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오브 구찌> 리들리 스콧 2021
트럭 회사 사장의 딸 파트리치아(레이디 가가)는 한 파티에서 우연히 구찌 가의 아들 마우리치오(아담 드라이버)를 만난다. 사랑에 빠진 둘은 결혼을 원하지만, 마우리치오의 아버지 로돌포(제레미 아이언스)는 파트리치아가 구찌 가의 돈을 노리는 것이라며 반대한다. 마우리치오는 아버지를 벗어나 파트리치아와 결혼한다. 동시에 가족이 함께하길 바라는 마우리치오의 삼촌 알도(알 파치노)는 못마땅한 아들 파올로(자레드 레토) 대신 마우리치오에게 구찌 경영을 맡기려 한다. 한편 파트리치아는 구찌 경영에 점점 관여하고 싶어 하고, 자신의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점술가 피나(셀마 헤이엑)를 만나 도움을 요청한다. 리들리 스콧의 신작 <하우스 오브 구찌>는 80년대부터 90년대에 걸쳐 구찌 가에서 벌어진 일들을 담아낸다. 파트리치아의 시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구찌 가의 전통과 위기, 새로운 시작과 같은 이야기부터 구성원들의 욕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리들리 스콧이 <라스트 듀얼>에 뒤이어 내놓은 이번 영화는 화려한 캐스팅에 비해 큰 욕심을 부리지 않은 것만 같다. 밀라노부터 뉴욕까지 다양한 지역을 오가고, 모든 등장인물이 구찌 제품으로 몸을 휘감고 있으며, 애나 윈투어, 칼 라거펠트, 소피아 로렌 등 (물론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지만) 다양한 패션계 인사들이 곳곳에 등장하고, 구찌의 새 시대를 연 톰 포드(리브 카니)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리들리 스콧은 파트리치아와 마우리치오를 비롯한 구찌 가 사람들의 화려한 삶을 담아내는 것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차분한 톤의 화면은 패션필름의 것이라기보단 오히려 리들리 스콧의 전작 <라스트 듀얼> 속 야만의 시대를 담아낸 것과 닮아 있다. 이 영화 속에서 화려한 것은 파트리치아를 연기한 레이디 가가의 이글거리는 연기, 영화배우였던 아내의 모습이 담긴 영화 필름 속에서 폐병을 앓아 죽어가는 제레미 아이언스, 다른 배우들과 다소 다른 톤의 연기지만 자신의 곤란함을 표현하는 것에는 알맞았던 자레드 레토, 스크린에 등장하는 것만으로 무게감을 실어주는 알 파치노 등 배우들의 면면뿐이다. 아차, 아담 드라이버를 적지 않은 것은, 어쩌면 파트리치아보다 더욱 큰 욕망을 품고 있지만 그것을 조용히 감추고 있던 마우리치오의 모습을 연기하는 것에 있어서, 영화의 다른 배우들만큼 훌륭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리들리 스콧이 전작에 이어 아담 드라이버가 맡은 캐릭터에 매력적(Charming)이라는 형용사를 붙이는 것에 대해 작은 불만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우스 오브 구찌>는 기대만큼 고약한 영화는 아니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1995년의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언론은 “희대의 악녀” 같은 타이틀을 쏟아냈다. 악녀, 욕망, 재벌, 손쉽게 격렬한 막장 드라마로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손쉬운 방법을 제처 두고 선택한 지금의 방식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리들리 스콧은 종종 고약한 모습을 보여주긴 한다. 이를테면 죽기 직전에서야 파트리치아를 구찌 가의 일원으로 인정한 로돌포가 “구찌 가에 더 많은 여자가 필요하지”라는 대사를 뱉은 직후 자신의 장례식에서 관 속에 누워 있는 그의 모습으로 연결되는 편집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하우스 오브 구찌>는 그 정도 수준에서 멈추고 만다. 수미상관 구조를 지닌 오프닝과 후반부는 파트리치아의 존재로 인해 평화로운 삶을 보낼 수 있었던 마우리치오의 일상이 종결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 같지만, 파트리치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마우리치오의 성격과 품성은 영화 후반부에서나 급박하게 설명된다. 마우리치오가 몰개성의 리액션을 건네는 인물에서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고자 하는 후반부에 이르자마자, 파트리치아를 중심으로 펼쳐지던 이야기는 남은 힘을 모두 잃은 채 결말을 기다리기만 할 뿐이다. 충분히 고약하지도, 화려하지도, 격렬하지도 않은 이 이야기는, 결국 평이하게 시작해 평이하게 끝나버리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