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다.
최근 유명인들의 학교폭력 폭로가 줄을 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학교폭력을 한 사람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유명인이 되어선 안 된다.”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어릴 때는 누구나 실수를 한다. 장난이 좀 심했을 뿐이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저는 학창 시절에 직접적인 폭력은 아니었지만, 왕따를 당했었습니다. 특히 고등학교 1학년 때, 뒷자리에 있던 아이가 저에게 뭔가를 물어보길래,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했더니 “이 새끼, 놀아주니까 좋~단다.”라고 말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이제 정확한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들었던 감정은 아마 앞으로도 잊기 힘들 겁니다.
이번 글에서는 학교폭력을 당했던 한 명의 피해자로서 학교폭력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학교폭력은 단순히 물리적인 폭력에 의한 물리적 상처만 남기지 않습니다. 학교폭력은 피해자에게 심각한 정서적 피해를 줍니다.
학교폭력의 피해자들은 교내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가해자들이 자신을 언제 어떻게 괴롭힐지 모르니까요. 누구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으니, 소속감 또한 느낄 수 없습니다. 학교에 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입니다.
이런 심리적 상태가 지속되면 자신감과 자존감이 깎여 나가고, 인간관계에 대한 방어적 태도가 강해집니다. 또한 심리적으로 여유가 없으니, 사람이 굉장히 예민해집니다. 정신병에 걸리지 않는 게 이상한 상태죠.
학창 시절은 자아가 확립되는 시기입니다. 학교폭력은 단순히 학창 시절의 끔찍한 기억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 전반에 영향을 끼칩니다.
부족한 자신감과 자존감, 그리고 사람에 대한 방어적 태도는 사회성을 떨어트립니다. 사람을 만나기보다는 피하게 되니까요. 학교는 작은 사회입니다. 그 안에서 내 또래의 친구들을 만나며, 다양한 유형의 사람과 관계 맺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학교폭력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위축된 아이들은 그런 경험을 하기 어렵습니다.
‘사회성 좀 부족한 게 뭐가 문제라고’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사회성이 조금 떨어지는 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회성이 부족해도 잘 사는 사람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낮은 자존감은 긍정적인 자아 형성에 큰 방해가 됩니다. 건강하지 못한 자아상은 세상과 나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들며, 이는 회복탄력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동합니다.
회복탄력성은 성장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성장에 실패는 필연적입니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실패하더라도 빠르게 일어섭니다. 그러나 회복탄력성이 낮은 사람은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며, 때로는 일어서지 못하기도 합니다. 학교폭력은 한 사람의 발전 가능성을 가로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극단적인 경우 학교폭력은 한 사람을 자살이라는 외길로 몰아넣습니다. 저는 ‘학교폭력에 의한 자살’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습니다. 자살보다는 살인에 가깝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학교폭력은 단순히 미성숙한 아이들의 심한 장난 수준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학교폭력은 하나의 범죄이며, 심각한 사회적 문제입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학교폭력에 대한 학생과 부모의 인식 차이입니다.
물론 위 조사는 2013년에 실시되어 지금은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생과 부모 간의 인식차가 매우 크다는 것은 주목할만합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 때문에 해결책에 대해서도 큰 차이를 보입니다.
저는 해당 조사에서의 부모들의 인식이 현실과 매우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학생들의 인식이 현실적입니다. ‘애들이 뭘 알아’가 아니라, 애들이니까 아는 겁니다. 그들은 당사자이기 때문이죠.
청소년 범죄에 대해서는 교화라는 명목하에 처벌의 수위가 매우 약하며, 심지어는 ‘애들은 원래 이러면서 크는 거지’라며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고 무시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해자의 교화는 분명 필요합니다. 그러나 교화 이전에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 우선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는 학교폭력에 대해서는 엄격한 처벌을 내려야 합니다.
학교폭력을 저지르는 가해자, 흔히 일진이라 불리는 학생들은 일탈을 훈장처럼 여깁니다. 또한 또래들 위에 군림하며 우월감을 느낍니다.
이들을 피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있게 하는 것은 계속 괴롭혀도 된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정말 이들이 처벌 이후 실질적인 폭력을 저지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피해자는 그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성인들 사이에서 벌어진 범죄에 대해서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같은 공간에서 지내도록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는 경우 큰 질타를 받죠. 그러나 의아하게도 청소년의 경우에는 ‘같이 지내야 친해진다’며 같은 공간에서 지내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학교폭력은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위 어른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는 부모와 교사들이 되겠죠. 부모와 교사가 자신들의 시선으로 학교폭력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인 학생들의 시선으로 학교폭력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긍정적인 점은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강하게 형성되어가고 있고, 학교 자체에서 학교폭력을 방지하고,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러한 노력들이 빛을 보기 위해서는 좋은 사회적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문화라는 것은 법으로 제한되어 있지 않지만, ‘여기서는 그래도 돼.’, 또는 ‘여기서는 그러면 안 돼.’와 같은 암묵적 합의를 말합니다. 여기에 있어서도 부모와 교사의 역할은 절대적이겠죠.
학교폭력과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높은 가치를 갖는 사회, 그리고 이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