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초 고려 숙종 때, 송나라에 손목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지금으로 치면 서기관급의 인물이며, 개성에 방문했다가 <계림유사>라는 고려 여행기를 집필한다. <계림유사>에는 고려의 정치 제도, 풍속, 어휘를 정리해 두었는데, 그중 '슈룹'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오늘날의 '우산'이다. 12세기 초는 아직 우리나라가 몽고의 침략을 받기 전이므로, 슈룹은 우산을 지칭하는 고유어이다. 물론 지금은 사어가 되었지만, 이 단어는 꽤 오랫동안 살아남은 역사가 있다.
대학 때 중세국어 수업에서 슈룹이라는 단어를 처음 배웠다. 수업명은 중세국어지만 고대국어부터 국어사를 모두 훑는 내용이었다. 고대국어는 그 시기를 명확하게 특정할 수 없기 때문에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의 국어를 모두 통칭한다. 과거에는 현재 우리나라 영토보다 넓은 범주까지 국어의 뿌리를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에 몽고어를 포함한 다른 나라의 언어의 역사부터 배워야 했다.
국어사를 배우다 보면 재미있는 점이 있다. 국어는 생성 유형을 따져 보면 형태상 '교착어'이고, 계통상은 '첨가어'로 볼 수 있다. 복잡한 이론적인 설명은 차치하고, 단순하게 말하자면 글자꼴이 정해져 있어서 자유자재로 떼었다 붙였다 하며 단어를 만들기 쉬운 언어라는 뜻이다.
한자처럼 글자마다 뜻이 있으면 언어를 익히기 쉽지 않다.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도 알아야 하고, 표현하고 싶은 단어가 있으면 여러 단어의 의미를 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는 세상 만물에 각각의 상징성이 있는 표기가 있어야 하며, 만약 별도의 상징을 부여할 수 없는 대상이거나 더이상 상징의 표기 방식에 변화를 주기 어려워지면 표현이 점점 복잡해진다는 점이다.
복잡하게 설명했지만 한자어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가령, 나무(木)라는 한자를 떠올려 보자. 나무가 모이면 수풀(林, 수풀 림)이 된다. 숲에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면 장마(霖, 장마 림)를 떠올릴 수 있다. 가뜩이나 장마로 힘든데 물(水)이 콸콸 쏟아지면 온몸이 젖어 버린다(瀮, 젖다 림). 이런 식으로 한자는 여러 단어를 조합하여 더 복잡한 의미를 나타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젖어서 땀이 난다면?’, ‘젖어서 땀이 나는 바람에 병에 걸린다면?’ 이런 식으로 의미를 확장하다 보면 그 표기가 점점 복잡해진다. 따라서 어느 시점에서는 전혀 관계 없는 표기를 조합하여 표현하려는 의미를 나타내야 할 수도 있다.
우리말은 이런 복잡한 의미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국어의 자모음만 익히면 어떤 단어든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다. 중국어에는 ‘컴퓨터’라는 단어가 없다. 표기로는 ‘电脑’라고 쓰는데, 중국어 발음으로는 우리가 쓰는 컴퓨터라는 기기를 떠올리기 쉽지 않다. 일본어로도 컴퓨터를 표현하려면 외국어 표기에 주로 쓰이는 가타가나로 써야 하며, ‘パソコン’ 이 표기대로 발음하더라도 원어인 ‘computer’의 발음을 분명하게 담아낼 수 없다.
당연히 모든 언어는 생성 초기에 미래에 나올 대상까지 예측해서 단어를 만들 수 없다. 뭐 세종대왕님이라고 ‘언젠가는 한글로 양놈들 말을 기록해야지. 껄껄!’ 하며 한글을 만드신 것도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한글로는 웬만해서는 표현할 수 없는 단어가 없다. 심지어 지금 우리가 쓰는 말보다 처음 한글이 만들어졌을 때는 좀 더 세밀하게 외국어 발음을 담아낼 수 있었다. 영어의 z(지) 발음 정도는 반치음 하나만 쓰면 바로 표현할 수 있다. 표기대로 발음하면 바로 원어민과 같은 소리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조선시대의 영어 교재인 <아학편>이나 <첩해신어>만 봐도 알 수 있다. 중세국어 수업 때 이 교재의 본문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중세국어 표기대로 발음을 해 보니 원어민에게 들었던 것과 동일하게 발음할 수 있었다.
대학 때는 그렇게 재미없게 느껴지던 중세국어가 이제 와서 재미있어졌다. 당시 중세국어를 가르치셨던 교수님은 이렇게 재밌는 걸 왜 다들 모르냐며 안타까워하셨다. 수업에서 배웠던 많은 단어 중에서 특히나 ‘슈룹’은 발음도 귀여워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언젠가 드라마 제목으로도 쓰인 단어라 이제 슈룹 정도는 국어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도 우산을 뜻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지루했던 중세국어 수업이 생각난다. 빗방울이 맺힌 슈룹을 접으며, 저(‘나’의 중세국어)는 교수님 그대(3인칭 존칭, ‘당신’과 유사한 의미)의 애정이 듬뿍 담겼던 그 시간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