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기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여름 Oct 31. 2024

은하수

통화를 하는데 친구가 기분 좋은 일이 있냐고 물었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왜 기분이 좋아 보였는지 모르겠다. 딱히 즐거운 일은 없었다. 어제는 복싱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고 오늘은 출근해서 다시 스트레스를 잔뜩 짊어지고 온 상태였다. 그렇다고 딱히 기분이 나쁘거나 날아갈 듯 기쁘지도 않았다. 언제나처럼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서 배에 몸을 맡긴 채 앞뒤로만 움직이다 끝난 하루였다.


오래전에 끊긴 너의 소식을 들었다. 너의 삶을 뒤흔들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나는 어떤 안부를 물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검색만 조금 해 보아도 틀에 박힌 인삿말 정도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런데도 그 어떤 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차피 진심이 담기지 않을 말을 굳이 내 에너지를 쓰면서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언젠가부터 나는 너에게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는 상상만 해도 그에 따르는 에너지나 휴대폰 데이터, 그 시간에 내가 할 수 있을 수많은 다른 일을 떠올리며 저울질하고 있었다. 너의 사정이나 마음따위보다 이 상황에 대처하는 나를 먼저 걱정하고 있다.


너와 나에게 일어난 일을 말하려면 취기가 필요했다. 술이라도 마셔서 격정적인 기분에 휩싸여야만 너로 인해 즐거웠던 일과 힘들었던 일을 두서없이 늘어놓을 수 있다. 맨정신에 시간순으로 너와 나의 관계를 설명하려면 원망이나 자괴감 때로는 죄책감이 자꾸 나를 덮쳤다. 너와 이어져 있을 때의 나는 산타로 분장한 어른처럼, 숨어서 너에게 기쁜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네가 웃지 않으면 나라도 슬쩍 등장해서 너를 웃게 할 것들을 꺼내놓았다. 너와 내 사이가 깨지지 않게 끊임없이 노력하는 관계가 만족스럽고 뿌듯했다.


너를 놓아줄 때가 되었다고 느끼자 나는 다시 숨어야 했다. 숲에 몸을 숨기고 언제든 도망갈 준비가 된 초식동물처럼 때를 기다렸다. 너에게 힘든 일이 생길 때를. 어쩌다 한 번이라도 일이 잘 풀리지 않는 하루가 있기를. 나의 하루를 보내다가도 문득 사주를 경계하고 혹시나 너에게 불운이 닥치면 얼른 도망갈 준비를 했다. 너의 불행을 가까이에서 위로해 줄 수 없어지면서 너와 나의 관계가 끝났음을 실감하는 척도로 슬픔을 이용했다.

이런 날이 길어지자 감정이 점점 힘을 키우다가 너에게 닥친 불행에 나서서 기뻐하지는 않더라도 뒤돌아 몰래 안도하며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나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해서 이 세상에서 쓸모없는 사람인 것도 아닌데. 너와 내 관계의 매듭으로 인해 언젠가 네가 후회하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


이제는 너의 소식을 들으면 너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주인공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잘됐네, 나쁜 일이 생기면 저런, 하고 생각하는 것에 그치게 된다. 인물의 감정에 공감할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해 내 감정이 달라지지 않는다. 주인공이 아무리 애처로워도 관객이 직접 달려가 주인공을 위로하지 않는 법이니.

영화를 보는 것은 결국 내 선택에 달렸다. 영화를 골라 조금 보다가 재미없어지면 금세 자리를 떠 버린다. 영화 포스터만 보고도 그다지 끌리지 않으면 굳이 자리를 잡고 영화를 볼 생각도 들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더 좋아하는 일에 쓰고 싶어져서다.


점점 더 네가 나오는 영화는 인터넷 신문 기사에 가까워질 것이다. 사실 여부가 궁금하지 않고 활자만 슥 읽고 바로 다음 기사로 넘어가는 정도의 무게감. 내일 또 같은 소식을 보면 또 떴네, 하며 넘기고 한 번 더 기사가 뜨면 꼭 읽어 봐야지, 그렇게 여길 가십 정도.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까지 되어 버린, 그러니까 서로의 경사나 조사에 아무 마음을 표현할 수 없는 상황에 슬퍼했을 것이다. 이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 감정이 들지 않는 내 스스로가 슬퍼진다. 어쩌면 나는 너를 걱정하는 나의 모습에 취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너를 원망하고 너는 나를 원망하는 관계를 떠올리며 슬퍼하는 나라는 사람에게 더 연민을 느낀다.


나는 소시오패스일까.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때로는 상황에 맞지 않게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망가진 사람일까. 그런 생각에 심란했다. 그러다 이내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딱히 네가 불행하길 바라지 않는다. 너에게 좋은 일이 생겨도 부러워하거나 아쉬워지지 않는다. 노력을 했나 보지, 안 했어도 행운이 따랐나 보지, 하고 멍하니 바라본다. 너와의 시간만큼 마음에 구멍이 난 줄 알았다. 이제 보니 그 구멍이 있던 자리는 온데간데 없다. 그간 그 자리에 너무 많은 것이 새로 생겼다 없어지면서 이제는 너의 자리가 어디였는지 기억을 더듬어도 알 수가 없어졌다.


너에게 힘든 일이 생겨서 웃음이 난 게 아니었다. 나는 통화하는 내내 너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대화를 하다 딴생각을 할 때도 너는 내 머릿속의 다른 무엇인가로 남아있지 않았다. 빈자리였던 곳은 돌아보면 채워져 있고 눈을 감았다 뜨면 또 채워져 있다. 시간을 건너 너에게 가기엔 우리 사이에 은하수만큼이나 넓고 깊은 강이 흐른다. 마음에 뚫려 있던 구멍을 꺼내 눈앞에 펼쳐 놓는다. 이만큼이나 큰 구멍이었으니 계속 가지고 있다가는 내가 그 구멍에 빠졌을 것이다. 그제야 깨닫는다. 이렇게 넓고 깊은 물이니 서로에게 건너가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100에서 0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