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인 할리우드> 톰 도나휴 2018
국내에는 살짝 늦게 도착한 <우먼 인 할리우드>는 할리우드 내 성차별의 역사와 그에 맞선 여성 영화인들의 투쟁을 다룬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정리해준 할리우드 내 성차별의 역사를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초기 영화사에서는 알리스 기 블라쉐, 로이스 웨버 등 여성 연출자들이 대거 활약했으나, 30년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자리 잡자 30년대에는 도로시 아즈너, 40년대에는 아이다 루피노 정도만이 할리우드의 이름 있는 여성 연출자로 남게 된다. 이는 흑인 민권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인권운동이 전개된 60년대 후반, 민권법이 제정되고 이에 따라 EEOC(미국 평등고용추진위원회)가 설립되어 할리우드 내 성차별이 사라지는듯하였다. 그러나 남성 중심으로 조직된 감독조합을 비롯한 각종 조합, 제작자, 제작사, 방송국, 남성 창작자 등은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했고, 법적 효력이 없는 EEOC의 권고사항은 무시된다. 이후 80년대가 되어 6명의 여성 감독이 40년대부터 70년대에 이르는 할리우드 내 성차별에 대한 자료를 모아 감독조합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는 평등 고용법을 준수하라는 소송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판사에 의해 기각되고 만다. 그리고 2000년대, <델마와 루이스> 등을 통해 자신이 지닌 영향력과 미디어의 영향력을 함께 깨달은 지나 데이비스는 ‘지나 데이비스 젠더 미디어 연구소’를 차린 뒤, 어린이 대상 영화와 TV 콘텐츠 속 여성과 남성의 출연 및 대사 비중 등을 데이터화 한다. 또한 한 여성 평론가에 의해 할리우드 내 여성 연출자, 여성 스태프의 비중에 대한 문제제기가 정리된 데이터를 통해 제시되며, 이에 영향을 받은 스웨덴의 어느 아트하우스 극장은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는 작품들을 홍보하기 시작하며 어떤 흐름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2018년 시작된 미투 운동을 통해 할리우드 내 성차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거대한 흐름을 만들기 시작한다.
할리우드 여성 영화인의 역사는 이렇게 차별과 투쟁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우먼 인 할리우드>의 전반부는 ‘지나 데이비스 젠더 미디어 연구소’의 연구를 비롯해, 케이트 블란쳇, 메릴 스트립, 클로이 모레츠, 샤론 스톤, 타라지 P. 핸슨, 로자리오 도슨, 마리사 토메이, 나탈리 포트먼 등의 여성 배우들은 물론, 페티 젠킨스, 킴벌리 피어스, 캐서린 하드윅 등의 여성 연출자들, 제작자 등이 등장해 그들이 직접 경험한 할리우드 내 성차별을 직접 증언한다. 이들의 증언은 배우, 감독, 제작자, 촬영감독, 조감독 등 영화 내 수많은 분야에 걸쳐있는 것은 물론, 비백인 여성들의 이중, 삼중의 차별까지 담아내고 있다. 영화는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의 역사를 추적하며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를 이어 나간다.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장벽에 맞서는 투쟁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지닐 수 있는지, 그리고 지녀야 하는지를 알고 있고, 자신이 출연한 ‘남성의 시선으로 촬영된’ 작품들이 어떻게 성차별을 재생산하는지를 알고 있으며, 자신의 주변에 여성 동료들이 배제되고 있는 것을 알아냈고, 자신들의 ‘능력 있음’에도 그것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때문에 <우먼 인 할리우드>는 행동하는 여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80년대의 감독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지나 데이비스는 데이터 확보를 위한 연구소를 설립했으며, 2000년대에 다시금 소송을 제시한 이들 또한 존재하고, 리즈 위더스푼은 자신의 제작사를 차려 여러 작품들을 성공시킨다. 이러한 여성 영화인들의 일련의 행보는 할리우드 내에서 “여성 중심의 영화, 여성 감독의 영화가 성공한다”는 말이 수차례 나왔음에도 근본적인 변화 없이 제자리로 돌아갔던 수많은 역사 앞에서 포기하는 대신, 그들 스스로가 이미 그 존재함으로써 역사임을 선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할리우드의 여성들은 이미 변화했음을 증명한다. 이들은 변화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할리우드 내 성차별의 해체를 향해 있다. 하지만 왜 남성들은 변화하지 않는가? 메릴 스트립은 인터뷰 중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할 때, 변화는 시작될 겁니다. 21세기의 기사도 정신이란 바로 그런 것이죠."라고 이야기한다. 메릴의 말이 맞다. 할리우드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그것도 할리우드 권력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남성들이 변화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굉장히 긍정적일 수 있다. 단순히 여성과 비백인, 성소수자 영화인들이 더 많이 활동하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질과도 연관된 것이다. 가령 ABC는 여성이 CEO가 되자 <그레이 아나토미>를 시작으로 여성과 흑인이 주인공인 여러 시리즈를 성공시켰으며, <하우 투 겟 어웨이 위드 머더> 등을 통해 비평적 성과까지 얻게 된다. 백인 이성애자 남성 연출자의 비중이 가장 높다고 지적당한 FX 채널의 CEO는 이 비판을 받아들이고 89%에 달하던 백인 이성애자 남성 연출자의 비중을 49%까지 낮추게 된다. 그 결과 <퓨드>, <아틀란타>, <포즈>,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등의 완성도 있는 작품들이 탄생하였고, FX의 작품은 에미상의 50여 개 부문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영화는 이 두 사례를 연이어 보여주며, 여성들이 선도하고 있는 변화를 남성들까지 수용한다면 성차별, 인종차별, 성소수자 차별 등의 문제가 일정 부분 해소됨은 물론이거니와, 새롭고 신선한 작품들을 제작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우먼 인 할리우드>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대상은 분명하다. 영화의 원제인 “This Changes Everything”은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선언이자, 바뀌지 않은/않을 남성들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