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대충 지난 3주 동안 했던 것들
1. 뒤늦은(?) 부산독립영화제 심사 후기. 올해는 어쩌다보니 이런저런 심사를 경험했는데, 부독제에서의 심사는 여러모로 흥미로웠다. 심사로 참여한 영화제들의 각각의 특색이 있지만, 부독제는 여타 지역 독립영화제와 달리 영화제의 메인인 경쟁부문(메이드 인 부산)의 출품기준이 ”1년 이상 부산에 거주주 중인 창작자“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1년‘이라는 기준은 부산에 내려온 창작자의 ’서울영화‘가 ’부산영화‘로 둔갑하게 되는 경우들을 발생시키지만, 대부분이 지역영화 공모를 별도로 진행하고 경쟁부문은 전국단위 공모를 받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역‘독립영화제임에도 프로그램의 가장 큰 부분인 경쟁부문이 비슷비슷한 영화와 비슷비슷한 수상결과로 이어진달까. 부독제는 일종의 정면돌파를 택한 셈이다.
물론 여기에는 부산지역의 특성이 기능하는 면도 크다. 수도권을 제외하면 영화/영상 학부가 가장 많이 개설되어 있는 지역(부산대, 경성대, 동의대, 동서대)이기에, 학교에서 제작되는 워크숍 영화, 졸업영화만으로도 영화제를 꾸리는 데 필요한 작품 수를 일정 부분 충당할 수 있다. 실제로 이번 영화제 경쟁부문의 절반 가까이가 대학을 통해 생산된 영화였다. 지난 달 읽은 김상목 프로그래머의 책 <경계의 영화: 대구영화라는 낯선 풍경>에서 ’대구영화학교‘와 그것을 가능케 하는 미디어센터, 극장, 협회 등의 조건이 영화 생산의 주요한 조건이었음이 배후의 맥락으로 숨겨져 있었다면, 이번 부독제를 통해서는 부산지역에서의 맥락을 알게 되었달까. 물론 여기에는 영화의 전당을 통해 진행되는 워크숍이라던가 오지필름, 탁주조합 등 다큐멘터리스트들의 그룹, 다양한 커뮤니티시네마의 존재(작은영화영화제와 공간나,라를 운영하셨던 김미라 선생 추모전이 진행되기도 했다)를 함께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5일 간의 영화제 일정을 통해 멀리서 어렴풋이 짐작하던 내용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나와 안건형, 오정석 감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선정한 수상작 세 편이 모두 완성도 있는 작품이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가는 것은 임지훈 감독의 <유령>이다(다른 두 편은 <물질형태>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영화의 전당에서 진행된 김정근 감독의 다큐멘터리 워크숍을 통해 제작된 작품으로, 임지훈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사실 이 영화의 기술적 완성도는 형편없다. 동네 주민을 인터뷰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어정쩍하게 상대방의 배를 찍고 있기도 하고, 색보정이나 음향 믹싱과 같은 후반작업은 전혀 거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심사회의 때 심사위원 세 명이 가장 먼저 합의한 수상작이었다. <유령>은 부산 곳곳의 재개발 구역, 버려진 집과 모텔, 도시빈민들이 거주하던(혹은 거주하는) 공간들을 담아낸다. 카메라는 이곳들의 풍경을 담아낸다. 녹슨 철문, 버려진 쓰레기, 페인트칠이 벗겨진 건물, 널부러진 자전거... 임지훈의 카메라는 한 거주불명자가 살았던 주소지와 거주년도를 담은 자막과 함께 그 동네를 담아낸다. 그럼으로써 이 영화는 탐정극이자 반(反)-도시교향곡이 된다. 그리고 영화는 감독-탐정이 마침내 찾고자 했던 것을 마주했을 때의 환희를 소거한다. 그저 덤덤하게, 감독은 자신이 찾고자 했던 대상 옆에 앉아 평범한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관객은 이 탐정극의 자세한 내막에 대한 설명을 듣진 못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쉬이 마주할 수 없는 부산의 모습들을, 탐정의 태도로 도시를 바라볼 때에야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이미지들을 우리에게 남긴다. 어디선가 다시 상영된다면 <유령>을 꼭 챙겨보시길.
2. 10월 말에 갑자기 교수님께 전화가 와서 얼떨결에 학회 발제를 하게 되었다. 한국언론정보학회 가을 학회 중 "게임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을 주제로 한 넷마블 후원 세션에서 "게임-영화에서의 스토리텔링 변화: 미디어환경 변화 속에서의 게임 원작 영화 내러티브에 대한 가설"이라는 제목의 발제를 진행했다. 올해 초 소리그림에서 진행한 세미나부터 게임제너레이션이나 씨네21 원고까지 게임과 결부된 영화들에 관해 여러 차례 말과 글을 나눌 자리가 있었는데, 그것을 한 차례 마무리 짓는 느낌이었달까. 발제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어느덧 30년이 누적된 게임 원작 영화의 스토리텔링이 단순히 게임의 외피를 (액션, 호러, 미스테리, 크리처, 좀비 등) 이미 성공한 영화 장르에 덧씌우는 기존의 OSMU 방식에서, 헨리 젠킨스가 주창한대로 향유자 경험이 중심이 되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으로 이행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모탈 컴뱃>이나 <스트리트 파이터>, <툼 레이더> 등 초창기 게임 원작 영화에서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이나 <어쌔신 크리드>, <위쳐> 같은 비교적 근작들까지가 전자의 모델을 따른다면, 다시금 게임 원작 영화의 붐을 일으킨 <슈퍼 소닉>,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마인크래프트 무비> 등 내러티브의 비중이 낮거나 부재하는 게임 원작의 영화들이 향유자 경험을 영화화에 결부시키며 그것을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모델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요지다. 과거의 게임 연구에서 '매직 서클'이 게임-하기를 통해서만 구성되는 것이었다면 그것은 e-스포츠와 스트리밍을 거치며 게임-보기로 확장되었고, 지금의 게임 원작 영화(발제에 넣진 않았지만 게임 소재의 영화들 또한)는 확장된 매직 서클의 영화화를 꾀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개념이 (젠킨스가 제시했던 향유자 경험과 팬덤 실천에 대한 주목이 아니라) 영화/TV/게임/플랫폼 등 미디어 기업의 전략으로 중심이 옮겨간 이래로 제대로 포착하는 데 실패했던 지점들이랄까. 넷마블 후원세션이라고는 하지만 기업의 콘텐츠 개발 전략 지침 같은 느낌이 아니기를 바랬다. "게임 원작 영화, 게임-영화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 단지 세계관의 확장일뿐 아니라 스트리머와 수용자의 액션-리액션으로 구성되는 매직 서클의 확장"이라는 결론도 이런 맥락에서 출발했다. 사실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은 상태로 들어가 급하게 발표를 마무리 지었는데, 토론자로 오신 이상규, 이수엽 선생님과 사회를 맡은 박근서 선생님이 모자란 발표에서 주목하고 덧붙여 주신 지점들이 있어 나름 잘 마무리되지 않았나 싶다. 특히 박근서 선생님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라는 용어가 제시하는 선입견에서 벗어나는 다른 방식의 이론화(월드-빌딩이나 게이미피케이션 등 기존 이론을 활용하건 새로 제시하건)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주셨는데, 크게 동의하는 지점이었다. 게임 원작 영화가 제작되고 수용 및 향유되는 지점을 명확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원작'인 게임의 성격부터 그것이 향유되는 미디어 환경, 나아가 그것이 영화의 제작과 수용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여기서 '스토리텔링'은 극히 적은 지점만을 다룰 수 있을 뿐임을 확인하는 시간과도 같았다.
3. <주토피아 2>가 다루는 주제는 전편보다 만족스러웠다. 전편은 초식동물과 육식동물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전제함으로써 일종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끌어오고, 그것을 통해 차별과 역차별을 이야기하려 했기에 강력한 오독의 여지를 남겼다. 여기서 몸집이 큰 초식동물들이 경찰로 활동하고 있다던가 하는 지점은 이렇다 할 정당화의 지점이 되지 못한다. 그 때문인지 이번 영화는 그러한 이분법적 구도를 다소 뒤로 밀어 둔다. 물론 파충류/양서류와 포유류 사이의 대립을 소재삼지만, 그것은 보다 오독의 여지가 좁달까. 무엇보다 특정 지역에서 살아가는 지역민을 몰아내고 자본가 그룹이 그것을 차지한다는 맥락에서 우리는 재개발이나 댐/송전탑/발전소 건설로 인한 이주부터 나크바와 같은 제국주의적 식민지 사업까지를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는 <주토피아>가 (지극히 성인 '퍼리' 취향을 강하게 건드리는 애니메이션임에도) 어쨌거나 아동용 애니메이션을 표방하고 있으며 주제의식을 추상화 및 단순화해야 하기 때문에 전편보다 상대적으로 다루기 쉬우며 선악의 구도가 명확해보이는 대상을 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최근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 트럼프 시대에 적극 반대하는 것으로 맥락화되는 <씨너스>, <시빌 워>,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썬더볼츠*>, <위키드> 등과 함께, 또는 보다 적극적으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침략(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을 연상케하는 <슈퍼맨>과 함께 바라본다면, 할리우드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위기감의 존재를 떠올려 볼 수는 있겠다. <부고니아> 같은 반동적인 영화보다는 이런 대규모 영화의 위선에 차라리 관심이 가는 시기랄가.
4. <콘크리트 마켓>을 보고서는 짜증이 솟구쳤다. 씨네21에 올라온 인터뷰나 리뷰에도 이 영화가 7부작 드라마로 곧장 공개될 예정임을 알려주는 문장은 없었다. 나는 상영관에 들어가기 10분 전에야 드라마로 공개 예정이라는 기사를 접했다. 이게 무슨 짓인가? 최초의 <콘크리트 마켓>은 롯데시네마 단독개봉인 것으로 보도가 되었다가, 이내 와이드릴리즈로 정정되었다. 다만 팬데믹 시기임에도 흥행에 성공했던 전작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달리 아주 적은 상영관을 배정받았지만. 여기까지는 본래 드라마로 제작하려다 이런저런 여건의 문제로 축소된 버전의 영화겠구나 생각했다. 실제로 영화 <콘크리트 마켓>은 이곳저곳 잘려나간 장면들이 눈에 띤다. 광과민성 발작을 유발할 것만 같은 자막들은 아마 드라마 에피소드 사이의 분절점을 채우는 것일테다.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큰 맥락의 플롯은 영화를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지만, 무수한 디테일이 잘려 나갔음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를테면 <콘크리트 마켓>을 보는 것은 OTT 오리지널 드라마의 유튜브 요약본을 극장에서 보는 것만 같았달까. 만약 이것이 이미 방영된 드라마의 '총집편'이나 일부 장면을 추가한 '극장판' 같은 형태였다면 별 다른 거부감이 없었거나, 아예 보지 않았을 것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정말로 이상한 선택을 했다. 이는 OTT는 물론 기존의 TV 시리즈와 극장판 사이의 관계를 거꾸로 뒤집은 기묘한 전략이다. 전략이라기에도 뭣한, OTT고 극장영화고 유튜브고 전혀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는 머저리여야 할 수 있는 헛짓거리랄까. 한국 상업영화의 질적 하락을 매년 느끼고 있지만, 이건 또 다른 바닥을 보여주는 행태다.
5. 에드가 라이트의 <더 러닝 맨>은 쫄보영화다. 뚝심도 야심도 만듦새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