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Oct 11. 2017

양가적인 오즈의 카메라

오즈 야스지로의 <만춘>

 전후에 제작된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속 가족들은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정상가족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 <동경 이야기>의 가족은 오랜 기간 떨어져 지내던 서먹한 관계이며 주인공은 남편을 잃은 며느리 노리코이다. <초여름>의 주인공 노리코는 가족이 맺어준 혼사를 거부하고 오빠의 친구이자 홀아비인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하며 전통적인 대가족의 해체를 그려낸다. 그가 전쟁 이후 만들어낸 세 번째 작품인 <만춘>은 이러한 오즈 영화 속 가족의 모습의 틀을 잡아준 첫 작품이다. <만춘>의 노리코(하라 세츠코, 앞서 언급한 두 노리코와 같은 배우)는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 소미야(류치슈)와 함께 살고 있다. 소미야는 자신이 더 나이 들기 전에 노리코를 혼인보내려 한다. 하지만 노리코는 나이 든 아버지를 홀로 두고 결혼하기를 거부한다. 소미야는 노리코의 고모와 함께 선을 주선하기도 하고, 자신이 재혼하는 것처럼 꾸며 노리코를 안심시키려 하기도 한다. 노리코는 결국 결혼을 결심하고, 노리코와 소미야는 결혼 전 마지막으로 함께 여행을 떠난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언뜻 보기에 전쟁과 서구화 등을 거치며 파편화된 정상가족이 서로 간의 신의와 우애를 다지는 결말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영화는 이러한 징후들을 자연스러우면서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가령 노리코가 자전거를 타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코카콜라 광고판이나 영문으로 적힌 카페의 간판 등은 전후 일본에 미군이 상주하면서 급격하게 진행되는 서구화의 단면이다. 영화는 또한 전쟁의 관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면서 (<동경 이야기>의 경우 이를 언급하는 언행을 꺼려하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전쟁 이후 재건된 일본을 담아낸다. 전쟁의 여파는 주로 부재하는 가족을 통해 드러난다. 결국 오즈 영화의 가족은 서구화(핵가족화)되고, 전쟁으로 인해 구성원이 부재하게 되면서 파편화된다. 이러한 가족들은 영화 내내 이해를 통한 봉합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령 <동경 이야기>의 주인공 부부는 동경으로 올라온 부모님을 귀찮아하지만, 며느리인 노리코만이 그들을 챙기며 시부모-며느리라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으로 자리 잡으려 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초여름> 역시 전통적인 대가족의 결혼 서사를 거부하던 노리코가 가족과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만춘>은 노리코를 떠나보내려는 소미야와 소미야를 떠나지 않으려는 노리코가 끝내 각자의 감정을 털어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러한 이해의 결과물은 결국 해어짐으로 마무리된다. <동경 이야기>의 노리코는 결국 새 출발을 독려받으며 시부모를 떠나고, <만춘>의 노리코는 소미야를 떠나 결혼하게 된다. 영화의 끝에 홀로 남는 것은 결국 아버지(심지어 세 영화 모두 같은 배우인 류 치슈이다)이다. 때문에 오즈의 영화는 언뜻 보기엔 따뜻한 가족 드라마로 느껴지지만, 영화의 말미에 남는 감정은 차가운 고독함이다.

 카메라를 다다미 위에 무릎 꿇고 앉은 인물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다다미 쇼트와, 인물의 얼굴 정면을 바라보는 대화 장면의 쇼트-리버스 쇼트는 따뜻한 가족 드라마와 차가운 고독함 사이에 존재하는 오즈 영화의 양가적인 측면을 대표하는 그의 영화 양식이다. 다다미 쇼트에서 인물들의 눈높이는 스크린을 가로로 3등분 했을 때의 3분의 2 지점 즈음에 위치한다. 풀숏과 바스트 숏 모두에서 같은 눈높이를 유지하는 촬영은 관객이 인물들과 같은 공간에 앉아 장면을 보고 듣는 것처럼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다다미 쇼트는 주로 노리코와 소미야, 소미야와 고모, 고모와 노리코 등 가족관계가 명확한 인물들의 대화에서 드러난다. 그들은 정면(물론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지는 않지만 정면에 가까운 시선을 담아낸다)을 바라보며 대화를 한다. 이러한 일상 대화 속에서 노리코는 떠나길 거부하고 소미야는 함께 남기를 거부한다. 노리코가 결혼을 결심한 뒤떠난 여행에서 그는 소미야에게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소미야의 곁에 남고 싶다고 고백한다. 영화 내내 정면에 가까운 대화 속 시선을 담아내던 카메라는 바닥을 향해 고개 숙여 기존 눈높이의 위치(스크린의 3분의 2 지점 즈음)에 얼굴을 파묻는 모습을 포착한다. 노리코는 소미야의 설득에 다시 고개를 들과 활짝 웃으며 “행복하게 살 거예요”라고 말한다. 노리코가 결혼해 떠나고, 홀로 집에 돌아온 소미야는 사과를 깎는다. 사과껍질이 바닥에 툭 떨어지자 소미야의 고개 역시 노리코의 고개가 파묻힌 지점으로 떨어진다. 카메라는 눈물이나 대사 등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묘사를 거부한 채 바로 쓸쓸하게 파도치는 바다로 넘어간다. 소미야의 고개는 노리코의 고개처럼 다시 올라가지 않는다. 오즈의 비정한 카메라는 늙은이가 고개를 떨군 채 홀로 늙어가도록 방치한다. 전쟁으로, 서구화로 파편화된 일본의 가족들은 다시 봉합되지 못한다. 오즈의 양가적인 카메라는 결국 부서지는 파도를 비추며 비정함의 손을 들어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드니 빌뇌브와 시퀄의 한계가 뒤섞인 괴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