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앤디 위어의 원작을 읽으며 떠올렸던 이미지들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겨냈고, (<마션>의 각색에도 참여한) 드류 고다드의 각색은 하드SF적인 톤은 다소 쳐냈지만 156분 분량의 영화에 원작의 핵심을 적절히 압축했다. 필 로드와 크리스토퍼 밀러 콤비는 오랜만에 연출에 복귀했음에도 자신들이 여전히 재능있는 연출가임을 증명했다. <레고 무비> 이후 12년 만의 연출 복귀작이지만, 그 사이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이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등을 제작하며 쌓인 노하우가 이번 영화에도 녹아있달까. 특히 지구에서의 기억을 잃은 채 타우세티 항성계에 도착한 그레이스가 지구의 기억을 떠올리는 플래시백들을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에서 멀티버스를 넘나들던 순간들처럼 프레임 브레이크 효과를 적절히 활용하는 방식은 일반관 관람에서도 IMAX 관람과 유사한 경험을 제공한달까. 그런 지점에서 쓸데없이 화면비를 오가는 여러 IMAX 영화들보다 성의 있달까. <인터스텔리>나 <퍼스트맨>의 느끼한 부성애나 <애드 아스트라>의 울적함보단 이 영화의 낙천성이 조금 더 즐겁게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우울하고 폭력적인 영화 속 라이언 고스링보다 이런 느낌의 영화에서의 (특히 <나이스 가이즈>에서의) 라이언 고슬링을 조금 더 좋아하기도 하고. 특히나 이번 영화의 주인공은 무성애자라고 봐도 무방할 인물인데, 고슬링의 유성애 영화들(<노트북>, <블루 발렌타인>, <라라랜드> 등등...)에서 드러나는 느끼한 표정을 이번 영화에선 보여줄 필요가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이번 영화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이종 간의 우정이고, 고슬링은 그것을 표현하는 데 꽤나 알맞은 인물이다. 원작이 출간되자마자 직접 판권을 구매했던 만큼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라이언 고슬링의 영화라 봐도 무방할 텐데, 출간에서 개봉에 이르는 5년 사이 그의 필모그래피가 조금씩 이쪽으로 옮겨오고 있었다는 인상도 준다. 누군가는 이 영화의 낙천성을 과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다만 잔드라 휠러가 연기한 스트라트는 그 낙천성을 재빠르게 다시금 현실의 지구로 끌어내리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낸다. 지구 공통의 위기를 모든 지구인이 함께 해결하려 한다는 낙관적인 발상이 순간에 그칠 뿐이라는 관찰이 영화 전체에 깔려 있고, 스트라트는 그것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여담이지만, 그가 팝송을 부르는 장면이 포함된 영화는 언제나 성공적이다.
2. <마티 슈프림>은 <언컷 잼스>와 <굿 타임>의 장단점을 강화한 느낌이다. 괜찮은 영화지만 형제가 함께할 때보단 아쉽달까. 어딘가 소재만 바뀐 반복처럼 느껴진다. 어떤 면에서는 <헤븐 노우즈 왓>보다 아쉬우니까. <스매싱 머신>도 조만간 볼 수 있기를...
3. <두 검사>는 여러모로 아쉬웠던 <젠틀 몬스터>보단 흥미진진한 영화였다. 로즈니차는 자신이 최근 만들어 온 아카이브 다큐멘터리에서 봐온 이미지를 극화하는 데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영화 초반부, 학대 속에서 뼈 밖에 안 남았다고 할 수 있을 수감자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부분을 떠올려 보자. 이들은 어딘가에 앉았다 일어날 때 바지춤을 정리한다. 제대로 먹지 못해서, 가혹한 강제노동과 폭행에 시달리며 가냘파진 몸에 맞춰 바지춤을 조정하던 순간들. 물론 그러한 이미지가 로즈니차의 근작들, <키이우 재판>, <파괴의 자연사>, <바비 야르 협곡> 등에 담겨 있진 않다. 다만 적어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그가 만들어온 영화에서 봐왔던 인민들의 제스처가 <두 검사>에도 담겨 있다고 해도 무방할 테다. <두 검사>는 그것만으로도 픽션으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스탈린의 대숙청 시기를 배경 삼는 이 영화에서, 인민들의 사소한 제스처 하나하나가 대숙청의 결과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코르네프 검사가 전면에 나온 이후의 영화는 카프카적 관료제의 세계로 빠져든다. 모스크바의 대검찰청에서 넋이 나가고 길을 잃은 사람들,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를 표정과 제스처로 드러내는 인물들, 로즈니차는 그 순간을 제대로 묘사한다. 래퍼나 락커가 곡의 절정에서 삽입하는 묵음과도 같달까. 그 다음 순간은 붕괴의 순간, 그러니까 붕괴하는 것이 내는 굉음의 순간이다. <두 검사>는 그것을 과감히 묘사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영화는 1937년을 배경삼지만, 영화가 겨냥하는 것은 관료제가 독재에 부역하는 2020년대의 러시아이며, 우리는 그것을 영화를 보는 내내 감각할 수 있다. 그의 근작들과 완전히 다른 형식을 지녔음에도, <두 검사>는 그것들과 공명한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는 충분한 이미지 아카이브가 존재하지 못해 불가피하게 극으로 만들어낸 영화일지도 모른다. 1.37:1 화면비는 그것의 증거이고.
4. 마츠모토 세이초의 소설을 원작 삼은 노무라 요시타로의 <모래그릇>은 재밌다. 143분의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알차게 이끌어간다. 수사 과정을 담은 전반부는 얼핏 도호쿠 지방 곳곳을 돌아다니는 관광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단순한 관광이라기엔 어긋나는 지점들을 곳곳에 숨겨둔다. 이런저런 정보들이 모여 경찰들의 프레젠테이션과 거대한 플래시백이 함께 이어지는 후반 40분가량은 그것이 단순한 여정이 아니었음을 드러낸다. 어떤 면에서 얼마 전 영상자료원을 통해 본 구로사와 아키라의 <천국과 지옥>의 구성과 비슷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지역 곳곳을 훑으며 범죄 사건을 수사한다는 지점에서도 더욱. 다른 점이라면, <모래그릇>의 중심이 되는 것은 풍경이라는 점이랄까. 그 풍경을, 영화의 마지막은 앞의 100분과 다른 방식으로 채워낸다. 그러니까 스즈키 세이준이 저승이라는 개념을 빌려와서 했던 것을 '과거'라는 키워드만으로 해난달까. <모래그릇>이 <유메지>나 <찌고이네르바이젠> 만큼의 걸작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기대보다 퍽 훌륭한 영화이며, 1970년대 일본을 담아내는 것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5. 그밖에 본 영화들은 있는데 할 이야기는 별로 없다. <미스터 김, 영화관에 가다>는 김동호 전 위원장이 캠코더 사용법을 배우는 초반 10분 정도만 흥미로웠고, 아시아 각국의 대표적 감독들이 영화(관)의 위기에 관해 말하는 순간들은 지루하고 뻔했다. <연지구>는 장국영과 매염방이라는 압도적인 배우들의 힘이 강력했다. <아르코>는 <천공의 성 라퓨타>를 뒤집은 기묘한 시도이지만 아직 완성된 연출자라는 인상을 받진 못했다. <사랑, 우유, 그리고 치즈>는 너무 심심했다. <호퍼스>는 과거 픽사가 보여준 요상한 광기를 슬쩍 드러내서 즐거웠지만 (샤크네이도 패러디는 덤) 아직 '픽사'로 되돌아오진 못한 영화였다. 링클레이터의 <블루 문>은 정말 끝내주는 영화였다. 대체 왜 국내에선 이 영화를 VOD로 출시하고 <누벨바그>는 개봉시킨걸까? <누벨바그>는 링클레이터가 2020년대 들어 내놓은 최악의 영화다. 반면 <블루 문>은 '비포 시리즈' 이후 링클레이터가 써내려간 최고의 대사들로 빼곡하다. <보이후드>가 담아낸 12년의 시간성이 <블루 문> 속 로렌츠 하트의 발화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6. 넷플릭스 <원피스> 시즌2는 기대 이상으로 즐거웠다. 첫 시즌이 어정쩡한 출발점이었다면, 시즌2는 스스로의 만화적인 측면을 되려 (대자본에 힘입어) 부각시키며 자신의 스타일로 밀고 나간다. 제작사인 투모로우 스튜디오는 전작 <카우보이 비밥>의 실패에서 크나큰 교훈을 얻은 것 같다. 만화든 애니메이션이든 원작의 스타일을 곧장 이어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그것을 '실사 영상'에 알맞은 형태로 변형시켜야 한다. 그것이 다소 촌스러워 보이거나 '쿠소'해보일지라도 말이다. <원피스> 시즌2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자신의 빈약함이나 다소 기괴해보일 수 있는 지점을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루피의 고무고무~ 기술들이 어색하게 다가올지라도, 다른 폼의 쵸파가 너무 CGI 같아 보일지라도, 그것을 보여주는 데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원피스>는 첫 시즌에서 실패했던 지점을 극복해낸다. <캐리비안의 해적>이 성공한 데에는 다분히 만화적이며 과장된 캐릭터인 데비 존스의 힘이 크지 않았나? <원피스>은 얼핏 그 기억을 끌어오며, <원피스> 애니메이션을 투니버스에서 봐왔을 이들의 기억을 이끌어낸다. 실사판 <원피스>의 다음 시즌을 기다린다는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