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4. 은행에 대한 짧은 역사(3)

③ 우리나라 최초의 담보대출

by 고정금리

Episode 04. 은행에 대한 짧은 역사

③ 우리나라 최초의 담보대출


이전 글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대출은 크게 돈을 떼어 먹고 도망갈 것을 우려하여 값어치 있는 것을 저당잡히고 돈을 빌리는 담보대출과 개인(기업)의 신용 만을 내세워 돈을 빌리는 신용대출로 나뉜다.

물론 신용대출이 듣기에도 좋고 왠지 더 훌륭한 금융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돈을 빌려주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가급적이면 위험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담보대출을 선호하게 되고, 담보를 제공하기 어려운 사람의 경우 신용대출 만이 돈을 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고 공짜 점심은 없는 법.


담보대출의 경우가 신용대출에 비해서 돈을 떼일 상황이 되었을 때 담보를 처분해 빌린 돈을 상환하게 되어 돈을 못받을 우려가 더 적기 때문에 신용대출 보다 금리가 더 낮다. 신용대출은 아무래도 돈을 못받게 되었을 때, 이를 회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낮고 또 회수를 위한 어떤 노력을 행사하기도 매우 어렵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담보대출에 비해 금리가 더 높다.

그렇다 보니 어떤 대출이 더 이익이다 아니다를 얘기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같은 신용대출이라도 의사, 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연봉이 몇 억씩 되는 사람과 이제 막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대학생이 같은 조건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대출의 적정 가격(금리)을 정하는 것은 참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담보 대출은 누가 어떻게, 얼마나 받았을까? 물론 최초의 대출이라는 개념은 개인적인 사적 금전 대차(貸借)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이라는 곳이 생기고 난 다음, 그 은행에서. 일어난 금융기관을 통한 대출을 이야기 한다.


1897년 ‘한성은행’이 생기고 나서 얼마 안되었을 때 최초의 담보대출이 일어 났다. 너무 허무맹랑한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같은 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미리 주의하시길 바란다. 한성은행이 생기고 나서 얼마 안되었을때에는 아직 은행이라는 제도가 낯설다 보니 영업이 그리 활성화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은행내부에서도 고민이 많았던 상황이었다. 마침 그러던 차에, 대구에서 온 어느 상인이 서울에서 물건을 구입해서 대구로 가져가 마진을 붙여 판매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물건 값이 초과하여 가져온 것 보다 돈이 더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돈을 구할 방법이 없자, 한성은행을 방문하여 돈을 빌리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 상인의 집이 대구이다 보니 서울에는 재산이 있지 않았고 담보를 제공할 수있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상황을 듣고 보니 한성은행에서는 이 대출을 성사 시켜서 은행이라는 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를 널리 알려서 은행 영업을 활성화 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결국 고민하다가 그 대구 상인이 타고 온 당나귀를 담보로 맡아 두고 돈을 빌려 주게 되었다.


상인은 돈을 받고 당나귀를 은행에 담보로 제공하였는데, 그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일단 그 담보로 받은 당나귀가 아프거나 다치거나 하여 잘못되면 안되기 때문에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고 한다.

먹이를 주고 행여 잘 못될까 싶어 항상 보살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은 이 대구상인이 돈을 갚으러 다시 서울로 돌아 올까?에 대한 걱정이 있었을 것이다. 만약 연락이 되지 않고 돈을 갚지 않는 다면 지금같이 전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소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도 않을 테니 지역도 서울이 아닌 대구에 그 상인을 찾아 나서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과연 그 대구 상인은 서울로 잘 돌아와 대출을 상환하였을 것인가? 그 결론은 찾기가 어렵고 여러설이 있다. 그런데 다수 설은 결국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나중에 그 당나귀는 은행 간부들이 출퇴근 용이나, 출장 다닐 때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그렇다면 첫 번째 담보대출은 부실 대출이 된 것이다.

정확한 대출 금액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당나귀를 찾으러 다시 서울에 오고 돌아가는 과정과 원금과 이자를 갚는 것을 감안 했을 때 당나귀를 포기하는 것이 상인에게 더 이롭다고 판단되지 않았을까 싶다. 역시 은행은 상품 디자인을 잘 해야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최근까지 계속 이어지다가, 2017년에서 2019년 사이에 금융위원장을 역임한 최종구 전 위원장께서 “은행은 상인에게 없는 부동산이나 귀중품을 요구하지 않고 상인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값진 당나귀를 발견하고 자금을 지원해줬다”고 하면서 요즘 은행이 부동산 담보를 제공하기를 원하고 있고 동산 담보나 지적재산권 담보를 기피하는 것을 비판하는데 활용되기도 하였다.


내가 은행에 들어온지 얼마 안되거나 대출 업무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는 후배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하나 있다.


“은행과 전당포의 차이가 뭔지 알아?”


이말은 하면 요즘 MZ 신입직원은 일단 전당포를 잘 몰라서 대답을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약간 눈으로 ‘뭐지 이 꼰대는?’이라는 시그널을 팍팍 보내면서 말이다.

여러분은 은행과 전당포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시는가? 은행 영업점에 있다보면 은행을 전당포로 아는 고객이 가끔 있다. 아파트 담보제공할 테니 돈 내놓으라고 너무나도 당당하게 호통치듯이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다. 마치 돈을 맡겨 놓은 것 처럼.


전당포는 물건을 맡기고 돈을 빌리는 곳이다.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물건을 팔기도 하지만 결국은 터무니 없는 담보가치를 인정받고 사금융으로 돈을 빌리는 곳이다.

담보제공을 하고 돈을 가져가고 하지만 은행은 이와는 많이 다르다. 담보만 있다고 해서 그냥 돈을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은행은 실제 상환능력을 중요하게 본다.

이자를 내고 원금을 상환할 수 있는가를 더욱 중요하게 본다.

즉 개인의 신용도와 소득 수준, 현금흐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그래서 돈을 빌리는 사람이 매우 좋은 신용을 가지고 있고 충분히 이자와 원금을 갚을 능력이 되는 경우에는 담보가 없어도 신용대출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전당포의 경우는 다시 물건을 찾으러 올 가능성을 거의 희박하게 보고 어마어마하게 깍인 가치를 물건의 댓가로 지급한다. 결국 이자와 부실 가능성을 모두 가치에 환산하고 그만큼 적은 가격을 쳐 주는 것이다.


은행이 이렇게 전당포처럼 운영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은행 스스로 은행을 전당포처럼 만든 것도 일정 정도는 사실이다. 은행에 있다 보면 아파트를 담보로 제공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출을 해주는 경향이 느껴진다. 은행은 주로 부동산을 담보로 잡기를 원하고, 특히 아파트를 담보로 취득하기를 원한다.


외국의 선진 금융 기관이라고 하는 곳들도 부동산 담보를 선호하는 것은 마찬가지 이지만, 담보물의 환가성을 검토하기 보다는 사업체의 미래 발전 가능성, 개인의 성공 가능성을 면밀히 보려고 하고, 이런 관점에서 대출받는 사람과 회사를 연구하고 분석한다.

그러다 보니 특허와 같은 기술력을 담보로 잡거나 사업계획의 성공 가능성을 보고 대출가부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최종구 전 금융 위원장이 국내 금융기관의 이런 전당포같은 관행을 꼬집어 비판하기 위해 당다귀 담보 대출 얘기를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최초의 담보 대출에서 보듯 확실한 담보가 없으면 ,그 대출이 이자연체가 계속되어 원금을 회수할 수 없게 되는 경우 은행은 손해를 보게 된다.


당나귀가 동산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그 때 당시에는 환가성이 매우 높은 담보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리 전 금융위원장께서 꼭 부동산이 아닌 다른 중요한 것을 담보로서 인정하라고 하셨더라도 오히려 그 당나귀는 요즘 전당포의 주된 인기 담보물인 휴대전화에 맞먹는 현금화 능력을 당시에 가지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현금화가 안되면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사용가치까지 가지고 있는 담보물이지 않는가?


강원랜드 카지노가 영업을 하고 있는 사북 읍내에 보면 전당포가 굉장히 많다. 그리고 길가 여기저기에 딱봐도 먼지가 수북해 보이는 차들이 꽤 많다.

누군가는 일확천금의 꿈을 꾸고서는 그 차를 타고 사북에 왔다가, 결국에는 그 많은 전당포 중 하나에 이 차를 잠시 보관했다가 다시 찾으려 했을 것이다.

아마도 계획과 다르게 찾아갈 돈을 마련하는데 실패한 것이 확실한 것 같다. 상상만 해도 딱하기 그지 없다.


그런데 나는 그 자동차를 보면서 옛날 대구 상인이 맡긴 그 당나귀가 생각이 났다. 역시 직업병이 무섭다.


다음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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