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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08. 2018

그 길을 어떻게 정할 수 있나요

<초행> 김대환 2017

*스포일러 포함


 대학원을 준비하는 수현(조현철)과 방송국에서 일하는 지영(김새벽)은 7년 차 커플이다. 동거생활을 하던 둘은 이사를 준비하고, 그러던 중 각자의 부모님을 찾아 뵐 일이 생긴다. 각자의 부모님들은 그들의 인생에 조언 아닌 조언을 건네려 한다. <초행>은 제목 그대로 ‘처음 가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우스갯소리처럼 ‘모두가 인생 1회차’라고 말하며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개인의 삶이라는 것에 대해 마치 지켜져야 하는 사회적 합의인 양 정해진 길이 존재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령 초중고를 무난히 졸업하고 20살에는 대학에 꼭 가야 한다거나, 20대 중반에는 졸업하고 취직을 해야 한다거나, 30살 내외에는 결혼을 해야 하고 30대 중반에는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등 모두의 삶이 일반적인 무언가로 정해진 것처럼 그들은 이야기한다. 하지만 지금 20~30대의 삶은 어떨까, 과연 일반적으로 정해진 삶을 따라가기에도 버거운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그게 무엇일지는 몰라도)마저 저버리라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한 요구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처음 내딛는 사람들이 온전할 수는 없다. 하이퍼 리얼리즘에 가깝도록 현실적으로 묘사된 <초행> 속 커플의 이야기는 어느 곳에 가도 초행길인 인생 1회차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가 시작하면 수현은 형에게 아버지의 환갑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전화를 받는다. 지영은 생리가 멈춘 지 꽤 되었다며 임신을 의심한다. 이사를 앞둔 뒤숭숭한 집에서 둘은 마지막 남은 음식인 계란을 먹는다. 그들은 먼저 지영의 집을 찾는다. 인천으로 이사한 지영의 부모님은 공무원이고 부동산업자다. 안정된 생계를 꾸리고 살아가는 그들은 지영과 수현에게 결혼을 묻는다. 당연히 당장의 여건도 되지 않는 데다가 임신을 의심 중인 지영은 그런 질문들이 못마땅하다. 며칠 뒤 그들은 삼척에 있는 수현의 집을 찾는다. 별거 중인 수현의 부모님은 각각 공장 경비원과 횟집에서 일한다. 지영은 삼척에 도착하자마자 수현의 어머니를 도와 전을 부치고, 수현은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임신, 대학원 입시, 결혼, 이사 등 어디 하나 지영과 수현에게 초행이 아닌 것이 없다. 수현은 계속해서 “몰라”라는 말을 반복하고 지영은 끝내 “무섭다”라고 외친다. 구체적인 대사 없이 상황만 제시하면서 촬영했다는 <초행>의 이러한 대사와 제스처들은 영화 속 주인공들과 동년배인 김새벽, 조현철 두 배우의 자연스러운 현재가 녹아들어 있는 것만 같다. 그 둘 역시 배우라는 직업만이 있을 뿐, 현재 대한민국의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는 젊은 세대라는 점에서 수현과 지영을 비롯한 인물들, 영화를 보는 관객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다. 그렇기에 더욱 돋보이는 순간들이 <초행> 속에 존재한 것이 아닐까?

 영화는 두 사람이 삼척에서 서울로 돌아와 광화문 광장의 촛불시위를 목격하고, 차에서 내려 행진에 참여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영화 내내 집, 학원, 식당, 자동차 등 실내의 답답한 프레임 속에 있던 둘은 인파로 가득한 촛불 광장에서야 숨통이 트여 보인다. 마지막 장면의 카메라는 내내 두 인물의 뒤통수만을 쫓아 가지만 굉장히 자유롭게 움직인다. 실제 작년 촛불의 현장에서 촬영된 이 장면에서 수현과 지영은 사람들의 흐름을 따라가다가 “응? 다들 반대로 가는 것 같은데?”라면서 다시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 “반대 방향으로 걸으니 다들 또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 같은데?” 둘이 주고받는 대사는 방향성이 정해지지 않는 당시의 정국과 그들의 삶이 묘하게 교차되는 지점이다.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행진, 바로 다음 주의 정국을 예측할 수 없는 땅, 보통의 삶을 따르기에는 버겁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엔 처음 가는 그 길을 전혀 모르겠고 무서운 상황. 영화 말미에 등장한 촛불 광장은 지금을 가장 명확하게 담아내는 공간이다. 모든 길이 정해져 있다고 믿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사실 매일 지나가는 길도 처음 가는 곳이잖아요. 그 길을 어떻게 정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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