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은행의 합종연횡과 인터넷전문은행
이전 ⑤드디어 시작된 금융자율화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그러다가 IMF구제금융사태가 터졌다. 많이 들어본 공포의 대상 IMF구제금융.
국제통화기금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은 많은 어르신들이 생각하시 듯이 사실 나쁜 놈이거나 무서운 존재가 아니다.
IMF는 어려운 대한민국에 돈을 빌려준 국제 기구일 뿐이다. 물론 여러가지 변화와 요구조건을 압박했지만 돈 빌려준 자는 당연히 돈을 돌려 받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IMF 사태는 단기간의 경제발전이 진행되면서 쌓여온 내부의 모순이 한꺼번에 튀어나와 생긴 것이었다.
기업은 돈을 빌려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벌이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어마어마한 부채비율을 가지고 있었고, 은행은 기업에 대해 정상적인 신용을 판단하고 리스크 관리를 하기 보다 ‘정부의 지시’나 ‘담보’만을 믿고 기업에 돈을 퍼주었다. 또, 단기로 조달한 자금을 기업에 장기로 대출해 주면서 위기 상황이 오자 조달한 자금의 만기를 맞추지 못하고 지급불능 상태가 되었다.
외화자금이 계속빠져 나가면서 대한민국은 자금이 부족해 지자 IMF에 손을 벌렸다. 그로 인해 대한민국은 지금껏 겪지 못한 엄청난 구조조정을 시행하게 되었다.
일단 기업들이 부도나면서 빌린 돈을 못 갚게 되자 은행이 부실화 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주도로 부실은행과 우량은행(정확히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은행) 간 M&A (인수합병)을 거의 강제로 이행 시켰다. 마치 전쟁 작전을 수행 하듯이 은행간에 짝짓기를 하기위해 특정날짜에 부실한 은행을 일시에 영업을 정지 시켜 버렸다. 그리고 바로 다른 은행에 넘기도 하고 또 일부는 자체 구조조정과 국유화 절차 등을 걸쳐 해외 사모펀드에 매각하기도 했다.
비교적 소규모인 동화은행이나 보람은행 등은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에 흡수되었고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여 인수은행에 손해가 날 일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덩치가 큰 은행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세금(공적자금)을 투입하여 급한 불을 껐다.
그 이후 필사적인 국민적 노력으로 인해 IMF구제 금융도 조기에 다 상환하고 반도체를 중심으로한 경제 발전과 함께 은행의 내부 구조조정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해외자본에 국내 은행을 헐값에 매각 했다는 등의 부작용도 발생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결론적으로 보면 단기간에 기적적으로 은행의 정상화 및 경쟁력 강화도 이루어 졌다.
그런데 이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대한민국에서만 예외적으로 비껴 가지 못한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기초로한 신용파생상품으로 촉발된 전세계적 금융위기가 오게 됨에 따라 대한민국의 은행들이 또다시 위기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때도 대한민국 은행은 엄청난 위기에 직면했지만 역시 대한민국은 저력이 있는 나라다.
이 역시도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현명하게 극복했고, 그 이전에 부족했던 리스크관리 등에 있어 한층 업그레이드 된 체계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초대형의 KB국민은행(국민 + 주택), 신한은행(신한 + 조흥), 하나은행(하나 + 외환), 우리은행(상업 + 한일)이 탄생했다.
지금의 대형 시중은행이 이 때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일부는 해외자본에 매각되어 과거의 명성보다는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은행이 되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또 시대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시대를 거치다가 모바일 시대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은행에 있어 모바일혁명은 그 의미가 매우크다.
은행고객이 이동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누군가 은행업무를 보려면 반드시 은행에 방문을 해야했다. 그러다가 인터넷시대가 도래하면서 고객은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에 앉아 은행업무를 볼 수가 있었다. 이 역시도 혁명적인 일이지만 반드시 물리적인 인터넷이 연결된 곳에 가야만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손 안에 고성능 컴퓨터를 가지고 두메산골에 있든 이동중이든 초고속 5G 무선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은행업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슨 얘기냐하면, 은행의 지점이 필요 없어지게 된 것이다. 즉, 점포가 없어도 은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은행에 있어 점포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는 매우 크다.
다른 산업도 온라인 특히 모바일 환경이 사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특히나 물리적인 생산품이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금(돈)으로 사업을 하는 은행은 그야 말로 완벽한 온라인 영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마존이나 쿠팡같은 이커머스 회사들도 온라인 환경으로 사업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그 회사들의 물류센터나 창고의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하고 물리적인 배달 종사자 (택배기사)도 필요하다. 하지만 은행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앞의 다른 에피소드에서 언급했지만 은행 영업의 핵심 중하나인 고객중심의 완전 영업이나 온기가 있는 따뜻한 영업을 위해서, 그리고 창의적이고 발전된 고객중심 서비스와 상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사람의 능력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단순 오퍼레이션을 위한 직원은 필요없어 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은행 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와 장소 임차료, 판매비를 획기적으로 줄인 모바일 전문은행(정부공식 명칭은행으로는 인터넷전문은행)이 있다면 고객에게 더 저렴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런 판단에서 정부가 국내에도 인터넷전문은행을 공식화 하고 사업자를 선정하여 영업 허가를 내 주었다.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토스뱅크가 그것들이다.
내가 처음 은행원이 되었을 때, 후발은행의 무기는 선배들의 '땀과 야근'이었다. 몸으로 때우며 고객을 빼앗아 오던 그 처절함이 지금은 정교한 알고리즘과 매끄러운 앱 화면으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명칭이 '모바일'이나 ‘인터넷'으로 변해도, 본질적인 숙제는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누구를 위해, 어떻게 문턱을 낮출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과거 정부가 은행을 장악해 산업화를 이끌던 시대나, IMF라는 혹독한 겨울을 지나며 덩치를 키운 금융지주의 시대, 그리고 지금의 인터넷 은행 시대까지. 우리 은행사(史)는 늘 '관치'와 '자율', '안정'과 '혁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다.
이 흐름 속에서 120년 전 종로 은행에 묶여 있던 '당나귀'를 떠올려 본다. 그 당나귀는 이제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신호가 되어 우리 손안을 흐르고 있다. 형태는 변했지만 본질은 같다. 은행은 결국 누군가의 절박한 니즈와 누군가의 여유 자금을 연결하는 '신뢰의 중력장’이다. 정부가 인터넷전문은행에 '모바일' 대신 굳이 '인터넷'이라는 포괄적인 이름을 붙인 것도, 어쩌면 기술의 변화보다 더 거대한 '연결의 본질'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라고 한다. 내가 굳이 케케묵은 당나귀 이야기와 IMF의 아픔을 꺼낸 이유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금융의 편의함 뒤에 수많은 이름의 소멸과 누군가의 눈물이 녹아 있음을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스티븐 호킹이 우주의 기원을 찾아 고독한 탐구를 이어갔듯, 우리도 우리 금융의 뿌리를 이해할 때 비로소 손안의 차가운 모니터 너머에 있는 금융의 진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인터넷 전문은행이 던진 '메기 효과'가 단순히 편리한 앱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120년 넘게 이어진 '전당포식 관행'을 완전히 깨부수는 진정한 혁신으로 이어지길 기대하며 이 짧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닫고자 한다.
비록 디지털로 변화하고 앞으로 AI가 등장한다고 하더라고 은행의 온도를 계속 느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이번 에피소드를 마무리 하고 다음 이야기 'KPI, AI와 만난다면…'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