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윤가은 2019
*스포일러 포함
5학년 하나(김나연)는 매일 같이 싸우는 부모님과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오빠가 싫다. 그는 부모님을 화해시키기 위해 가족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 하나는 마트에서 우연히 유미(김시아), 유진(주예림) 자매를 만난다. 유미와 유진은 함께 일하는 부모님이 멀리 출장을 떠나는 일이 잦다. 게다가 7번째 이사를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하나, 유미, 유진은 하나가 가족여행을 갈 수 있고 유미와 유진의 가족이 이사를 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물론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옥상에서 물놀이를 하는 등의 놀이는 이들의 중요한 일과이다. <우리들>로 아이들의 시선과 관계를 보여준 윤가은 감독의 신작 <우리집> 또한 초등학생 나이의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제목부터 유사한 그의 두 작품은 마치 같은 동네에서 다른 시간대에 벌어진 두 무리의 아이들을 담아내는 것만 같다.
<우리들>의 장점은 카메라가 아이들의 시점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카메라의 높이는 골목, 학교 복도, 교실, 육교, 집 등의 공간을 아이들의 시점으로 담아낸다. 이 과정에서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의 어른들은 얼굴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윤가은 감독은 이러한 방식을 통해 <우리들>의 세계관에서 어른들의 이야기를 가능한 덜어내고, 아이들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반면 <우리집>은 <우리들>의 촬영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번 영화 또한 골목, 교실, 집, 육교 등의 공간이 등장하지만, 카메라는 꽤 많은 시간을 어른들의 얼굴을 잡는데 할애한다. <우리집>은 <우리들>보다 ‘어른들의 사정’이 중요하게 작동하는 영화다. 당장이라도 이혼할 것만 같은 하나의 부모님의 싸움과 이사를 결정한 유미/유진의 부모님은 영화의 서사를 작동시키는 중요한 존재들이다.
어쩌면 <우리집>에서 어른들의 얼굴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생기는 의문점은, 하나의 부모님들이 꽤 많은 시간 얼굴을 비추는 것에 비해 유미/유진의 부모님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들의 부모님이 출장 간 사이 이들을 돌봐준다는 삼촌조차 프레임 안에 등장하지 않는다. 유미/유진 자매가 겪어야 하는 ‘어른들의 사정’은 오로지 유미의 핸드폰을 통해 전달되는 (목소리조차 등장하지 않는) 대화, 혹은 집주인 아주머니의 통보로만 전달된다. 결국 <우리집>은 하나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세계이며, 하나의 가족뿐만 아니라 유미/유진 자매마저 하나에게 닥친 ‘사정’을 해결하기 위한 존재가 된다.
극 중 하나는 생각보다 이기적인 캐릭터이다. 처음엔 길을 잃은 유진을 언니에게 데려가 주기 위해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며, 집에 보호자가 없는 자매를 위해 이런저런 요리를 해주고 함께 놀기도 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결국 자신에게 닥친 ‘사정’을 향해 도망간다. 유미/유진 자매는 제멋대로 움직이는 하나에 대한 리액션만을 보여준다. 유미가 처음으로 하나의 독단에 반발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처음으로 싸운다. 영화는 이 사실을 무마하려는 듯 하나와 유미를 간단하게 화해시킨다. 그 방법으로 이들이 함께 만든 종이집을 박살 내는 것이 제시된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집’은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유미에게 ‘집’은 곧 이사를 떠날, 언제든지 새로운 곳으로 바뀔 공간이다. 반면 하나는 비록 부모님이 싸우고 꼴 보기 싫은 오빠가 있을지라도, 집이 있다. 물론 이들은 각자의 집을 ‘우리집’이라고 쉽게 부르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만의 ‘우리’집을 주워 온 박스들로 만든다. 여기서의 ‘우리’는 하나, 유미, 유진이다. 하지만 여기서의 ‘집’은 한쪽에겐 고정된 장소이고 한쪽에겐 유동적인 공간이다. 이것을 박살 낼 때 하나와 유미가 각각 느낄 감정의 층위는 분명 다르다. 그럼에도 영화는 하나가 먼저 종이집을 짓밟는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이들이 종이집을 박살 내는 장소는 하나가 그토록 가족여행을 떠나오고 싶어 하던 바다이다. 세 명의 아이들끼리 떠난 이 여행은 표면적으로는 유미/유진의 부모님을 찾아 떠난 여행이다. 하지만 이들이 도착한 해변의 모습은 하나의 가족사진 속 바다와 유사하다. 유미와 유진은 하나의 가족여행을 대리하고 있는 셈이다. 하나가 촉발한 싸움, 하나가 시작한 종이집 박살내기는 하나의 독단을 무마하는 화해로 향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하나와 유미의 싸움은 명백히 하나의 부모님이 벌이는 싸움의 대리전이다. 아직 영화의 첫 쇼트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들려오는 부모님의 격한 싸움에선 제대로 된 대화를 찾아볼 수가 없다. 이들은 어떤 정보 값을 주고받으면서 싸우는 대신, 서로의 말을 듣지 않으며 각자의 피로한 상황만을 소리친다. 하나와 그의 오빠는 이러한 상황을 수차례 보면서도 부모님이 왜 싸우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하나와 유미의 싸움도 양상은 비슷하다. 유미는 하나의 독단적인 여행이 실패했다고 여기면서도 결국 이름 모를 해변가까지 오게 된다. 하나는 가족여행이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을 유미에게 계속 숨긴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이 서로에게 실망한 것을 말하지 못해 싸운다. 종이집을 부수는 행위는 이에 대한 설명이 아닌 해소이며, 영화는 이들이 화해하는 과정을 하룻밤의 야영으로 가볍게 다루고 넘어간다.
세 사람은 동네로 돌아온다. 이사가 거의 확정된 유미는 자신과 유진을 바래다주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하나에게 “이사 가도 우리 언니 해줄 거지?”라고 물어본다. 하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그래”라고 대답한다. 하나는 집으로 돌아간다. 하룻밤 동안 사라져 있던 하나를 찾아 온 가족은 밖을 돌아다니고 있다. 하나는 빈 집에서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차린다. 집에 돌아온 가족들은 하나를 보고 놀라지만, 결국 식탁에 앉고 하나의 바람대로 식사를 하기 시작한다. 하나는 유미/유진 자매와 함께한 긴 여정을 통해 자신의 가족을 동시에 식탁에 앉히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 쇼트 이후 암전 된 화면에서 들려오는 식사 소리는 이들이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는 동안에는 한 가족으로 봉합되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유미/유진은 어떠한가? 자매는 불확실한 이사 여부에 대한 부모님의 답변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같은 상황을 거친 세 캐릭터의 처지는 사뭇 다르다. 하나에겐 당장의 (짧게 지나갈지도 모를) 봉합이 찾아오지만, 유미/유진 자매는 부모님의 답변이든, 하나와의 관계든 전적으로 상대방을 기다려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하나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위치로 성장했지만, 유나는 도리어 기존의 하나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하나의 집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하나의 집에서 마무리된다. 결국 유미/유진은 끝까지 하나의 행동에 대한 리액션을 반복하고, 그것은 부모의 싸움에 대한 하나의 리액션이라는 구조의 반복이다. ‘어른들의 사정’을 대리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결국 구조의 반복을 맞이한다. 이 이야기의 끝엔 하나가 보여준 독단, 그 독단이 만들어낸 이기적인 관계가 남는다. 그 지점이 <우리집>과 <우리들>의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