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4. 은행에 대한 짧은 역사(5)

⑤ 드디어 시작된 금융 자율화

by 고정금리

Episode 04. 은행에 대한 짧은 역사

⑤ 드디어 시작된 금융 자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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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절대 권력일 것 같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이후 정권을 잡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집권하게 되면서 은행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당시 경제를 잘 모른다고 생각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경제 가정교사가 필요했고 그 역할을 한 사람이 당시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이었던 김재익이라는 사람이었다. 2008년 이장규가 쓴 전두환 시대 경제 비사라는 서브 타이틀을 가진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에 보면 김재익에게 전두환 전 대통령은 실제 전권을 주고 국가 경제에 대한 그림을 그리게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개발과 발전만이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하고 있던 상황에서 실질적인 거시경제적 관리가 시작되었다.

5공화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경제의 불안정을 높이던 통화량을 조정하기 시작하고 물가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도 나왔다.

통화량 관리에 따라 물가가 어느정도 안정화되었다고 생각되어 금리 수준도 그 이전 정책금리 수준으로 낮추게 되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이야 금리가 은행마다 또는 금융기관마다 다르고 또 서로 경쟁하는 시대지만, 당시에는 실제 은행의 금리 수준을 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시기였다.

특수한 정책자금을 제외하고는 어느은행이나 같은 금리 수준이기 때문에 특별한 경쟁도 없었고, 은행은 그냥 쉬운 영업을 할 수 있었다.

위치좋은 접근성 높은 곳에 문만 열어놓으면 영업은 알아서 되던 시기였다. 은행 수는 정해져 있고 갈수록 자금이 필요한 기업과 사람은 늘어나고 금리 경쟁도 없으니 얼마나 좋은 영업환경인가?


그런데 미국 스탠포드에서 선진 경제를 공부한 영향일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김재익은 본인이 꿈꾸던 금융의 이상적 모습이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비록 실패하기는 했으나 금융실명제를 도입하고자 하였고, 또 은행의 선진화를 추진하고자 하였다.


그가 추진한 은행의 선진화 작업은 금융자율화였다.

우선 정부가 가지고 있던 시중은행의 지분을 민간에 넘기게 되어 민영화를 시도하였고, 또한 동시에 태생부터 민간이 주도하는 실제 민간은행을 설립하고자 하였다.

민간은행이었지만 국내의 자본으로 만드는 민간은행이 아니라 해외자본이 들어와 국내의 정치적 상황이나 기업들의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선진금융 기법을 활용할 수 있는 그런 은행을 꿈꾸었던 것 같다.

그리고 동시에 최근 인터넷전문은행에게서 기대하는 메기효과를 통해 은행간 경쟁체제를 정착시키기 원했던 것 같다. 이러한 큰 그림 하에 정부는 은행의 신규 설립을 허가하게 되었고, 이 때 탄생한 은행이 1982년 신한은행과 1983년 한미은행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박정희 정권 시대 문제가 크게 되었던 사채 시장을 제도권하에 두기 위해 은행 뿐만 아니라 단자회사(단기금융회사)와 상호신용금고, 투자신탁회사들도 많은 수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시피 신한은행은 일본자본이 들어와 설립된 은행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일제 강점기 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교포 중 사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교포들이 엔화를 한국에 투자하여 설립한 은행이다.

약간의 비화(秘話)같은 얘기를 하자면 당시 재일교포들은 이민진의 동명의 소설을 애플이 만든 미니시리즈 드라마 ‘파칭코’에서 보듯이, 파칭코라는 사설도박장 사업을 통해 돈을 번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카지노나 ‘바다이야기’같은 그런 불법 오락실 같은 곳이라기 보다는 다소 여가를 즐기는 그런 곳의 성격이 더 강하다. 그러다가 재산을 조금 모은 분들은 부동산 사업에 뛰어 들었고 큰 돈을 번 사람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재일교포들은 여전히 지금도 국적이 대한민국이다.

다소 사행성 산업에다, 식민 시대 일본에 와 정착한 한국사람들이 일본 내 정상적인 금융 생활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 교포들의 일본 내 금융에서의 차별과 마침 한국에서 진행된 금융자율화가 맞물려 국내에 최초의 순수 민간자본 은행이 만들어 질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약간의 TMI를 말하자면, 당시 재일교포들은 일본 세무당국에 버는 만큼 세금을 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한국에 은행 설립자금을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고 하고, 결국 재일교포 개개인이 옷 속 주머니며, 가방 구석에 현금 다발을 몰래 숨겨 밀 반입 하였다고 한다.

당시 은행의 초기 자본금이 250억이었고, 창립 주주가 340명이었던 것을 보면 한명 한명이 그 자금을 숨겨서 들어오느라 얼마나 고생(?)했을 지가 느껴지는 듯 하다.

또 어찌보면 고국에 은행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이 아름답게도 느껴질 수 있지만, 또 어찌보면 일본입장에서는 황당한 자금 밀반출이지 않을 수 없다.


한미은행은 미국 자본을 유치하여 만든 민간 은행이다. 신한은행보다 1년 늦게 설립되었는데, 대우그룹과 국내 기업들이 50.1%의 지분을 가지고 미국의 BoA(Bank of America)가 49.9%를 투자하여 만들었다. 이름에서도 나타나듯이 한미은행은 한국과 미국의 자본이 들어온 은행이라는 의미가 강했고, 미국 은행의 경영방식을 받아들이기를 원했던 정부의 기대가 이름에서도 반영된 것 같다.


분명 후발 은행의 효과는 나타났다. 신한은행과 한미은행 이후 다소의 시간을 두고 어려 민간자본은행들이 생기게 되었다. 동화은행(1989년), 대동은행(1989년), 동남은행(1989년), 보람은행(1991년), 하나은행(1991)등이 새로 생겨났다. 기존 은행이 아니라 80년대 이후 생긴은행을 그 당시에는 후발은행이라고 통칭하여 부르곤 했다.


이들 은행은 나름의 절박함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과 같이 휴대전화 속 어플로 은행업무를 다 할 수 있거나, 인터넷 뱅킹으로 기업 자금관리를 하던 시기가 아니었기에, 오로지 은행과 고객의 접점은 지점 뿐이었는데, 기존 은행들과 같이 거대한 지점망을 가지 못한 후발은행들은 나름의 차별화된 경쟁력이 없지 않으면 기존 은행들과 경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후발은행의 구성원들은 기존의 거대 시중은행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전직하여 온 사람들이 많았다. 보수적인 은행의 문화에서 마치 공무원과 유사하게 한번 은행에 들어가면 평생 직장처럼 한 은행에 다니는 것이 일반적인 정서였지만, 그러한 관행을 깨고 사실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는 신생은행에 인생을 걸고 온사람들이다 보니 개인적인 절박함 또한 무시할 수 없게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많은 혁신과 변화를 후발은행 들이 주도 하였다.

신한은행의 경우 부족한 점포망을 확충하기 위해 대대적인 무인점포(365 바로바로코너)를 통해 네트워크와 인지도를 높였고, 동전카트를 끌고 시장에 직접 나가 수납을 하기 시작하면서 은행원이 가지고 있던 권위를 스스로 집어 던졌다.

또, 은행에 들어서면 황송할 정도의 큰 목소리의 인사로 고객만족이라는 서비스 개념을 거의 처음으로 도입했다.

하나은행도 전략적으로 거액 자산가의 자산 관리에 집중하면서 최근 유행하는 자산관리(Wealth Management)의 개념을 대중화 시켰다.


분명 후발은행의 등장은 기존 시중은행을 자극하기 충분했고, 자극을 넘어 점점 시중은행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능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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