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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나 DuNa May 20. 2022

고양이 한 마리가 바꾼 나의 세계

고양이가 바꾼 나의 습관

루나를 가족으로 맞이한 것은 우리 부부 인생, 아니 나의 인생에서 큰 변곡점이 될 만한 사건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루나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반려동물을 대하는 나의 태도, 그리고 작게는 나의 일상생활 습관까지 바꿨다.


내 새끼가 생기면 남의 집  새끼도 이뻐 보인다던데, 내 반려묘가 생기니 세상 모든 고양이들이 내 새끼 같고 마음이 더 쓰인다. 이것이 고양이라는 한 개체를 넘어  모든 동물로 확대되면서 동물 박애주의 정신이 그득그득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동물만 보면 심장부터 녹고, 안타까운 동물 소식에 더 마음이 절절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사냥 본능 한껏 오른 루나




일단 루나 덕분에 바뀐 나의 소소한 일상생활 속 습관을 말해보자면! (적어보다 보니 전혀 소소하지 않다)


루나 덕분에 부지런해졌다. 사계절 내내 털을 뿜어내는 루나 덕분에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청소기를 돌리는 것이다. 루나가 우리 집에 오기 전에는 2,3일에 한 번씩 청소기로 간단하게 머리털 정도 제거했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하루에 적어도 한 번씩 청소기를 돌리지 않으면 루나 털이 어느 순간 발바닥에 잔뜩 붙어버리기 때문에 부지런을 떨 수밖에 없다. 일주일에 최소 두 번 이상 루나 털 빗기, 루나 양치하기, 정해진 시간에 사료주기, 정해진 시기에 루나 화장실 청소해주기 등등 뭔가 나의 일상 시계가 루나에게 맞춰서 움직이게 됐다.


항상 발밑을 먼저 살핀다.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다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나다가 발밑 부근에 낮잠을 자고 있는 루나를 발로 차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혹은 집 안에서 움직이다가 갑자기 소리 없이 내 앞을 가로막은 루나를 본의 아니게 발로 찬 적도 있다. 설거지를 하다가 살짝 뒷걸음질을 했는데 루나가 뒤에 앉아있다 봉변을 당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이 녀석은 발소리가 나지 않는 닌자 같은 녀석이라, 항상 발밑을 조심해야 한다. 특히 새벽에 잠을 자다 화장실을 가게 되면, 바닥을 쓸 듯 발바닥을 붙이며 걸어야지, 안 그러면 곤히 자고 있던 루나를 칠 수가 있다.


서랍, 수납장, 방문이 열려 있지 않게 꼼꼼하게 확인한다. 급하게 옷을 꺼내고 옷장 문을 제대로 안 닫은 날이면, 루나가 어느새 좁은 문틈으로 어두운 옷장 속 미지의 세계로 떠나 있다. 한 번은 루나가 옷장 안에 있는 줄도 모르고 옷장 문을 닫았는데, 그것도 모르고 한참을 루나를 못 찾아다녔던 기억이 있다. 웃기는 것은, 아무리 녀석의 이름을 불러도 옷장 안에서 야옹 소리 하나 안 내고 어둠을 즐기고 있었다. 특히 현관문 문틈을 조심해야 한다. 녀석은 호기심도 많고 겁대가리가 없는 용감무식한 고양이라 배달이 와서 현관문을 잠깐 열어두면,  잠깐 눈 돌린 사이에 쏜살같이 튀어나갈 수 있다. 그래서 현관문이 열려 있을 땐, 내 눈은 이 녀석에게 고정된다.


프라이버시는 포기한다. 루나는 변태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든 샤워를 하든 항상 쫓아 들어온다. 손님이 와서 화장실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뭐가 그리 궁금한지 닫힌 화장실 문 앞에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화장실을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화장실 앞에 쪼그려서 한참을 루나를 쓰다듬어주다 돌아온다.


꽃을 포기했다. 연애 때부터 남편이 매달  번씩 꽃다발을 선물해줬다. 기분에 따라 다양한 꽃을 선물 받았는데, 루나가 우리 집에  후로는 꽃은 사라졌다. 혹여나 고양이가 유해가 되는 꽃이라도 섞여있을까  집에 꽃을 들이는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덕분에 남편은  선물을  해도 되니 속으로 근히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남편의 화장실 변기 뚜껑 닫는 습관 들이기. 화장실 변기에 서서  일을 보는 고양이 영상을  적이 있는데 진짜 너무 신기해서 남의  고양이가 큰일을 보는 모습을 한참을 봤다. 우리  고양이는 이런 신기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화장실 변기 뚜껑을  닫고 다닌다. 혹여나 변기 물을 마시거나  잘못 발이라도 헛디딜까 . 루나 덕분에 결혼생활 시작 때부터 화장실 변기 뚜껑을 닫고 물을 내리라는 잔소리에도 시큰둥하던 남편이, 루나가 우리 집에  이후로는 변기 뚜껑이 열려있는 적이 없다. 루나가 나도  바꾼 남편의 습관도 바꿨다.


사람을 집으로 초대하는 것을 즐기게 됐다. 요리 솜씨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성격상 집으로 손님을 초대하면 이것저것 준비를 과하게 많이 하는 사람인지라, 잘 초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루나가 온 후로는 루나를 자랑하고 보여주고 싶어서 자꾸만 사람을 집으로 초대한다. 이렇게라도 우리 집 이쁜이를 만천하에 보여주고 싶다.


곱게 한복 입은 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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