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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l 24. 2017

2017년 가장 활력 넘치는 영화

우간다 와카리우드에서 날아온 영화 <배드 블랙>

 “2015년 <누가 캡틴 알렉스를 죽였나>가 전 세계에 배급되면서 화려하게 이름을 알린 나브와나 I.G.G. 감독이 <배드 블랙>으로 돌아왔다! 카체이싱, 무협, 액션과 CG 장면까지 써가며 각종 장르를 맥락 없이 넘나 든다. 묘한 쾌감과 웃음을 선사하는 근본을 찾기 힘든 코믹 잡종 액션 영화.”  이번 부천국체판타스틱영화제는 우간다에서 날아온 영화 <배드 블랙>을 이렇게 설명한다. 영화제가 아닌 <배드 블랙>의 제작자 겸 배우 알란 호프마니스가 주최한 게릴라 상영회를 통해 <배드 블랙>을 비롯한 우간다 와카리우드의 영화를 관람하고 영화에 엮인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간다에는 내전이 끝난 80년대가 돼서야 음악과 영화 등의 대중문화가 유입되기 시작했지만, 여러 부족이 있기에 50여 개에 달하는 언어와 부족한 영사기술 때문에 <람보>, <코만도>, <터미네이터> 등의 영화에 자막을 입히지 못한 채로 상태로 상영하게 되었다. 당시 상영된 영화는 아놀드 슈워제네거, 장 클로드 반담, 척 노리스 등이 출연한 하드보디 액션 영화와 B급 슬레셔 호러 영화 등이었다. 자막을 영사할 수 없었기 때문에 VJ(VideoJoker)라는 영화 해설사가 영화를 상영하면서 해설해주었다. 그 역시 영어를 잘 못했기 때문에 설명은 언제나 이상해졌고 코미디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VJ는 한국의 변사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변사는 각본을 다시 연기하면서 영화를 설명해주는 역할이었다면, VJ는 영화에 추임새를 넣기도 하고 대사와는 전혀 별개인 이야기를 추가하기도 한다. 그렇게 각 지역만의 상영이 이어지다 몇몇 마을에서 자신들의 언어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고, 우간다에서 인기 있었던 액션과 호러 장르의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VJ의 영향으로 코미디가 뒤섞이게 되었다. <배드 블랙>을 보면 영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내레이션이 나와 "슈퍼 드라이브!", "우간다 슈워제네거!" 등의 추임새를 넣어주는데 VJ가 영화를 해설하던 형식이 고스란히 영화의 형식으로 굳어진 것이다. 

 <배드 블랙>을 만들어낸 와카리우드는 우간다의 와칼리가라는 마을 이름과 할리우드의 이름을 합성한 말이다. 그들은 할리우드, 발리우드는 한 국가의 영화산업이지만 와카리우드는 자기 마을의 영화임을 강조한다. 실제로 와카리우드의 영화들은 작은 와칼리가의 마을에서 모두 촬영된다. 카체이싱은 몇 미터 되지 않는 작은 도로에서 카메라 트릭을 이용해 완성했고, 영화의 등장하는 모든 배우들은 와칼리가의 주민들이다. 130명 남짓한 마을의 주민들이 연출, 연기, 각본, 촬영, 소품, 편집, 특수효과, 스턴트 등을 모두 담당하는 셈이다. 자동차 부품이나 파이프 등을 이용해 총을 비롯한 각종 소품을 만들고, 나무를 깎아 색칠해 탄피처럼 꾸미는 것을 보면, 그리고 그것이 실제 영화에서 꽤 그럴싸하게 보이는 것을 보면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심지어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도 제한되어 있고, 인터넷조차 온전하지 못한 곳이다. 그들은 영화를 편집하고 VFX를 넣기 위해 부품을 모아 컴퓨터를 직접 제작하고, 편집과 VFX 프로그램을 구해와 (인터넷이 없으니 유투브 등에서 프로그램을 학습할 수가 없다) 프로그램 툴을 하나하나 조작해보며 익힌 실력으로 영화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와카리우드 영화는는마을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마을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마을 사람들의 영화가 된다. 그들이 좋아하는 액션 영화, 호러영화를 뒤섞어 또 다른 창작물을 내놓는 열정과 즐거움은 스크린을 넘어 관객에게도 전달된다. 마치 마을 전체가 미셸 공드리의 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VJ라는 형식이 영화 속에 녹아있는 것은 <배드 블랙>을비롯한 와카리우드 영화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한국의 변사는 영화를 관람하는 형식이지 영화의 형식으로 녹아들지 않았다. 그러나 VJ는 영화의 형식으로써 영화 속에 포함되어 있고, 영화의 활력과 재미를 담당한다. 앞서 설명한 우간다의 영화 상영 역사를 영화 형식으로 녹여낸 것이기도 해, 우간다의 영화사를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생각보다 깔끔한 촬영과 좋은 합을 선보이는 액션, 당장 세계 장르영화에 투입시켜도 어색하지 않은 몇몇 고어 장면의 특수효과 역시 와카리우드 영화의 큰 재미이지만, VJ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영화의 형식은 영화의 가치를 수직상승시킨다. 한 마을의, 한 나라의 영화 상영 역사가 고스란히 영화의 형식이 되어버린 것을 알면 <배드 블랙>이라는 영화가 가진 가치의 겹이 늘어난다. 때문에 <배드 블랙>과 와카리우드의 영화를 알게 된 것은 올해의 발견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영화제에 초청된 와카리우드 사람들의 인사 영상을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AthYlugx6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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