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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감독: 홍상수
출연: 이유영, 김주혁
제작연도: 2016

주인공을 타지로 보내던 대부분의 전작과는 달리,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은 주인공 영수과 민정이 살고 있는 연남동을 배경으로 선택했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약속을 어겼다는 이유로 영수와 크게 다툰 민정은 영수와 연락을 끊는다. 동네 주민들은 카페 등에서 민정을 만나지만 그녀는 민정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는 민정인가 민정의 쌍둥이인가 단지 민정과 닮은 사람인가? 영수는 민정을 찾아 연남동에서 방황한다.

영화는 배경으로 영수와 민정의 생활공간인 연남동을 선택했다. 그 동안 ‘캐릭터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기 위함’이라는 이유로 주인공을 타지에 보냈던 것과는 다른 선택이다. 익숙한 일상의 공간 속에서, 다양한 모습의 민정이 등장한다. 아니 다양한 모습이라기 보단 사람들이 민정이라고 여기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인물들을 만나는 재영, 상원 등의 반응이 재미있다. 그들은 민정이 아니라는 말을 처음에 의심하고 재차 물어본다. 이후 그녀가 민정이 아님을 알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당신’이라는 말로 그녀를 대한다. 그들의 일상이 진행되는 공간에 결국 당신만이 남게 된다. 이는 영수에게도 마찬가지다. 연남동을 돌아다니며 방황하던 영수는 영화의 마지막 민정(의 외모를 가졌지만 본인은 민정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을 만난다. 바보 같은 약속을 강조했던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며, 영수는 상대를 오직 당신이기에 존대한다.

이러한 영화의 전개는 남자들의 일상을 민정이 침투해 들어온 것처럼 보이게끔 만든다. 당신 누군데 반말하냐며 목소리를 높이던 두 남자가 동창임을 알게 되자 웃고 떠들게 되고, ‘동네 사람들은 벌써 다 알고 있어’라며 뒷담화를 하던 일상이 민정의 등장으로 균열이 생긴다. 민정은 그 동안 홍상수 영화에 등장하던 알 수 없는 여자들과 다르지 않지만, 영화는 민정을 단순히 ‘알 수 없는 여자’로 대상화하지 않는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의 남자들은 다른 홍상수 영화 속 남자들처럼 언제나 그녀들의 과거를 캐고 억지로 퍼즐을 맞추듯 자신의 생각대로 알 수 없는 여자를 짜맞추지 않는다. 영화 속 남자들, 특히 영수는 민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현재에만 집중하며 있는 그대로를, 그저 당신이기에 존대하며 사랑한다. 어쩌면 (적어도 사랑에 관해) 가장 순수한 홍상수의 영화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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