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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n 07. 2021

<미나마타 만다라> 하라 카즈오 2020

 영화는 제목 그대로 미나마타병을 앓고 있는 일본인들의 오랜 투쟁사를 다루는 작품이다. 미나마타병은 일본 규슈 최남단 구마모토현의 작은 마을 미나마타에서 발생한 것으로, 그곳에 세워진 소기전기(현 짓소)가 1932년부터 메틸수은을 방류하면서 시작된다. 1940년대부터 환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미나마타병을 앓은 1세대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난 상황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병을 앓고 있는 ‘태아성 질환자’들이 계속해서 확인되고 있다. 일본 보건성은 1977년에서야 공해성 질병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지만, 이 기준은 공해성 질환자를 인정하지 않기 위한 기준에 가까웠다. 2004년 일명 ‘간사이 재판’에서 천명 단위의 공해성 질병 인정이 이루어지지만, 정부는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을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끝없이 책임을 회피한다. <미나마타 만다라>는 이 과정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재판 과정, 미나마타병을 앓고 있는 이들의 현재와 투쟁,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쌓인 쟁점들을 정리한다. 수십 년에 걸친 법적 투쟁을 이어가는 90대 노인, 병을 의학적으로 규명하려 계속 시도하는 의사, 병을 증명하기 위해 정밀검사를 받을 것을 요청받는 어부, 자신이 겪은 고통을 음악이나 글 등으로 표현하려는 환자들….      

 그동안 미나마타병을 다룬 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츠지모토 노리아키의 1971년작 <미나마타: 환자들과 그 세계>가 있었고, 500여 명의 환자를 촬영한 이 작품은 일본 전역을 돌며 상영되었다. 츠지모토 노리아키는 이후에도 <시라누이 해> 등 미나마타병을 다룬 독립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1992년에는 구마모토가 아닌 니가타현 아가노 강에 방류된 메틸수은으로 인해 발생한 니가타 미나마타병에 대한 사토 마코토 연출의 다큐멘터리 <아가노 강에 살다>가 제작되었다. 2020년 하라 카즈오의 <미나마타 만다라>가 공개되었고, 2021년 (하필이면) 조니 뎁이 제작과 주연을 맡고 아사노 타다노부, 사나다 히로유키, 쿠니무라 준, 카세 료 등 일본의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는 할리우드 영화 <미나마타>가 개봉할 예정이다. 이 작품은 1970년대 초 미나마타병을 취재해 이를 환경파괴 및 공해성 질병의 대표적 사례로 만들어낸 저널리스트 유진 스미스의 이야기를 담는다. 정리하자면, 하라 카즈오의 <미나마타 만다라>는 미나마타 지역에서 발생한 미나마타병에 대해 다루는, 츠지모토 노리아키의 작품들 이후 처음 제작된 극장용 장편 다큐멘터리다.      

 다시 <미나마타 만다리>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이 영화는 372이라는 압도적인 러닝타임을 자랑한다. 물론 6시간이 넘는 방대한 러닝타임일지라도 20세기 초반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는 미나마타병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3부로 나눠진 영화는 미나마타병의 전체를 다루는 대신 그것의 현재에 집중하여, 미나마타병의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하는 지형도를 그리려 한다. 1부에선 미나마타병에 대한 역사적, 의학적 설명이 이루어지고, 2부와 3부 초반에서는 미나마타병 환자들의 삶이 다루어진다. 3부 중반부터는 현재에도 진행 중인 미나마타병에 대한 법적 투쟁이 다루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이 무의미하게 영화는 앞서 나열한 요소들을 종종 뒤섞어 보여준다. 2부 초반에 나온, 해산물을 먹고 미나마타병에 걸린 전직 체조선수는 3부에도 재등장한다. 미나마타병에 대한 법적 투쟁과 재판 이후 환자 및 활동가들이 일본 보건성, 환경성 공무원들과 면담하는 장면은 1부에도 등장한다. 미나마타병을 앓는 이들의 과거 영상은 츠지모토 노리아키의 영화에서 인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미나마타 만다라>의 복잡한 구성은 하라 카즈오의 전작들을 떠올리게 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번 영화와 가장 비슷한 성격을 지닌 2017년작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이다. 이 작품은 오사카 센난 지역 노동자들이 석면으로 인해 입은 피해를 배상받기 위해 진행한 십여 년간의 긴 투쟁을 기록한다. 영화 자체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촬영되었으며,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의 석면피해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루어진다. <미나마타 만다라>에서 목격한 공무원과 피해자 사이의 면담이라던가 피해자와 활동가들의 회의 장면, 병원에서 검사받는 피해자들의 모습 등은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에서도 등장한다. 2부와 3부에서 미나마타병 환자들의 삶을 보여주는 모습은 하라 카즈오의 데뷔작 <굿바이 CP>를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은 뇌성마비(Cerebral Palsy) 환자들의 삶을 담고 있다. 하라 카즈오는 이들이 살아가는 삶을 단순히 관찰할 뿐 아니라, 꽤나 짓궂은 질문을 던지며 대답을 끌어내기도 한다. 가령 뇌성마비 환자들의 연애, 결혼, 섹스는 어떠한지 등에 대한 질문들 말이다. 이는 이번 영화에서도 반복되는 질문이다. 혹은 하라 카즈오가 자신의 전부인이자 오키나와 미군기지 인근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인 다케다 미유키를 담은 <극사적 에로스>나, 2019년 참의원 선거에 출마한 반체제 진보 정당 레이와 신센구미를 다룬 <레이와 시대의 반란> 속 몇몇 질문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라 카즈오는 마치 자신은 그것이 편견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에 대한 상대방의 생각을 알아내야겠다는 듯이 질문을 던진다. 당황스러움과 난감함 속에서 어쨌든 답변은 되돌아온다. 그것은 영화에 담긴다. 하라 카즈오의 질문과 그것이 담긴 장면은 다소 폭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다만 그것이 폭력적인 이유는 그것이 촬영된 방식이나 그것이 담긴 영화적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폭력적으로 대하는 사회 체제 자체에서 비롯된다. 일본 사회는 뇌성마비, 기지촌의 여성들, 트랜스젠더 정치인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라 카즈오는 그 폭력이 향하는 대상에게 직접 그것을 질문함으로써 폭력 자체를 직시하려 한다.     

 <미나마타 만다라>에서 그러한 방식으로 직시하는 것은 미나마타병을 앓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보다 그것을 종결된 것으로 만들려는 일본 정부의 폭력성이다. 70년 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 그리고 그것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1세대 미나마타병 환자들 대부분이 세상을 떠난 와중에, 일본 정부는 모든 환자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버티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수십 년에 걸쳐 법적 투쟁을 이어가는 90대 노인 미조구치가 대법원에서까지 승소했음에도 일본 정부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미나마타병 환자 전체에 대한 인정을 가능한 지연시킨다. 그 결과는 영화의 마지막 자막이 보여주는, 극소수의 인정 사례와 수백 건의 기각 사례다. 다만 하라 카즈오는 현재적 투쟁을 중간점검하려는 태도로 이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그가 환자와 여러 활동가에게 던진 질문은 문제의 일차적 원인인 일본 정부를 향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가 던진 질문에 카메라 앞에서 답해야 하는 당사자들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이들의 대답은 미나마타병을 앓는 개인 및 그들과 함께 투쟁하며 의학적, 법적, 제도적 해결을 바라는 활동가들의 생활사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오랜 기간 투쟁해온 미조구치나 어린 시절 병이 발견되어 10대 시절의 기록이 남아 있는 이코마, 연애와 사랑에 대한 질문을 받는 태아성 질환자 시노부, 미나마타 지역 주변에서 잡을 수 있는 동식물로 만든 ‘어부의 식탁’이 차려지는 장면 등은 그 자체로 미나마타 지역에 대한 민족지처럼 구성된다.      

 <미나마타 만다라>와 가장 유사한 구성을 보여주는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과 이번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이번 영화는 해당 사건 당사자들의 정념을 다루는 것에 보다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센난 석면피해 배상소송>이 다루는 사건 또한 오랜 기간 누적된 역사를 지닌 사건이며, 짧지 않은 투쟁사를 지니고 있다. 다면 그 작품이 투쟁의 기록에 가깝다면, <미나마타 만다라>는 오랜 기간 생활로서 자리 잡은 미나마타병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에 가장 큰 비중으로 등장하는 미나마타병 환자인 이코마와 시노부의 이야기는 공해성 질병이 이들의 삶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것은 단순히 이들의 현재를 보여줌으로써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시노부가 작사한 노래가 공연되는 사이 플래시백처럼 삽입된 시노부의 인터뷰와 생활 장면, 십대 시절의 이코마가 등장하는 과거의 기록영상, 더 나아가 소송 자체에 회의감을 품는 미조구치의 발언 등은 미나마타병이라는 인위적 재해가 어떤 방식으로 이들의 정념을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것이다. 372분이라는 러닝타임은 단지 미나마타병에 대한 역사와 의학적 정보, 투쟁의 이야기를 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미 그것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살아가야만 하는, 그리고 그러한 삶을 정부로부터 인정받는 대신 종결된 것으로 간주될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는 그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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