할 수 있는 영화다. 최근에 션 베이커가 1970년대 이탈리아 섹스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를 차기작에 담고 있다고 인터뷰한 것을 봤는데, <다이 마이 러브> 속 제니퍼 로렌스와 린 램지에게 선수를 빼았겼다. 이탈리아 섹스 영화 거장 틴토 브라스의 <모넬라>의 한 장면을 그대로 빼다박은 한 장면을 떠올려보자. 출산 이후의 산후우울증과 섹스리스 부부의 이야기인 <다이 마이 러브>는 린 렘지가 매번 그러한 것처럼 출산과 육아의 (혐오에 가깝게 느꺄지는) 고통을 절절하게 담아내고, 때문에 로렌스의 캐릭터 그레이스는 본능과 욕망에 충실한 방식으로 미쳐 작은 시골 마을 곳곳을 누빈다. 사실 반복되는 듯한 유사한 림 렌지 영화의 주제에 대한 피로감이 두드러진 영화이지만, 동시에 오랜만에 마주하는 제니퍼 로렌스의 모습과 안정적인 서포터로 활약하는 로버트 패틴슨을 보는 즐거움만으로 충분하다.


4. 뉴스레터 형식으로 개편된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142호에 원고를 하나 썼다.

https://maily.so/actmediact/posts/8mo54dp1z9p

최근 2~3년 동안 국내 방송부터 영화제까지 여러 장소에서 볼 수 있었던, 생성형 AI를 활용한 다큐멘터리 작업의 사례와 쟁점을 간단히 훑어보는 글이다. 생성형 AI 이후 다큐멘터리의 존재론을 이야기할 것처럼 거창하게 시작하는 글이지만, 관련한 내용은 원고 발행을 기다리던 중 공개된 김지훈 교수님의 DOCKING 기고글을 읽어주시면… 새로 개편된 ACT!는 독립미디어와 관련된 여러 주제들을 다루는 세미나를 진행한 후 그 결과물로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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