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4. 은행에 대한 짧은 역사(4)

④ 산업화 시대의 주연배우 은행

by 고정금리

Episode 04. 은행에 대한 짧은 역사

④ 산업화 시대의 주연배우 은행


앞선 ③ 우리나라 최초의 담보 대출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광복과 혼란의 시기를 겪은 이후 6.25전쟁이 있었고 그 전쟁의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다양한 금융 정책을 펴게된다. 그것이 바로 통화개혁이었다.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정책적 수단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은행의 역할은 중요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정부와 은행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되고, 전쟁의 수습 과정의 자유당 정권은 결국 효율적 국가 재건사업에 대한 효과적인 금융지원을 꿈꾸면서 재벌들이 은행을 소유할 수 있게 하였다.


지금은 ‘금산분리’라는 대 원칙하에 엄격하게 산업자본의 금융 진출이 원천적으로 막혀있지만, 자유당정권 말기인 1957년 일본인으로 부터 정부에서 환수한 은행주를 대대적으로 민간에 불하하는 과정에서, 기업(재벌)이 은행주를 갖게 되었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당시 정부와 기업(재벌)의 관계를 강화시켜 정권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도록 하는데 은행을 활용한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그 후 자유당정권이 붕괴하기 까지는 은행은 정치적인 색깔이 더욱 진하게 물들게 되었고, 당시 은행의 자금이 선거자금으로 동원되었다는 소문도 파다하게 돌곤했다고 한다. 기업에 선거자금을 비공식적으로 갹출하게 하였는데, 이 자금을 은행 대출을 통해 조달하여 제공하였다고 한다.


당시 상황에 대한 여러 가지 얘기와 견해가 많지만 이 글은 정치적 상황에 대한 상세한 묘사보다는 지금의 대한민국 은행이 어떻게 이런 모습과 운영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쓰는 것이기 때문에 상세한 설명은 자제하고자 한다.


결국 재벌과 은행의 밀월은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변화를 맞게 되었다. 부정축재자가 소유하게된 은행주식을 국고로 강제 환수한다는 명분으로 은행을 국유화 시키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은행주 불하로 재벌이 소유하고 있었던 조흥은행, 한일은행, 상업은행, 한일은행이 정부로 소유권이 바뀌게 되었다. 그런데 그 당시 설립된 지 얼마 안된 (1959년 설립) 서울은행의 경우 은행주 불하와 무관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정권 시대의 정부소유 은행이 되었다.


결국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세력은 전후 찢어지게 가난했던 대한민국의 스피디한 발전을 주도 하기 위해 여러 목적으로 은행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행태는 관치금융의 길을 만드는 기초가 되었다는 것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분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은행장 인사 등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정부가 다양한 힘의 논리와 유착을 통해 나라의 금융을 좌지우지 하는 제도적 기틀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사실 요즘도 은행에서는 정부의 눈치를 많이 보는 것이 사실이고 다양한 정부의 가려운 부분을 은행이 눈치껏 긁어주는 일들이 실제 상당히 있다. 예를 들면 환율 방어를 위해 은행에서 외환시장에서 의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라든지, 부동산 정책이나 통화정책을 위해 은행에서 일정정도 역할을 대신하는 것들이 그런 것이라 하겠다.


시대는 다시 흘러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후 대대적인 국가 발전 사업들이 계획되고 추진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특수 목적 은행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1961년에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특수 은행인 중소기업은행(현 IBK기업은행)이 설립되었고, 1963년 서민금융 지원을 목적으로 국책은행인 국민은행이 생겨났으며, 한국주택은행이 1967년도에 서민주택자금의 조성, 공급, 관리를 목적으로 생겼다.

국민은행과 한국주택은행 이 두 은행이 합쳐져서 지금의 시중 은행 중 최고 성과를 내고 있는 KB국민은행이 된 것이다. 본격적인 산업화와 수출 우선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그 이후에 수출입은행도 생겨나게 되었고, 6.25 전쟁 후 설립된 산업은행과 함께 핵심적인 정책금융 제공자 역할을 하게 되었다. 또 외환업무를 전문적으로 담당할 국책은행인 외환은행도 1967년도에 생겨 경제 개발과 수출을 지원하게 되었다.


1962년도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발표되면서 1981년도까지 4차례에 걸쳐 진행되면서 대한민국은 급격한 발전시기를 거치게 되었고 그 핵심에 은행이 있었다.

급격한 경제 성장을 경험하면서 투자를 하면 곧 돈을 버는 시기가 되었고 돈을 빌려 사업을 하면 더 큰 돈을 번다는 생각에 어떻게 든 돈을 빌리려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러다 보니 시중에는 자금이 항상 부족했고 은행은 자금의 중개자로서 그 역할이 더욱 중요해 지게 되었다. 정부차원에서 국민을 대상으로 저축을 장려하게 되었고 경제성장과 물가를 반영하여 금리도 그에 맞게 높은 상황이었다. 어찌보면 이런 상황에서 은행의 문턱은 점점 더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돈이라는 자원은 한정적인데 필요한 사람이 많으니 그 돈을 빌려줄지 여부를 결정하는 은행의 힘은 막강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요즘도 ‘은행 문턱이 높다.’ ‘고객을 차별한다.’이런 얘기들이 있지만 그 당시에는 은행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아니라 수퍼 울트라 갑(甲)의 위치에 있는 하나의 공적 기관으로 인식되었다. 일부 대출을 해주고 뒷돈을 받는 관행도 은행원들 사이에 성행했다고도 한다.

사진에서 보듯이 1년 정기예금 금리가 20%가 넘는 다는 것은 대출 금리는 그 이상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20%가 넘는 금리로 대출을 해도 그보다 더 많이 벌 수 있던 시대였으니 지금으로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기도 하다.

R658x0.q70.jpeg 1978년도 정기예금 신문광고


R658x0.q70-2.jpeg 1980년대 초반 신탁상품 지면광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제개발이 관(官)주도로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진행되면서 정치와 경제간의 유착은 더욱 강해지고, 또 은행의 지원을 적절히 활용하여 여러 재벌들이 등장하면서 성장해 나갔다. 당시 기업들은 은행돈을 금고처럼 사용하기 위해 다양한 로비와 유력한 인물의 네트워크를 사용하였다고 하고, 은행도 리스크관리 보다는 기업에 과감한 대출 지원으로 땅짚고 헤엄치기 식의 영업을 했다고 전해 진다.


재벌들은 은행의 지원을 얻어 문어발 식으로 사업 영역 확대를 해 나가고 그 성장의 혜택은 은행도 같이 향유되는 구조였다. 은행이 경제 발전과 재벌 성장의 주연급 활약을 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 은행은 우물안 개구리 처럼 그 상황에 안주하고 경제 성장에 걸맞는 내실을 다지지는 못했다. 정부와 재벌과 은행은 서로가 악어와 악어새 처럼 서로의 이해관계에 맞춰 상호 성장하는 달콤한 시기를 보냈다.


그런 시기에 율산그룹 처럼 혜성처럼 나타나 은행의 자금지원을 등에 엎고 거대 기업으로 수년 만에 성장했다가 나중에 부도로 초라하게 사라진 기업도 있었다.

훗날 정부에 밉보이게 되어 그 끝이 좋게 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고, 핵심 계열사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율산해운은 범양해운으로 율산 알미늄은 효성 등에 헐값에 팔리게 되면서 다른 기업에 특혜가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 당시 각 은행들의 부당한 불법적 지원이 있었다고 하여 은행장이 법정에 서게 되었다. 회사의 주거래은행이었던 서울신탁은행의 은행장은 재무부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고 결국 나중 무죄를 인정 받았다고 한다.


은행이라는 곳이 그런 곳이다. 최근까지도 과다한 이익과 고임금 등으로 언론과 정치권의 뭇매를 맞고 있는 것 처럼 예나 지금이나 공공의 질타 대상이 되고 있다.

독점적이면서 정부에 의한 라이센스 산업이라는 태생적 한계로 정부와 정치권의 한마디에 민감할 수 밖에 없으면서 또 금융업의 특성으로 자칫 한번의 판단 미스로 엄청난 손실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래서 자금을 유보하고 적절한 충당금을 유지해야하면서 또 눈치도 봐야하는 그런 애매한 존재, 아마도 그 당시에도 그런 특성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 60~70년대 대한민국은 전세계에서 비교대상을 찾기 어려울 정도의 어마어마한 성장을 만들어 낼 시동을 걸고 활발한 기업 활동을 시작해 나갔다.

최근 우크라이나나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전쟁에서 마주하게되는 포화가 채 가시지도 않은 폐허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6.25전쟁 이후의 한국의 모습에서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풍요로움의 시작이 60년대 다양한 금융의 인프라가 확보되면서 현실로 점점 다가오게 되었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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