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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Oct 22. 2017

의심을 가릴 여유를 잃어버린 파국

트레이 에드워드 슐츠 <잇 컴스 앳 나잇>

 미지에 바이러스가 퍼지고, 이것에 걸린 사람들은 피를 토하고 피부에 발진이 일어나며 며칠 만에 사망한다. <잇 컴스 앳 나잇>은 바이러스가 퍼지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한다. 영화가 시작하면 폴(조엘 에저튼)과 아내인 사라(카르멘 에조고), 아들인 트래비스(캘빈 해리슨 주니어)가 할아버지에게 작별인사를 건네고 있다. 바이러스 증상이 드러난 그를 죽이고 불태운 뒤 땅에 묻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한다. 물과 식량을 아껴가며 지내던 어느 날, 누군가 갑자기 문을 두드린다. 가족을 위해 물과 식량을 찾던 윌(크리스토퍼 애봇)이 폴의 집을 빈 집으로 착각해 침입하려 한 것. 폴은 윌을 잡아 두고 대화를 통해 그가 자신의 가족에게 해를 끼치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것을 확인한다. 윌에게 어느 정도의 식량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폴은 윌의 가족과 집을 공유하기로 하고, 그의 아내인 킴(라일리 코프)과 어린 아들이 폴의 집에 도착한다. 그들은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며 생존해간다. 그러던 중 숲 속으로 달려가 버렸던 트래비스의 개 스탠리가 야밤 중에 돌아오고, 그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잇 컴스 앳 나잇>은 표면적으로는 바이러스라는 재난의 상황과 그 안에 놓인 인간들 사이의 심리를 그린 재난 공포 영화로 보인다. 폴이 장인어른을 쏴 죽이는 오프닝 시퀀스와 밤중에 윌이 집으로 침입을 시도하는 장면 등은 전형적인 장르적 공포 효과를 선보인다. 트래비스의 꿈을 통해 끊임없이 긴장감을 불어넣고 불안감의 분위기를 깔아 두는 방식 또한 평범하지만 효과적이다. <잇 컴스 앳 나잇>이 자신만의 색을 드러내는 것은 윌의 가족이 폴의 집으로 오면서부터 시작된다. 두 가족이 한 집에서 일상을 만들어가고 교류하는 장면들은 굉장히 화목해 보인다. 윌과 킴은 오랜만에 목욕을 즐기고, 트래비스는 윌에게 장작 패는 법을 배우고, 사라는 킴에게 집을 정비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함께 밥을 먹고 사냥과 채집에 나서며, 이런저런 집안일을 함께 해나가며 작은 농담을 주고받는 몽타주는 아름답도록 행복해 보인다. 윌의 가족이 어떤 꿍꿍이가 있지 않을까 하며 그들의 방을 몰래 들여다보던 트래비스는 행복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웃는다. 호러 장르에서 만나기 힘든 아름다운 몽타주는 어렵사리 쌓아 올려진 화목함을 담아낸다.

 이러한 화목함, 행복은 폴의 가족과 윌의 가족이 서로 의심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아 두어야 가능하다. 그들은 서로를 의심하지 않는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서로를 의심하지 않는다. 폴은 끊임없이 트래비스에게, 사라에게 우리 가족 이외의 사람들을 완전히 믿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겉으로 보기엔 폴과 윌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것을 한 꺼풀 벗겨 보면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 의심이 드러난다. 앞서 등장한 아름다운 몽타주는 가식으로 의심을 가릴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 가능한 화목함이다. 트래비스의 악몽으로 제시되는 불길함은 그들의 가식 밑에 지울 수 없는 의심이 깔려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드러낸다. 스탠리의 귀환과 함께 표면 위로 떠오르는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감은 최소한의 가식마저 차릴 수 없게 인물들을 몰아간다. 그들에게 표면적인 선의를 베풀 여유가 사라진다. 영화 내내 뿌려진 사람들의 의심이라는 씨앗 표피를 뚫고 겉으로 드러나게 된다.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영화의 결말은 우리가 표면적인 가식으로 서로에 대한 의심을 감출 최소한의 여유도 없을 때의 사건이다.

 <잇 컴스 앳 나잇>이 담아내는 파국은 어딘가 현실을 닮았다. 최소한의 여유를 가졌을 때 드러나는 아름다운 화목함과 여유를 잃어버렸을 때의 파국은 현실에서 범람하는 혐오범죄의 양상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삶에서 여유가 제거될수록 상대방이 나의 안정을 박살내고야 말 것이라는 의심과 불안함은 커져만 간다. 인종적, 젠더적 요소가 갈등의 요소에서 완전히 배제된 채 폴의 가족과 윌의 가족 두 집단이 충돌하는 이야기는 도리어 현실의 혐오범죄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잇 컴스앳 나잇>이 담아내는 공포는 어떤 질병으로 세상이 멸망하는 아포칼립스적 상상력이 아니다. 비록 그 표면이 가식일지라도, 그 속에 심어진 의심을 가리는 가식을 가질 여유도 잃어버린 사람들의 충돌에서 오는 공포의 상상력을 장르적 상상력과 결합한 작품이다. 때문에 <잇 컴스 앳 나잇>이 담아내는 공포는 굉장히 깊게, 시의성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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