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배우의 하루

<그녀가 돌아온 날> 홍상수 2026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한 배우(송선미)가 12년만에 컴백했다. 결혼, 임신과 출산, 육아, 이혼을 겪고 돌아온 그는 독립영화를 찍었다. 세 명의 기자가 그를 인터뷰하러 온다. 이들은 (영화보단 삶에 대한) 엇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배우는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하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라는 질문엔 "자기 자신을 좀 더 사랑해줬으면 좋겠어요"라며 일관된 답을 내놓는다. 복귀를 위해 다니게 된 연기수업의 선생(조윤희)는 그날 있었던 일을 기반으로 쪽대본을 써볼 것을 요청하고, 배우는 다른 수강생(박미소)과 함께 연기 연습을 진행한다. <그녀가 돌아온 날>의 이야기는 이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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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간 홍상수 영화의 규모는 극단적으로 작아졌다. 제작진의 수가 극단적으로 줄어들어 홍상수는 연출, 각본, 편집, 촬영, 음악 등에 홀로 크레딧을 올린다. 다른 스태프는 제작실장 김민희와 동시녹음기사 정도뿐이다. 촬영에 쓰이는 카메라도 홍상수 자신이 보유한 카메라이며, <인트로덕션>부터 드러난 저화질은 10편의 영화를 거치며 하나의 스타일이 된 듯하다. 이번 영화의 저화질은 송선미의 얼굴 윤곽선이 흐릿하게 느껴질 정도니까. 여러 집과 카페, 식당, 길거리, 해변 등을 담아내던 영화의 장소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독일식 레스토링과 연기 수업 공간(그리고 해당 공간들 앞의 길거리)로 줄어들었다. 줄어든 장소와 보다 간결해진 이야기 속에서 영화의 구성도 꽤나 간결해졌다. 1부터 5까지 숫자가 붙은, 5부 구성이라기보단 5개의 시퀀스라 말하는 게 적절한 영화의 구성은 이렇다. 기자와 배우 사이의 인터뷰가 진행된다. 외화면에서 들려오는 감독(하성국)의 목소리는 인터뷰 시간 종료를 알린다. 배우는 레스토랑 앞에서 담배를 태운다. 5개 이하의 쇼트로 20분이 채 되지 않은 러닝타임의 세 인터뷰가 지나간다. 네 번째 시퀀스에서 연기 선생과 마주앉은 배우는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한 각본을 썼고, 선생은 그것이 연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한다. 다섯 번째 시퀀스, 배우는 다른 수강생과 자신이 쓴 각본으로 연기하고, 배우는 딸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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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돌아온 날>의 단순한 구조 속에서, 배우가 진행한 세 번의 인터뷰의 반복과 구별은 다섯 번째 시퀀스의 연기에서 응축된다. 인터뷰라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정보값는 없던 대화의 내용들은 배우의 기억을 거쳐 정리되고, 짧은 시간 안에 외워야 했던 쪽대본이기에 연기 중간중간 발생하는 침묵은 질문과 답변을 고르는 생각의 시간처럼 다가온다. 그녀가 돌아온 하루의 시간이 압축되어 제시되는 연기 시퀀스의 밀도는 대단한 압력을 뿜어낸다. 저화질 이미지에 담긴 송선미의 얼굴은 얼핏 시간과 시대를 응축하던 하라 세츠코나 다카미네 히데코의 이미지를 떠올리게끔 한다. 동선이나 궤적이 아니라 반복되는 시간을 담아내는 얼굴. 기자의 옆얼굴이 살짝 걸치고 배우의 얼굴은 확실히 드러나는 인터뷰 장면에서의 카메라는 연기 수업에서 조금 더 중앙에 가까워졌지만, 연기 상대의 얼굴은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배우의 형상은 언제나 핵심이었지만, 이번 영화에서의 송선미는 보다 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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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영화제를 앞두고 공개된 예고편은 세 개의 인터뷰를 한 프레임에 겹쳐 놓는다. 세 명의 기자를 상대하는 송선미의 얼굴, 겹쳐진 그의 얼굴 이미지는 연기 수업 장면에서 하나의 얼굴 위에서 펼쳐진다. 영화 속 누군가는 그 얼굴에 대해 투명하다고 말한다. 너무나도 단출한 영화의 형식적 구성을 우리는 투명하게 관찰할 수 있다. 다만 '돌아온 그녀', '컴백한 배우'를 연기하는 송선미의 얼굴은 투명하다기엔 단단히 압축되어 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그저 배우/송선미의 얼굴뿐이지만, 동시에 그 얼굴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연기, 삶, 영화, 사랑 등등)은 발화와 침묵 사이에서 결착되어 투명하게 읽어낼 순 없는 무언가로 다가온다. 반복되는, 혹은 복제되는 인터뷰들 사이에서 배우의 대답은 조금씩 달라진다. 관객은 배우가 말하는 것의 진심을 곧장 파악할 순 없다. 단지 그가 반복하는 대답 속에서 겹쳐지는 것만이 진심으로 다가올 따름이다. 혹은 진심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어떤 순간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하루를 연기하는 배우도 실은 그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